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 아무튼, 하모니

권혜숙,인터뷰 2022. 5. 17. 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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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곡계의 히트곡 제조기 김효근 이화여대 교수를 인터뷰했을 때의 일이다.

'눈' '첫사랑' '내 영혼 바람되어'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사랑의 꿈' 같은 그의 작품 중 몇 곡이 음악 교과서에 수록됐다는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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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혜숙 인터뷰 전문기자


가곡계의 히트곡 제조기 김효근 이화여대 교수를 인터뷰했을 때의 일이다. ‘눈’ ‘첫사랑’ ‘내 영혼 바람되어’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사랑의 꿈’ 같은 그의 작품 중 몇 곡이 음악 교과서에 수록됐다는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었다.

“요즘 음악 교과서에는 팝송과 가요, 영화음악까지 다양한 장르의 곡이 실려 있어요. 교과서 구성은 완전히 바뀌었는데 서글픈 건 음악 시간 자체가 줄어들거나 없어진다는 거죠. 가창과 합창도 없어졌어요. 가창의 기억은 평생 음악적 자산이 되는데 말이에요. 저희 때는 합창대회가 제일 큰 학교 행사 중 하나였어요. 저는 초·중·고등학교 합창으로 한국의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거든요. 가장 적은 예산으로 사람들을 가장 행복하게 할 수 있어요.”

김 교수가 말했던 ‘합창의 힘’을 새삼스레 떠올리게 된 건 베테랑 배우들이 합창에 도전하는 JTBC의 음악예능 ‘뜨거운 씽어즈’ 때문이었다. 제각각 중구난방이던 목소리들이 어엿한 합창단으로 거듭나는 과정은 항상 어느 정도의 재미와 감동을 보장하기 마련이다. 십여년 전 오합지졸 합창단의 성장기를 담았던 KBS2 ‘남자의 자격’이 그랬고, 여자교도소에 합창단이 결성되는 영화 ‘하모니’가 그랬다. 합창이 돌림노래가 되곤 하던 치매 환자 합창단이 끝내 공연을 완성하는 EBS 다큐멘터리 ‘메모리즈 합창단’도 인상적이었다. 얼마간 짐작 가능한 전개임에도 아는 맛이 더 무섭다고, ‘뜨거운 씽어즈’는 매회 폭풍 감동을 자아내며 OTT 시대에 본방사수를 외치게 하는 매력을 뿜어낸다.

첫 회부터 85세 김영옥이 부른 ‘천개의 바람이 되어’와 81세 나문희의 ‘나의 옛날이야기’가 하릴없이 눈물을 쏟게 하더니 오랜 무명 생활을 거친 이병준과 이서환의 듀엣곡 ‘말하는 대로’가 마음을 뒤흔들고, 남성 출연자들이 각자의 젊은 날을 돌아보며 목소리를 합친 중창곡 ‘바람의 노래’가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소설가 이슬아는 책 ‘아무튼, 노래’에서 “잘 못 불렀는데도 좋아 죽겠는 노래를 맞닥뜨릴 때마다 음악을, 삶을 처음부터 다시 배우는 기분이 된다”고 했는데, 딱 그런 느낌이었다. 기술적으로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더 최선을 다해 자신의 이야기를 노래에 담아내려는 진심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한국 합창계의 대부’인 지휘자 윤학원 인천시립합창단 명예 예술감독이 국민일보에 연재한 ‘역경의 열매’에서 들려준 합창론은 ‘노래에는 마음과 감정이 담기기 때문에 노래하는 사람에 따라 다른 울림이 느껴진다’ ‘누구 한 명이라도 제 몫을 못 하면 무너지는 게 합창이다’ ‘합창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다’ ‘합창은 행복한 민주주의다’ 같은 말로 요약된다. 학창 시절 순탄치 않았던 합창대회의 기억을 돌아보면 몇몇 ‘화음 파괴자’가 있었다. 유달리 큰 목소리로 존재감을 과시하는 유아독존형, 입만 벙긋거리며 립싱크하는 무임승차형, 이런 선곡으로는 입상하기 어렵다거나 옆반 지휘자가 훨씬 잘하더라며 친구들의 기운을 빼는 투덜이형 말이다. 뽐내지 않고 서로 배려하며 하나의 소리를 내는 것, 그게 합창의 매력이자 가장 어려운 점일 것이다.

합창곡 ‘귀 기울여 봐’에는 ‘목소리를 맞추면 마음도 맞출 수 있어/ 한송이 꽃보다 꽃다발이 더 아름답듯/ 합창은 노래로 만드는 꽃다발이야’라는 예쁜 가사가 나온다. 솔로 공연으로 시작한 ‘뜨거운 씽어즈’는 듀엣, 중창을 거쳐 마지막 합창을 향해 홀로에서 함께로, 불협화음에서 화음으로 착실하게 나아가고 있다. 합창이 세상 사는 이치와 다르지 않아 보인다. 이슬아 작가 책의 제목을 빌리면 아무튼, 하모니다.

권혜숙 인터뷰 전문기자 hskw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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