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美 금리 역전 땐 외국인 '엑소더스'? 금리 역전보다 실물 시장 침체가 더 문제

배준희 2022. 5. 16.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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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빅스텝(한 번에 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으로 한미간 기준금리 격차가 바짝 좁혀졌다. 연준이 물가와 전쟁을 예고하면서 돈을 걷는 양적 긴축 행보를 본격화함에 따라 한미 기준금리 역전에 따른 자본 유출 우려도 고조되고 있다.

▶기준금리 역전 3차례

▷자본 유출과 상관관계 미약

한국은행에 따르면 한국(1.5%)과 미국(0.75~1%)의 기준금리 차이는 기존 1%포인트(상단 기준)에서 0.5%포인트로 좁혀졌다. 연준은 지난 5월 4일(현지 시간) 열린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후 미 기준금리를 기존 0.25~0.5%에서 0.75~1%로 올린다고 밝혔다. 골드만삭스는 연준이 5, 6, 7월 세 차례 빅스텝 이후 인상폭을 0.25%포인트로 줄이는 시나리오를 내놨다. 이에 따라 5월 26일과 7월 14일 예정된 한은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를 한 번 인상하고 연준이 6~7월 잇달아 빅스텝을 밟으면 7월 말에는 한미 기준금리가 역전된다.

통상 한국처럼 금융 시장에서 신흥국으로 분류되는 국가의 금리가 기축통화국인 미국보다 낮을 경우 자본 유출 현상이 빚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뒤따른다. 신흥국에 풀린 막대한 달러 유동성이 고금리를 좇아 기축통화국인 미국으로 회귀할 경우 주식·채권 등 자산 매도→신흥국 통화 가치 하락→자산 가치 추가 하락→자본 유출 등 악순환이 빚어진다는 논리다.

하지만 이론에 기반을 두는 논리와 달리 실물 경제에서는 금리 역전과 자본 유출 간 뚜렷한 상관관계가 목격되지는 않았다. 한국은행이 매달 금융통화위원회에서 콜금리(금융기관 간 초단기 대출금리) 운용 목표를 공표하기 시작한 1999년 5월 이후, 한미 기준금리 역전은 모두 세 차례(1999년 6월~2001년 3월, 2005년 8월~2007년 8월, 2018년 3월~2020년 2월) 나타났다.

세 차례 기간 중 외국인 투자자의 자금 유출 정도는 제각각이었다.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가장 최근인 2018년 3월부터 2020년 2월 사이 외국인 투자자는 국내 주식 시장에서 약 8조원어치 순매도했다. 이 기간 코스피지수 역시 2402에서 1987선까지 떨어졌다. 그러나 월별로는 외국인 투자자가 순매수를 보였던 때가 적지 않았고 코스피지수도 상승세를 보였던 기간이 존재했다. 같은 기간 국내 채권 시장에서는 외국인 투자자 자금이 순매수 흐름을 보였다. 2005년 8월에서 2007년 8월 동안에도 외국인 투자자는 국내 주식 시장에서 약 30조원 규모 순매도를 기록했다. 이 기간 코스피지수는 1115에서 1870선까지 올랐다.

종합하면, 한미 금리 역전 기간 동안 일정 수준의 자본 유출이 목격됐지만 주식과 채권 시장에서의 흐름이 달랐고 자본 유출에도 코스피지수는 오히려 상승했던 때가 있었다. 결과적으로 금리 역전과 자본 유출 사이에는 명확한 상관관계가 있다고 보기는 힘든 것이다.

