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소리] 사랑은 상처받는 것이다

2022. 5. 17.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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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었을 적 첫 담임목회지에서의 일이다. 토요일 오후, 30대 중반쯤 돼 보이는 여인이 아이를 업고 목양실 문을 두드렸다. 유부남에게 속아서 동거하다가 아이까지 낳았는데, 남자가 연락을 끊고 종적을 감추었단다. 수소문 끝에 남자가 우리 교회에 다닌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그를 찾으러 온 것이다. 그녀의 말과 같이 남자는 우리 교회 교인이었고 그의 친지들은 교회의 중요한 직책을 맡고 있었다.

여인에 대한 동정심이라든지 아이의 미래에 대해 걱정할 여유가 없었다. 남자를 불러 잘잘못을 따지고 후속 조치를 취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자칫 친지들의 심기를 건드리기라도 하면 단체로 교회를 떠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나를 지배했다. 우유부단한 나는 생각만 복잡할 뿐 바보같이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한 달쯤 지났을 때 온 교회가 다 알게 되었고, 남자의 가족은 교회를 떠났다. 담임목사가 성도를 사랑하지 않는 ‘삯꾼 목자’라는 말을 남기고 말이다.

성도들에게 문제가 생기면 그 문제 속으로 뛰어들지 않으면 안 되고, 그런 과정에서 나도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음을 깨달은 사건이었다. 이후 10여년 사역에서 목회자들이 겪을 수 있는 온갖 문제를 만났다. 처음보다는 나아져서 때로 문제가 만족스럽게 해결될 때도 있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상처를 안 받은 때는 한 번도 없었다. 두 사람을 중재하려다가 양쪽 모두로부터 비난을 받기도 했고 성도들이 교회를 등지는 일은 빈번했으며 나의 잘못으로 문제가 커지기도 했다. 디스크가 터지고 무릎과 어깨가 망가지고 위장병과 어지럼증이 고질병으로 자리잡았다.

사랑하려다 고통을 경험한 사람들은, 언젠가는 상처받지 않고 사랑할 수 있는 원숙한 인격으로 성장할 것을 소원한다. 그리고 자신의 그런 소원을 투영한 존재를 신(神)으로 섬긴다. 그리스인들은 모든 감정에서 해방된 초월의 상태를 ‘아파테이아’(apatheia, 감정과 고통이 없음)라 하여 도덕의 최고봉으로 생각했다. 이들이 믿는 신은 마치 태양처럼 한없이 사랑을 베풀지만, 자신은 줄어들지 않는 존재다. 유교에서 이상적인 통치자는 북극성처럼 자신은 제자리에 머물러 있지만 다른 별들이 그를 중심으로 도는 군주다. 불교에서 최고로 행복한 상태는 열반, 즉 마음에 걸림도 없고 두려움도 없고 헛된 생각이 없는 무념무상의 상태다. 이들에게 신(神)은 감정의 동요가 없는, 그래서 상처받지 않는 존재다.

바로 이 점에서 기독교는 다른 종교들과 정반대다. 우리 예수님은 동서양의 이런 신들과 전혀 다르다. 그는 인간이 가지는 모든 감정(파토스)을 가지셨고 고통과 상처를 입으셨다. 그것도 아주 다양하고 풍부하게. 사랑과 기쁨과 동정심뿐 아니라 슬픔과 비애와 분노와 낙심과 혼란과 무력감 같은 감정도 포함한다. 그는 상처받을 위험이 있는 인간으로 성육(成肉)하였고 실제로 영혼과 육신에 큰 상처를 입으셨다.

그는 극한 감정의 동요 때문에 여러 차례 눈물을 흘리셨다. 사람들의 죄악과 고통에 대해 보이신 동정심 때문만이 아니었다. 사람들로부터 받는 오해와 적대감, 배신으로 인한 상처가 그의 마음을 찔렀고,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번민이 그의 눈에서 피눈물이 나게 했다. 예수님이 보여주신 파토스의 절정은 십자가 위에서의 외침이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마 27:46) 도대체 어떤 신이 버림을 받는단 말인가. 도대체 어떤 신이 그의 손발과 옆구리에 상흔을 가지고 있단 말인가.

나이가 들면서 상대적으로 평온한 날을 보내고 있는 편인데, 그건 귀가 순(順)해져서가 아니라 고통의 현실로부터 멀찌감치 떨어져 있기 때문임을 문득 깨닫는다. 내 심장은 나의 이력과 명성의 작은 상자에 둘러싸여 안전하게 보호받고 있다. 그 속에서 상처받지 않는 그래서 사랑도 할 수 없는, 작고 단단한 조직으로 퇴화해가고 있다.

장동민 백석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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