수익성 vs 소비자 선택권..'중간 요금제' 둘러싼 통신 빅3 묘수는

배준희 2022. 5. 17.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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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정부에서 5G(5세대) 이동통신 중간 요금제 도입 필요성을 잇따라 강조하자 통신업계 고민이 깊다. 통신 산업은 규제 산업으로 정부 입김이 강해 정권 교체기마다 통신 요금을 어떤 식으로든 손보려는 시도가 잇따랐던 터다. 이에 통신 3사는 내부적으로 중간 요금제 설계 검토 작업에 착수했다. 5G망 투자에 속도를 내야 하는 통신사 입장에서는 수익성에 미칠 악영향을 최소화하면서 소비자 선택권 확대라는 명분도 챙겨야 할 처지다.

▶SKT, 중간 요금제 검토 시사

▷LG유플·KT도 내부 검토 중

최근 SK텔레콤은 1분기 실적 발표 후 열린 콘퍼런스콜에서 “고객 요구와 이용 패턴, 가입자 추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다양한 요금제를 검토하고 있다”며 “5G 4년 차에 접어들고 보급률이 40%를 돌파해 대세화되는 시점에 다양한 요금제는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생각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고객 선택권 확대 측면에서 원하는 요금제를 지속적으로 검토해나가겠다”고 덧붙였다. 이는 윤석열정부가 추진 중인 5G 중간 요금제 도입 가능성에 대해 긍정적인 취지의 답변을 내놓은 것으로 해석됐다. 사실상 5G 중간 요금제 신설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다.

SK텔레콤이 도입 가능성을 검토하고 나서자 KT와 LG유플러스 등도 내부적으로 요금 설계를 위한 검토 작업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요금제 신설은 통상 수요조사를 거쳐 고객 성향 분석과 수익성(ARPU·가입자당 평균 매출) 시뮬레이션 등의 절차를 밟는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요금 구간별로 ARPU 시뮬레이션을 돌려보며 수익성에 미칠 영향을 사전 검토 중인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중간 요금제 논란은 윤석열정부가 소비자 관점에서 통신 3사의 허점을 잘 파고들었다는 평가다. 조사기관별로 차이가 있지만 국내 5G 가입자의 월평균 데이터 사용량은 대략 20~30GB(기가바이트)로 파악된다. 한국소비자연맹이 통신 3사와 알뜰폰사업자(MVNO)의 5G 요금제 93개를 분석한 결과, 소비자 월평균 데이터 사용량은 31GB였다. 반면, 현재 통신 3사의 5G 요금제(정규 요금제 기준)는 기본 데이터양이 대체로 10GB 이하 또는 100GB 이상으로 양극화돼 있다. 가령, SK텔레콤과 KT는 데이터 10GB를 월 5만5000원에 제공하는 요금제가 제일 저렴하고 바로 상위 단계가 110GB를 월 6만9000원에 제공하는 상품이다. 월 요금이 1만4000원가량 차이지만 데이터 제공량 격차는 100GB가 넘는다. 결국 대부분 소비자는 10GB 요금제로는 월평균 데이터 사용량에 못 미쳐 100GB짜리 요금제를 택한다. 이 과정에서 매달 70~80GB의 데이터는 어디론가 사장(死藏)되고 소비자는 더 비싼 가격을 치르고 대용량 요금제에 가입하는 일이 반복됐다. 소비자단체를 중심으로 “통신 3사가 데이터 제공 구간을 세분화하지 않아 서비스 이용자들이 고가 요금제를 택하도록 사실상 유도하고 있다”는 비판이 비등했던 이유다.

2019년 5G 상용화 이후 통신비 역시 가파르게 오르면서 물가 부담을 가중시킨다는 지적도 거세다. 통계청이 발표한 가구당 월평균 가계수지(전국 2인 이상 실질 기준)에 따르면, 가구당 통신비 지출은 2019년 14만7857원에서 2021년 15만4210원으로 4.2% 올랐다. 가계 소비 지출에서 통신비가 차지하는 비중 역시 2년 새 5%(2019년)에서 5.24%(2021년)로 증가 추세다.

▶통신 3사, 수익성 악화 우려

▷5G 품질 개선 지적도

통신사 입장에서는 중간 요금제 도입으로 ARPU 악화 가능성을 가장 우려한다. 월 7만원 이상 고가 요금제를 사용 중인 소비자 상당수가 중간 요금제로 이동할 경우 ARPU 감소는 불가피하다. 중간 요금제를 내놓으면서도 기존 고가 요금제 사용자 이탈을 최소화할 묘책을 찾는 것이 통신업계 숙제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내부적으로는 일정 수준 ARPU 감소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며 “주식회사로서 주주 반발도 최소화해야 하고 그렇다고 구색 맞추기용 요금제를 내놨다가는 여론 역풍을 맞을 수 있어 여러 방안을 다각도로 검토 중인 상황”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통신업계에서는 벌써부터 여러 시나리오가 거론된다.

