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태의 이코노믹스] 빈곤의 질곡 벗어나려면 자유시장경제 더 키워야

2022. 5. 17.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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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취임사의 정치경제학


이경태 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사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사는 자유·인권·공정·연대의 네 단어로 압축된다. 보수적 국민은 자유에 방점을 찍을 것이고, 진보적 국민은 공정과 연대에 방점을 꾹꾹 누를 것이다. 국민이 진영에 따라서 해석을 달리하면 갈갈이 찢어진 한국사회를 하나로 묶어 보겠다는 신임 대통령의 포부는 출발부터 꼬이기 시작한다. 이 불행한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먼저 자유의 의미를 천착해 보자. 자유는 고전적 자유와 사회적 자유로 구분되는데 서로 충돌한다. 고전적 자유는 국왕권력이 개인의 생명과 재산을 침해하는 것을 제거함으로써 확보됐다. 취임사에 나온 자유 시민의 역사적 뿌리는 지배계층이 특권과 특혜를 독점하면서 재판 없이 시민의 목숨을 빼앗고 재산을 강탈하는 수탈체제를 뒤엎은 피의 대가로 쟁취한 자유다. 보수 가치의 원형이다.

사회적 자유는 자본가가 노동자의 생존권을 침해하는 것을 제거함으로써 확보됐다. 입에 풀칠도 못 하는데 지켜야 할 생명과 재산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비판의식은 분배정의를 부르짖는 사회적 약자들의 정치적 저항을 통해서 사회적 자유의 신장이라는 결과를 얻어냈다. 진보가치의 뿌리다. 두 자유는 저항의 의지를 공유한다.

「 과거 특권층만 누리던 물질적 혜택
지금은 대다수가 누리는 시대 열려
자유와 시장 생산력이 가져온 결과
시장경제 확장해야 빈곤층 더 줄어

번듯한 일자리 늘려야 빈부 격차 완화

이경태의 이코노믹스

윤 대통령은 정치적 자유와 사회적 자유가 따로 노는 것이 아니라 하나로 합쳐져야 한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자유 시민이 되기 위해서는 일정한 수준의 경제적 기초와 공정한 교육, 문화의 접근기회가 보장돼야 한다고 못을 박았다. 경제적 기초와 교육기회의 균등은 자유 시민의 자유를 온전히 만들기 위해서 결코 빠뜨려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고 봐야 한다.

그러므로 진보좌파는 취임사의 자유를 거부하고 비판하지 말고 지지하는 것이 맞다. 민중이 쟁취한 형식적 자유의 공허함을 분배와 기회 균등으로 채워서 일상에서 느끼는 체감적 자유로 진화시키겠다는데 박수를 보내지 않을 이유가 있는가?

취임사에서 소통과 협치의 의지를 읽을 수 없다는 비판도 있다. 그렇지 않다. 보수와 진보를 갈라놓던 이질적 자유를 융합하겠다는 의지보다 더 강력한 소통과 협치의 메시지가 있겠는가. 이제 보수·진보 두 진영은 모든 국민이 진정한 자유 시민으로 새로이 태어나게 해야 하는 시대적 책임을 이행해 나가야 한다. 소통과 협치 없이는 진정한 자유 시민이 탄생할 수 없다.

평등이란 단어가 빠졌다는 질책이 있다. 자유가 불평등을 낳았는데 자유를 서른다섯 번씩이나 강조했으니 불평등은 더 악화할 것이 불 보듯 뻔하다는 것이다. 이는 오해와 편견이다. 자유시장 경제는 수천 년 동안 빈곤의 질곡에서 허덕이던 인류를 불과 200여년 동안에 풍요의 길로 들어서게 하는 마법을 보여줬다. 한 줌밖에 안되던 특권층만이 누리던 물질적 혜택을 대다수 국민도 맛볼 수 있는 생산력을 발휘했다. 아직도 굶주리는 20억 빈곤층은 자유시장 경제를 제대로 실행하지 못하는 지역에서 살고 있다. 그들을 근본적으로 구원하는 길이 복지와 도움이 아니라 자유시장 경제임은 역사가 증명한다.

국내 저임금 근로자 1000만명 수준

선진국이 된 대한민국으로 눈을 돌려 보자.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생활고에 시달리는 국민이 많다.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는 알바일꾼, 코로나로 생존이 위협받는 영세 자영업자, 종업원 5인 미만의 중소기업 근로자 등 근 1000만명이 저임금으로 근근이 삶을 이어가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각종 지원책으로 도와줘야겠지만 근본적으로는 자유시장 경제의 온기가 이들에게까지 미치도록 자유시장 경제를 더욱 발전시키는 것만이 해결책이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번듯한 일자리가 없으니까 싫어도 알바로 취업하고 치킨집을 열고 열악한 작업환경의 영세 작업장으로 가게 된다. 번듯한 일자리를 지속해서 만들어 낼 수 있는 힘은 기업에서 나온다. 국민 세금을 낭비하는 정부와 국회는 그 힘을 가질 수가 없다. 대기업, 중견기업, 그럴듯한 중소기업이 쏟아져 나오기 위해서는 그들에게 자유를 주어야 한다.