민간 연구기관 전망도 엇갈린다. LG경영연구원이 발표한 ‘한미 정책금리 역전 확대·외국인 자금 유출 리스크 진단’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보다 정책금리가 낮아졌던 국가들의 사례 26개를 분석한 결과, 외국인 자금이 유출된 경우는 2번에 불과했다. 반면, 한국경제연구원은 한미 금리 역전에 따른 외국 자본 유출 규모를 금리차 0.25%포인트당 약 15조원(국내총생산의 0.9%)에 달할 것으로 분석했다. 이승석 한국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미국의 경기 회복세가 우리보다 견조하기 때문에 금리마저 높아지면 외국인 자금이 한국에 남아 있을 인센티브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금리 인상기 거시 변수 제각각

▷日·유럽, 제로금리 고수

미국 금리 인상기마다 거시경제 여건이 모두 다르다는 점도 금리 역전을 둘러싼 해석의 모호함을 가중시키는 요인이다.

가령, 1990년대 미국 경제는 정보기술혁명에 따른 초장기 호황과 폭발적인 주가 상승으로 증시의 비이성적 과열 우려까지 불거졌던 때다. 1999년 6월부터 금리를 올렸던 연준은 2000년 5월 0.5%포인트 인상까지 모두 6차례 금리를 올렸다. 이 여파로 물가 상승분을 제거한 실질금리는 15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급등했고 기업의 자금 조달 비용이 치솟자 증시는 곤두박질쳤다. 결국 그린스펀은 2001년 1월 FOMC를 앞두고 선제적으로 0.5%포인트의 금리 인하를 단행했다. 2005년 이후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까지도 세계 경제는 대체로 호황기를 맞았다. 당시 국내 경제는 중국발 수출 물량이 큰 폭 늘어나면서 경기민감형 업종이 수혜를 봤다. 2005년부터 2007년 사이 국내 증시에서는 중국발 수출 증가 덕을 봤던 조선, 철강, 기계 등 업종이 랠리를 이어갔다. 당시는 미국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저금리 정책으로 부동산 시장에 이상 과열 현상이 빚어지자 자산 시장의 버블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금리 인상을 단행했던 때다.

국내 기준금리가 미국보다 낮은 수준이 되더라도, 여전히 일본과 유럽 등 주요 선진국 금리보다 높은 수준이라는 점 또한 외국계 ‘엑소더스’ 가능성을 낮게 보는 요인이다. 세계 주요국 중앙은행이 미국을 따라 연이어 기준금리를 올리는 상황에서도 일본은행은 완화적인 통화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유럽 중앙은행인 ECB는 4월 통화 정책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현행 0%로 유지하기로 했다.

시장 시선은 오히려 금리 수준보다는 미국의 강력한 긴축이 실물 시장 수요 둔화를 초래할 가능성을 더욱 주목하는 분위기다. 현재 미 경기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문제는 작금의 금리 수준의 세 배 이상이 되는 내년부터 실물 시장 수요 둔화로 경기가 어려워질 것이라는 우려 때문에 증시가 하락한다는 데 있다. 나스닥 등 전 세계 성장주가 급락하는 이유도 결국 기업가치 산정 시 미래 현금흐름에 크게 의존하고 있어서다.

이에 따라 당분간 현금창출능력이 뛰어난 기업에 주목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미국의 긴축 ‘마이웨이’ 행보로 이미 실질금리는 플러스로 돌아섰다. 이는 저금리 국면에서 유효했던 ‘현금은 무용지물’이라는 명제를 무력화시킨다. 인플레이션으로 현금 가치가 급락하더라도 저금리 국면에서는 이를 보상받을 수단이 마땅치 않았으나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투자자들은 인플레이션에 따른 실질 구매력 상실을 금리로 상쇄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보유 현금이 풍부하거나 현금창출능력이 뛰어난 기업이 프리미엄을 받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김성환 신한금융투자 애널리스트는 “금리 인상으로 단순히 가치주가 유리하다는 식의 전략보다는 성장과 가격을 고려하면서 현금창출력이 높은 기업을 선택하는 것이 유리한 국면”이라며 “기업 이익이나 재무 퀄리티가 보장되지 않는 가치주는 가치 함정에 빠질 수 있다”고 조언했다.

[배준희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59호 (2022.05.18~2022.05.24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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