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면서 춤추는 댄서들 보고.. 사표 안 쓰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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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윤경 기자]
마흔 하나를 살고 있는 지금 누가 꿈이 뭐냐고 물어봐 준다면 "멋지게 나이 드는 사람이 되는 거"라고 답하고 싶다. 그런데 물어봐 주는 사람이 없다. 꿈을 꾼다는 건 어린 아이들만의 특권이라는 듯이.
어른들도 꿈을 꾼다. 먹고 사는 게 바빠서 종종 잊어버리긴 하지만 가슴 속엔 불씨 하나씩 품고 산다. 요즘 '추앙' 하는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만큼 손꼽아 기다리는 티브이 프로그램인 <쇼다운>에는 꿈을 먹고 자라는 어른들이 나온다.
일 하면서 춤추는 댄서들
작년 한 해 핫해도 너무 핫했던 '스트리트우먼파이트'의 또 다른 버전이라고 해도 좋겠다(여러 회차를 거듭하며 지금은 남자 댄서들만 남았는데 여자 댄서가 속해 있는 팀도 있었다).
동작 하나를 마스터 하기까지 수없이 넘어졌을, 그리고 다시 일어나 셀 수 없는 땀방울을 흘렸을 그들은 진정한 춤꾼이 되어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 잡는다. 중력에 맞서기라도 하듯 팔 하나로 온 몸의 무게를 감당한 채 두 다리를 하늘 향해 치켜들기도 하고(나인틴), 물구나무도 모자라 다리를 등쪽으로 끌어당기는(할로우백) 댄서들의 역동적인 기술들을 볼 때마다 감탄이 절로 나오는 동시에 가슴 벅찬 카타르시스마저 느낄 수 있었다.
▲ <jtbc 쇼다운="" 방송="" 중=""></jtbc> 2022. 4. 22.(금)방송 중 원웨이크루 팀이 자신들의 정체성인 '일하는 댄서'라는 콘셉트로 안무를 완성하여 좋은 평가를 받았다 |
ⓒ JTBC 쇼다운 |
상대팀 FXL은 댄서 한 명 한 명 모두 브레이크댄서들 사이에서 이름값 하는 실력자들이었으므로 어찌보면 원에이크루가 '패' 할 것이 뻔한 상황이었다. 자신들조차 상대 팀이 공격을 펼칠 때마다 '후달렸다'고 속마음을 내비칠 만큼 FXL팀 댄서들의 실력은 화려하면서도 탄탄했다.
이에 맞서는 원에이크루의 전술은 오로지 즐기는 것이었다. 한 팀으로 연습하는 기간 동안 정을 나눈 '친구'들을 상대로 기싸움을 하며 날까롭고 예민한 분위기를 형성하는 대신, 시종일관 상대를 응원하며 배틀에 임하는 내내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다. 지금까지보다 더 멋진 춤으로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무대에 열정과 실력을 모두 쏟아내었다.
결과 예측이 쉬울 거라는 초반의 반응과 달리, 탈락팀을 가리기 위한 총 다섯표 중 4명의 심사위원 점수는 2:2로 동점이었다. 마지막 한 표는 관객 투표로(관객들은 0~2점까지 점수를 주는데, 더 높은 점수를 득하는 팀이 한 표를 얻는다) 승패가 결정되는 상황이 되었다.
결과는 대이변. 모두의 예상을 깨고 관객들의 선택은 원에이크루였다. 각자가 가진 실력은 FXL팀이 한 수 위였을지 모르지만 무대 위에서 진정으로 즐긴 원웨이크루에게 관객들이 마음을 빼앗긴 것이 분명했다.
승리를 했지만 원웨이크루는 뜨거운 눈물을 흘려야 했다. 다른 팀들에 비해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내기 위한 시간이 충분치 않음을, 그에 대한 책임이 본인들에게 있음을 고백했다. 상대를 존중하면서 자신들의 춤에만 집중했을 뿐인데 모두가 '이변'이라고 말하는 결과가 뒤따랐다.
꿈과 현실
꿈은 멀고 현실은 가깝다. 그들에게 춤을 추는 일은 꿈의 영역이고 일을 하는 것은 현실의 영역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먹고 사는 걱정을 하지 않으면 가장 좋겠지만 삶이 그렇게 만만할 리 없다.
꿈을 쫓으며 사는 일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밥그릇을 채우는 것만큼 시급한 일이 세상에 또 있을까? 바쁘게 살다가 꿈을 잠시 미루기도 하고 꿈이 있었다는 사실을 잊기도 한다. 하지만 꿈을 이루지 못하며 사는 삶에 대한 책임을 온전히 밥벌이로 돌리지는 말자.
원에이크루의 멤버 스펙트럼은 "그냥 춤이 좋아서 버티려고 시작했던 게 일 하는 거였는데 둘 다 열심히 해서 좋았고 팀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스터번은 "여태까지 쉬지 않고 브레이킹 신에 있으려고 노력했는데 이러려고 노력했구나" 하고 말해 보는 이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그들에게 꿈이 춤이라면, 그들의 춤이 나에게는 글이다. 어느 때는 좋아하는 글을 쓰고 책을 읽을 시간을 마련하기 위해서 지금 하고 있는 일, 해야 하는 일이 부담이 되고 걸림돌이라는 생각에 직장을 그만 두고 싶은 마음까지 간절했다.
아침에 눈을 떠 책으로 하루를 열고, 글로 하루를 닫는 일과를 꿈 꾸었다.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지는 퇴사 관련 콘텐츠들을 접하며 나도 그들 틈에 끼고 싶어 열병을 앓기도 했다. 그러다 원웨이크루를 티브이에서 보았고 마음에 파문을 일으킬 만한 질문 하나를 스스로에게 던졌다.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 꼭 하고 있는 일을 그만둬야만 하는가?'
춤에 대한 열정과 확고한 믿음이 그들을 일터에서도 지치지 않게 했다. 생계가 안정 되어야 내가 꾸는 꿈이 선명해진다. 일을 하는 시간은 내가 하고픈 일을 할 수 있게 해주는 든든한 자원이다.
나의 경우, 일을 하며 느끼는 희로애락이 글감이 되어주기도 하니, 만약 일을 그만 둔다면 글감을 찾아 헤매는 배고픈 하이에나가 되어야 할 수도 있다. 퇴사가 정답이 될 수도 있지만 퇴사만이 능사는 아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가슴에 사직서를 품고 회사에 간다. 다만, 퇴사는 하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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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브런치에도 발행되는 글입니다. 브런치by달콤달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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