진보좌파는 친기업을 친자본으로 해석한다. 규제 완화해 보았자 기득권층의 배를 더 불릴 뿐이고 서민에게는 떡고물이나 돌아가면 다행이라는 분노를 드러낸다. 이러한 고정관념으로 계속해서 기업을 옥죌 것이 아니라 시장이 효율적으로 기능하고 이해관계자들이 응분의 몫을 가져갈 수 있는 규제개혁을 위해서 보수와 진보는 소통하고 협치해야 한다. 기업이 자유롭게 뛰게 해 주는 대신에 세금을 더 걷어서 복지와 평등을 위해서 잘 쓰는 길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상생의 대로다.

공정과 기회 균등은 평등의 문을 여는 열쇠다. 소망스러운 것은 절대적 평등이 아니고 상대적 평등이며, 결과의 평등은 더더욱 아니다. 부모 찬스가 같은 형제들도 절대적으로는 불평등하기 마련인데 어찌해서 침대 길이에 발을 맞추려고 생각할 수가 있는가? 교육기회를 보장하고 경쟁과정을 공정하게 관리한 후에 나타나는 결과의 불평등은 수용해야 한다. 그러한 불평등은 차이일 뿐이다. 형은 장사해서 돈 많이 벌고 동생은 월급쟁이로 받는 월급이 형만 못한데 그걸 두고 불평등이라고 해서는 안 된다.

기업 자유로워야 평등의 길도 열려

공정과 기회 균등에서도 자유가 핵심이다. 진입장벽을 세워 놓고 허가받은 참가자들끼리 벌이는 경쟁은 태생적으로 불공정하다. 기회 균등도 모든 사람이 그 기회를 이용할 수 있는 자유를 가질 때 의미가 있다. 교육기회는 어떤가? 주인인 학생은 젖혀두고 자칭 타칭 교육전문가와 행정가들이 취향대로 좌지우지한다. 학생과 학부모의 자유는 실종된 지 오래다.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지낸 지 74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자유의 참다운 가치를 느끼지 못한다는 지적에는 당혹감을 느낀다. 어떤 이는 이를 정치적으로 해석해서 특정 정권이 자유민주주의를 훼손한 적폐를 적시했다고 하는데 이러한 정파적 해석은 국민 개개인이 자유 시민이 되는 여정에 아무런 보탬을 주지 않는다.

국민 개개인이 남녀노소, 지위의 고하, 빈부의 차이를 넘어서서 자신이 참으로 자유롭다고 느끼지 못한다는 의미로 해석하고 싶다. 취임사에서 권력과 군사력이 자유 시민을 위협한다고 했는데 권력은 비단 국가권력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다. 힘 있고 돈 있는 자는 크든 작든 간에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지위에 있다. 부모·교사·직장의 상사는 갑의 자리에서 을을 억압할 수 있다. 자유의 진정한 가치는 개개인이 모든 억압에서 벗어나서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개발하고 발휘할 수 있을 때 가슴으로 찡하게 느낄 수 있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진정한 자유 시민이 될 때 나라의 진정한 주인이 된다. 그럴 때만 정치인의 당파적 이해관계에 휘둘리지 않고 참다운 자유민주주의가 꽃필 수 있다.

윤석열 정부는 보수·진보가치의 화학적 결합을 통해서 정치적 반대세력을 보듬고 야당 역시 자유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겨서 공정하고 평등한 사회를 만드는 연대구축에 앞장서 줄 것을 기대한다.

■ 지성주의 충실해야 성공한 나라

「 지성주의는 계몽주의와 합리주의의 산물이다.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태동 역시 계몽주의와 깊은 관계가 있으므로 반지성주의는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 경제를 위기에 빠뜨리게 된다.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는 완전한 최종물이 아니고 불완전한 진화물이다. 문제점을 해결하면서 위기를 헤쳐나가는 자정 능력은 감정보다 이성을 앞세우고 과학적 진실을 규명하며 사실에 입각한 토론과 논쟁이 이루어질 때 비로소 생긴다. 지난 200여년간 성공한 국가는 지성주의에 충실하면서 제도적 개혁을 이루어 낸 국가다. 진화하지 않는 생물은 도태되듯이 개혁하지 못하는 국가는 폭력적 혁명을 겪거나 지도상에서 사라지기도 했다.

한국은 반지성주의 때문에 국권을 상실하였으나 해방 이후에 지성주의를 바탕으로 해서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루어 낸 성공국가다. 그러나 현재는 반지성적인 진영논리에 갇혀 버렸고 소통 대신 아집, 협치 대신 독단에 흘러서 통합과 멀어지고 분열사회로 치닫고 있다. 방치하면 실패국가의 오명을 피해가기 어렵다.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는 보수의 전유물이 아니고, 평등사회 역시 진보의 전매 특허가 아니다. 진보좌파의 가치를 일정 부분 수용해 나가는 과정이 자본주의 진화의 역사이며 자본주의의 효율과 생산력을 이용하는 것이 진보좌파 존립의 길이다.

이경태 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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