우선, 월평균 데이터 사용량을 커버할 수 있는 30~40GB 데이터를 제공하는 중간 요금제를 월 5만원대 후반~6만원대 초반 가격으로 내놓을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다. 현재 6만원대 초반 가격대가 유력하게 거론되는 분위기로 알려졌다. 가급적 고가 요금제와 가격 차이가 크지 않은 중간 요금제를 내놔 기존 고가 요금제 사용자의 연쇄 이동을 최소화하려는 목적에서다. 가령, 월 6만원대 초반에 30GB짜리 요금제와 월 6만9000원에 110GB 요금제, 둘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소비자 입장에서는 몇천원을 더 주더라도 기존 고가 요금제를 유지하는 편이 낫다는 선택을 내릴 수 있다.

또 다른 시나리오는 가격을 확 낮춘 온라인 전용 요금제다. 예컨대, 가격을 4만원대로 낮추는 대신 선택 약정 할인이나 가족 결합 할인 혜택, 공시지원금 등이 없는 온라인 전용 요금제를 중간 요금제로 도입할 가능성이 거론된다. 온라인 전용 요금제는 각종 할인 혜택을 제공하지 않는 대신 일반 정규 요금제보다 가격이 저렴하다. 또 통신 3사가 정부와 협의해 알뜰폰 시장에서 철수하고 중소 알뜰폰 업체를 중심으로 5G 중간 요금제 출시를 유도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현재 알뜰폰 시장은 통신 3사 자회사(총 5개사)의 점유율이 50%가 넘어 정부에서는 점유율 규제론에 군불을 때고 있다. 최근 공정거래위원회까지 알뜰폰 시장 내 통신 3사의 독과점 문제를 살펴보겠다고 밝혔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통신 3사가 정부와 협의를 거쳐 알뜰폰 시장에서 철수하고 LTE(4세대 이동통신)와 저용량 5G 요금제가 주력인 중소 알뜰폰 업체에 중간 요금제 출시를 유도할 가능성도 있다”고 전했다. 최근 국회에서 열린 과기정통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 때도 “통신 3사가 5G 중간 요금제에 협조를 안 하면 알뜰폰을 활용해야 한다”는 의원들 지적이 나왔다.

중간 요금제 논란과 연계해 5G 품질 개선이 먼저라는 지적도 비등하다. 지난해 기준 5G 가입자 수는 2000만명을 넘어 올해 3000만명 돌파를 눈앞에 뒀다. 통신 3사는 5G 가입자 수 증가를 지렛대 삼아 영업이익 규모를 크게 늘렸다. 지난해 통신 3사 합산 영업이익은 10여년 만에 4조원을 넘어섰다. 하지만 5G 품질 논란은 시간이 갈수록 점증되고 있다. 과기정통부가 지난해 하반기 전국 85개 시, 전체 행정동을 대상으로 평가한 통신 3사의 5G 다운로드 전송 속도는 평균 801.48Mbps(데이터 전송 속도 단위·초당 100만비트)였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오픈시그널이 지난해 말 보고서에서 밝힌 국내 통신 3사의 5G 다운로드 평균 속도는 416Mbps로, 정부 측 수치와 큰 차이가 났다. 어느 쪽 잣대로 보든 5G 세계 최초 상용화 당시 통신업계가 공언했던 5G 속도인 20Gbps(기가비피에스·1Gbps=1000Mbps)에는 턱없이 못 미친다. 이런 이유로 5G 사용자 사이에서는 “5G 우선 모드로 해도 5G 신호가 잡히지 않아 LTE로 자동 전환되면서 끊김 현상이 생길 때가 부지기수다. 5G 설비도 제대로 증설하지 않으면서 중간 요금제 운운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라는 뒷말이 따른다.

5G에 대한 품질 불만이 여전하지만 28㎓ 초고속 통신망 등 신규 설비 투자(CAPEX)가 지지부진하다는 지적도 끊이질 않는다. 5G 체감 품질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려면 매년 수십조원의 설비 투자가 필요하지만 통신 3사는 인공지능(AI), 빅데이터, 콘텐츠 등 비통신 사업 투자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붓고 있다. 이들 신사업은 당분간 수익은 고사하고 지속적인 설비 투자가 필수적이다.

증권가는 중간 요금제 도입이 통신 3사 수익성에 미칠 영향이 제한적일 것이라 보면서도 파장을 예의 주시하는 분위기다. 최남곤 유안타증권 애널리스트는 “5G 보급률 둔화가 시작됐기에 중간 요금제는 통신사업자도 만지작거리던 카드 중 하나였다”며 “새로운 요금제가 도입될 경우 일정 수준 부정적인 영향은 있겠으나 이익에 지속적으로 유의미한 영향을 미칠지는 두고 봐야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배준희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59호 (2022.05.18~2022.05.24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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