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탈'과 '메이플스토리'..게임과 문화가 만날 때
‘슬라임 탈’을 쓴 사자놀이…메이플 몬스터의 넋을 위로하다
넥슨 최고의 인기게임 ‘메이플스토리’가 국악과 만났다. 게임 속 최고 인기 캐릭터인 슬라임은 ‘사자탈’ 모습으로 등장했고 추억의 NPC ‘장로스탄’은 한복을 입고 등장했다. 관객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로그인 테마가 나왔을 때는 탄성이 나왔고, ‘가디언 엔젤 슬라임’의 입에서 ‘핑크빈’의 이름이 나왔을 때는 웃음이 터졌다.
11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M시어터에서는 제1회 ‘보더리스 공연 : PLAY판’의 본 공연 ‘[필수]극락왕생’이 진행됐다. 보더리스는 게임 지식재산권(IP)을 활용한 실험적인 예술 창작을 지원해 게임의 문화 콘텐츠적 가치를 확산하고 예술의 저변을 확대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넥슨재단의 사회공헌 프로젝트다.
앞서 넥슨재단은 ‘게임과 전통예술의 만남’을 주제로 한 무대 작품을 공모해 지난 1월 결선에서 3개 팀의 시험 공연을 진행했다. 현장 심사 결과 슬라임을 추모하는 전통연희 공연을 펼친 ‘현대연희 프로토타입21’ 팀이 최종 우승을 차지했다. 씻김굿을 하는 ‘해랑’과 ‘도윤’이 메이플 월드로 넘어와 억울하게 죽은 몬스터들의 넋을 위로하는 것이 주된 스토리다.
현장을 찾은 관객들은 넥슨 게임 캐릭터와 사진을 찍기도 하면서 즐거워했다. 공연은 300석 좌석이 가득 찰 정도로 많은 관심을 모았다.
주인공 해랑과 도윤 역을 맡은 신해랑, 정도윤 배우는 ‘진도씻김굿’, ‘초가망석’, ‘넋올리기’, ‘고풀이’, ‘하직소리’ 등 망자를 위로하는 곡으로 공연을 시작했다. 이후 ‘메이플스토리 로그인 테마’, ‘파괴된 헤네시스’, ‘리스항구’, ‘세레니티’, ‘가디언 엔젤슬라임’, ‘오로라 대신전’, ‘빛이 마지막으로 닿는 곳’ 등 게임 OST가 가야금, 장구, 태평소 등 국악기로 연주됐다.
게임 내에서 만날 수 있던 반가운 얼굴도 등장했다. 극의 도입부 메이플 월드에 들어온 주인공에게 로봇같은 말투로 안내하던 노인이 헤네시스의 마스코트 ‘장로스탄’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관객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우리는 결국 경험치에 불과하다”는 슬라임들의 넋두리에 관객석에선 탄식이 나오기도 했다. 메이플스토리의 핵심 스토리인 ‘검은 마법사’ 이야기를 연극에 녹여낸 것도 인상적이었다.
공연이 끝난 뒤 관객들은 대체로 만족스러운 표정이었다. 대학생 관람객 이모 씨(24)는 “메이플스토리의 OST를 국악으로 들을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았다”면서 “친숙한 몬스터인 슬라임을 사자놀음으로 표현한 것도 재밌었다”고 말했다.
넥슨재단 관계자는 “넥슨재단은 지난 2012년부터 게임에 대한 예술적 가치를 조명하고 게임을 예술이자 문화로서 인식을 제고하기 위해 게임과 문화 예술의 경계를 허무는 보더리스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면서 “게임 음악 OST의 오케스트라 공연 등 게임에 대한 다양한 예술적 접근이 성행하는 가운데 이번 보더리스 공연은 넥슨의 핵심자원인 게임 지식재산권(IP)을 활용한 새로운 ‘창작’을 지원하는데 차별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동안 게임업계는 다양한 IP를 다양한 공연 및 예술에 접목하는 시도를 이어왔다. 지난 2년 간은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19(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오프라인 행사가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았지만, 사회적 거리두기가 사라지면서 게임과 문화를 접목한 공연도 점점 늘고 있다.
지난 12일 세종문회회관 대극장에서는 ‘스타크래프트 라이브 콘서트 : 앙코르’ 공연이 개최되기도 했다. 스타크래프트 라이브 콘서트: 앙코르'는 2019년 열렸던 '스타크래프트 라이브 콘서트'의 앙코르 공연이다. 국내 게이머들에게 민속놀이로 여겨질 정도로 오랫동안 사랑을 받고 있는 스타크래프트는 생동감 넘치는 명품 종족별 주제곡과 OST로 유명하다.
업계 내부에서도 이러한 시도를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한 관계자는 “게임 콘텐츠를 활용해 게임과 예술의 경계를 허무는 다양한 실험이 나오고 있어 굉장히 뿌듯하다”면서 “이러한 공연이 이용자들과 예술가분들에게 신선한 재미와 깊은 영감을 전할 수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게임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많았는데, 최근에는 게임도 놀이의 하나로 인정을 받아가고 있는 추세”라고 말했다. 이어 “게임 IP를 활용한 공연, 예술이 하나 둘 씩 늘어난다면 게임을 향유하는 층을 점점 늘 것이고 인식 또한 더욱 개선될 것”이라고 말했다.
강한결 기자 sh04khk@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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