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전쟁, 인도 폭염..이것 없어도 2030년 식량난 극심 왜

강찬수 입력 2022. 5. 17. 06:00 수정 2022. 5. 17. 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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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모리 부근의 경작지에서 밀이 익어가고 있다. 2020년 10월에 촬영한 사진이다. 로이터=연합뉴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인도 폭염 탓에 세계 식량 위기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 세계 6위 밀 수출국이었던 우크라이나는 전쟁으로 인해 올해 밀 생산량이 지난해보다 35% 줄어들 전망이다. 지난해 생산한 것도 항구 봉쇄로 수출길이 막힌 상태다.
세계 2위 밀 생산국인 인도 정부는 지난 14일 중앙 정부가 허가한 물량만 수출하도록 조치했다. 때 이른 폭염으로 인해 밀 수확량이 최대 50%까지 줄어들 것으로 예상하면서 내수 시장의 가격 안정부터 챙기기 시작한 것이다.
미국과 프랑스도 가뭄 탓에 밀 생산량이 줄어들 것으로 보여 세계적으로 식량 가격 폭등마저 우려되고 있다.

하지만 지금 같은 전쟁이나 기상이변이 아니더라도 전 세계는 갈수록 심한 식량 위기를 겪을 수밖에 없는 막다른 길로 다가가고 있다.
전 세계 작물 생산량은 늘어나고 있지만, 직접 사람이 먹는 식품용 작물 재배 면적은 줄고 있다. 대신 바이오에너지나 산업용 등 다른 용도로 작물을 재배하고, 가공용·수출용으로 소비하는 양도 늘기 때문이다.


10대 작물, 7개 용도별 재배 면적 분석


브라질에서 생산한 대두. 로이터=연합뉴스
미국 미네소타대학 환경연구소와 세계자원연구소, 브라질·중국 등 국제연구팀은 최근 '네이처 푸드(Nature Food)' 저널에 세계 10대 작물의 생산과 공급 추세를 분석한 논문을 발표했다.
연구팀은 유엔 식량농업기구(FAO) 자료를 바탕으로 세계 156개 나라를 대상으로 밀과 보리, 카사바, 옥수수, 기름야자, 유채(캐놀라), 쌀, 수수, 대두(콩), 사탕수수 등 10가지 농작물의 생산 추세를 파악했다. 이들 10가지 작물은 모든 식품 칼로리의 최대 83%, 전 세계 재배 면적의 최대 63%를 차지한다.
연구팀은 또 이들 농작물을 대상으로 식품·사료·가공·수출·산업·종자·손실 등 7가지 용도별 사용량을 파악했다.
수확한 작물 재배 지역과 7가지 용도의 변화. 위 지도는 1960년대(1964~1968년), 아래 지도는 2010년대(2009~2013년)를 나타낸다. [자료: Nature Food, 2022]

연구팀 분석 결과, 1960년대(1964~1968년 평균)에는 전체 농작물 재배 면적 중에서 식품용 작물 재배 면적이 차지한 비율이 51%였다. 이 비율이 2010년대(2009~2013년 평균)에는 37%로 떨어졌다. 식품용 작물의 재배 면적은 매년 136만㏊(서울시 면적의 약 22배)꼴로 줄고 있다.

농작물 생산국 내에서 직접 사람이 먹는 식품 용도로 생산한 작물의 비중이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연구팀은 이러한 추세가 계속된다면, 오는 2030년에는 수출용으로 수확된 작물의 재배 면적 비율은 최대 23%에 이르고, 가공·산업용으로 수확된 작물도 전체 재배 면적에서 각각 17%, 8%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반면 식품용 작물은 29% 이하로 감소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재배 면적 늘려도 식량 위기는 이어져


지난해 10월 미국 오하이오주 디어필드에서 콤바인 수확기가 콩을 수확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한국에서도 1964년에는 보리의 65.4%를 식품으로, 25.3%를 사료로 사용했는데, 2013년에는 식품은 3.7%로 줄고 가공용이 93.7%를 차지했다. 대두는 1964년 식품용이 87.1%였는데, 2013년에는 32.3%로 줄었고, 대신 가공용이 64%를 차지했다. 다만, 쌀은 2013년에도 식품용이 91.2%를 유지했다.

