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솟는 물가에 한은도?..이창용 "빅스텝 완전히 배제 못해"

안효성 2022. 5. 16.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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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기준금리를 한 번에 0.5%포인트 인상하는 ‘빅스텝’ 가능성을 언급했다. 치솟는 물가와 좁혀지는 미국과의 금리 차에 한은의 추가 금리 인상은 이미 상수가 됐다. '빅스텝 인상'이라는 새로운 변수의 등장에 채권 금리가 급등(채권값 하락)하는 등 금융시장도 한차례 소란을 겪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6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조찬간담회에 참석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이 총재는 16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추경호 경제부총리와 조찬간담회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앞으로 빅스텝을 고려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5월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와 7~8월 경제 및 물가 상황 등을 봐야 한다”며 “향후 빅스텝을 완전히 배제할 수 있다고 말할 단계는 아니다”고 말했다.

물가 상황에 따라 하반기(7~12월)에는 빅스텝에 나설 수도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한은은 1999년 5월 금리목표제를 도입한 뒤 금리 인상 때는 베이비 스텝(0.25%포인트 인상)만을 고수해왔다. 빅스텝으로 움직인 건 6번으로 모두 기준금리를 내릴 때였다. 가장 최근은 2020년 3월17일(1.25%→0.75%)였다.

이 총재의 빅스텝 발언에 채권시장은 벌집을 쑤신 듯했다. 국채 3년물 금리는 이날 오전 한때 전 거래일보다 0.17%포인트 오르며 연 3.08%를 넘어섰다. 채권 금리가 치솟자(채권값 하락) 한은은 부랴부랴 진화에 나섰다. 한은 고위관계자는 “이 총재의 발언은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통화정책을 결정해 나갈 필요가 있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밝힌 것”이라고 말했다.

한은의 진화에 이날 국채 3년물 금리는 상승 폭을 줄이며 연 3.046%로 장을 마감했다. 윤여삼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임기 초기 한은 총재 발언에 대한 관심이 큰 상황에서 이 총재의 빅스텝 관련 발언은 채권시장의 금리 민감도를 높이는 재료가 됐다”며 “6월 소비자물가 수준이 확인될 때까지 빅스텝 가능성에 대한 잡음이 계속 남아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시장의 예민한 반응은 그동안 이 총재가 빅스텝 인상에 선을 그어왔기 때문이다. 지난달 19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도 “반드시 미국처럼 빨리 갈 필요는 없는 상황”이라고 답했다. 미국보다 물가상승률이 낮고, 경기 회복속도가 느린 만큼 빅스텝을 밟을 필요도 여유도 적다는 이유에서다.

소비자물가 추이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통계청]

이 총재의 발언 수위가 달라진 건 물가 상승 압력이 만만치 않아서다. 지난 3일 발표한 4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1년 전보다 4.8% 올랐다. 2008년 10월(4.8%) 이후 최대 상승 폭을 기록했다. 석유 등 원자재에서 시작된 물가 오름세가 서비스 등 다른 분야로 퍼지고 있는 데다, 물가 상승 기대 심리도 좀처럼 잡히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금융권에서는 한은이 오는 26일 금통위에서 기준금리를 0.25%포인트(연 1.5%→1.75%) 인상할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5·6월 CPI(전년동기대비)가 5% 후반을 넘어갈 경우 한은도 7월에는 빅스텝을 검토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좁아지는 한·미 기준금리 차도 한은의 빅스텝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다. 현재 한국(연 1.5%)과 미국(연 0.75~1%)의 기준금리 차이는 0.5~0.75%포인트다. 한은이 5월과 7월 두 차례에 걸쳐 베이비스텝을 밟고,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6월과 7월 두 차례 빅스텝을 밟을 경우 기준금리 상단이 연 2%로 같아진다.

다만 이 총재는 “미국과의 금리 차만 염두에 두고 정책을 하는 것보다 종합적인 성장과 물가 등을 봐야 한다”며 “한미 간 금리 격차로 생길 수 있는 여러가지 대처할 상황들은 거기에 맞춰 적응하는 것이 낫다”고 말했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한은이 빅스텝을 밟기엔 현실적 여건이 만만치 않다는 반론도 많다. 부풀어 오른 가계부채와 경기침체 우려 때문이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 교수는 “빅스텝을 밟기에는 가계부채가 너무 크다"며 "굳이 빅스텝을 밟아 경제 충격을 감수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도 이날 보고서를 통해 “미국을 따라 기준금리를 인상할 경우 우리 경제에 경기 둔화가 그대로 파급된다”며 "미국과 기준금리 격차는 용인할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

중국발 글로벌 경기 둔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이날 발표된 중국의 4월 경제지표는 코로나19로 상하이 등 대도시가 봉쇄된 충격이 그대로 반영됐다. 소매판매는 1년 전보다 11.1% 줄었고, 산업생산도 1년 전보다 2.9% 감소했다. 모두 시장 전망치를 크게 하회하는 수치다.

때문에 이 총재의 발언을 물가 상승 기대심리를 잡기 위한 일종의 '블러핑(bluffing·엄포)'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KB증권 임재균 연구원은 “제롬 파월 의장을 반면교사로 삼아 물가 통제를 위해서라면 모든 정책을 다 펼칠 수 있다는 한은의 의지를 보여준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파월 의장은 지난 5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후 자이언트 스텝(기준금리 0.75%포인트 인상) 가능성을 일축했다가 금융권에서 치솟는 물가에 대한 대응 의지가 약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안효성 기자 hyoz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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