2010년대 기준으로 전 세계에서 산업용 작물을 통해 수확하는 칼로리 생산량은 직접 소비되는 식품용 작물 칼로리의 2배 수준이다.
2030년까지는 산업용 작물의 칼로리 생산량은 28%, 식품용 작물의 칼로리 생산량은 24% 증가할 전망이다. 2030년에는 산업용과 식품용 작물 사이의 칼로리 생산량 격차는 더 커지게 된다.

인구 증가까지 고려한다면 작물 생산이 늘어난다고 해서 식량 위기가 줄어드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수치다.


2030년 5억 명이 영양 부족 '고통'


미국 오하이오 주에 있는 카길 사의 대두 가공 공장 저장탱크. 로이터=연합뉴스
연구팀은 작물 수확량과 인구 변동을 고려해 2030년에는 86개국에서 영양 부족 인구가 나타날 것으로 전망했다.

최소 식이(食餌) 에너지 요구량(MDER) 기준으로는 연간 최대 675조㎉(킬로칼로리)가 부족할 것으로 예상했고, 현실적인 기준인 평균 식이 에너지 요구량(ADER) 기준으로는 연간 993.9조㎉가 부족할 것으로 예상한다.

연구팀은 2030년 기준으로 전 세계 5억 명이 영양 부족에 시달릴 것으로 전망했다.
한국은 수확량보다 인구가 많아 영양 부족이 나타날 수도 있지만, 해외 식량 수입으로 해결한다고 봤다. 북한은 2030년에 1000만 명이 영양 부족을 겪을 것으로 전망됐다.

또 인도 1억 8500만 명, 파키스탄 2500만 명, 나이지리아 2000만 명, 방글라데시 1800만 명, 인도네시아 1680만명, 에티오피아 1500만 명, 탄자니아 1300만 명, 예멘 1200만 명, 케냐 1100만 명, 필리핀 1100만 명, 마다가스카르 1000만 명 등도 영양부족으로 고통을 받을 것으로 예측됐다.

연구팀은 "영양이 부족한 국가에서는 다른 용도의 작물을 직접 소비하는 식품용으로 전환해야 오는 2030년에 칼로리 요구를 충족할 수 있다"며 "31개국은 2030년 수확한 작물 모두를 식품용으로 전환하더라도 늘어난 인구의 칼로리 요구를 충족하지 못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다른 용도 작물 식품용으로 전환해야


파키스탄 농민들이 지난 8일 페샤와르에서 밀을 수확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연구팀은 "실제로 영양 부족이 나라들은 사하라 사막 이남의 아프리카에 집중돼 있는데, 이들 국가는 지금도 대부분의 작물을 직접 식량 소비에 사용하기 때문에 사료·가공·수출 등 다른 부문의 칼로리를 전환할 수 있는 여지가 별로 없다"고 지적했다.

현실적으로 영양 부족이 심각한 국가라도 일부만 식품용으로 전환이 가능한 게 현실이어서 이들 국가의 해외 식량 의존도가 심화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2030년까지 추진하는 유엔 지속가능발전 목표(UN SDGs) 17개 중 두 번째 목표인 '기아의 종식, 식량안보 달성, 영양 상태 개선, 지속가능한 농업 강화'의 달성도 요원한 상황이다.

평균 식이 에너지 요구량에 대비한 식량 부족 전망. 위의 지도는 현재 추세가 2030년까지 이어질 때의 전망이고, 아래 지도는 다른 용도로 사용하는 작물을 사람이 직접 소비하는 식품용으로 전환했을 때를 가정한 전망이다. 녹색으로 표시된 지역은 칼로리가 부족하지 않은 지역임을 나타낸다. [자료: Nature Food, 2022]

연구팀은 "식량 부족 국가와 비정부 기구(NGOs), 기타 구호 단체들은 직접 소비하는 식품용 작물의 수확을 늘리는 데 힘을 모아야 한다"며 "영양 부족이 없는 국가에서도 농작물 생산 일부를 식품용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kang.chan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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