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슨 사태'로 들여다본 투자조합..5%룰·보호예수 없으니 언제든 '먹튀' 가능

나건웅 2022. 5. 16.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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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김준구 씨(가명)는 요즘 매일이 ‘지옥’ 같다. 1억원 가까운 돈을 쏟아부은 ‘에디슨EV(옛 쎄미시스코)’ 거래가 정지되면서 주식이 휴지 조각이 될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그를 더욱 분노케 만든 것은 최근 있었던 에디슨EV의 ‘파산 신청’이다. 에디슨EV는 최근 채권자에게 ‘36억원’을 갚지 못해 파산 신청을 당한 바 있다. 김 씨는 “36억원도 없는 회사가 어떻게 쌍용차를 인수하나. 애초에 불가능하다는 점을 알면서도 주가를 끌어올리고 차익을 실현하기 위해 인수전에 나섰다는 의심을 떨치기 어렵다. 돈을 댔던 투자조합들은 일찍이 이득을 보고 주식을 다 처분하고 나왔고 개미만 피눈물을 흘린다”며 분노했다.

에디슨EV에 물린 ‘개미투자자’들의 분노가 커지고 있다. 에디슨모터스가 쌍용차 인수자금 조달 창구로 활용하기 위해 인수한 코스닥 상장사 ‘에디슨EV’가 올해 3월 거래정지 처분을 받은 데 이어 상장폐지 얘기까지 흘러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분노의 화살은 이런 상황에서도 이득을 취하고 내뺀 ‘투자조합’으로 쏠린다. 이들은 쌍용차 인수 호재를 기획해 주가를 부양해놓고 주식을 처분, ‘먹튀’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지난해 에디슨모터스는 재무적 투자자(FI)인 투자조합 6곳과 함께 에디슨EV 지분을 인수했다. 하지만 이들 조합이 현재 보유하고 있는 지분율은 ‘제로’에 가깝다. 최대주주가 아닌 탓에 공시·보호예수 등 각종 규제 의무에서도 벗어나 있어 원칙상 처벌도 힘들다.

▶‘법의 사각지대’에 있는 ‘투자조합’

▷에디슨 투자조합 지분, 2달 만에 20%포인트↓

에디슨EV는 에디슨모터스의 최대주주인 에너지솔루션즈가 지난해 6월 인수한 코스닥 상장사다. 에너지솔루션즈는 에디슨EV 지분 16.67%를 확보하며 최대주주가 됐다.

강영권 에디슨모터스 회장의 지인들이 참여한 것으로 알려진 ‘투자조합’도 힘을 보탰다. 디엠에이치 등 투자조합 6곳은 지난해 5월 314억원을 들여 에디슨EV 주식 약 213만주를 사들였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투자조합인 디엠에이치가 53만2490주, 에스엘에이치 53만2489주, 아임홀딩스 30만9655주, 스타라이트 29만8526주, 노마드아이비 28만7397주, 메리골드투자조합이 16만9400주를 사들였다. 각 투자조합 지분율을 모두 더하면 40%에 육박한다.

이후 에디슨EV 주가는 그야말로 ‘롤러코스터’를 탔다. 줄곧 6000~7000원대를 유지하던 주가는 에디슨모터스가 쌍용차 인수전에 뛰어든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지난해 6월 4만원대까지 폭등했다. 지난해 11월 12일에는 장중 한때 8만2400원까지 치솟으면서 연초 대비 1000%가 훌쩍 넘는 기록적인 상승률을 보였다. 하지만 현재 상황은 암울하기 그지없다. 올해 3월 30일, 1만1600원을 끝으로 거래가 정지된 상황이다.

그렇다면 ‘사실상 최대주주’인 투자조합들도 손해를 본 것 아닐까. 그렇지 않다. “이미 지난해 중순, 보유했던 에디슨EV 지분을 대부분 처분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들 전언이다.

금감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투자조합이 보유한 지분율은 지난해 5월 말 기준 34.8%에서 같은 해 8월 초 11%까지 떨어졌다. 디엠에이치 보유 지분은 지난해 5월 30일 9.45%에서 같은 해 7월 9일 0.96%까지 줄었다. 아임홀딩스는 5.49%의 지분을 전량 처분해 7월 말 기준 지분율이 ‘제로’가 됐다.

지난해 8월 이후 이들의 지분율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는 파악조차 안 된다. 투자조합은 ‘5%룰’에서 자유롭기 때문이다. 5%룰은 상장 기업의 의결권 있는 주식을 5% 이상 보유한 자의 지분이 해당 법인 주식 총수의 1% 이상 변동된 경우 그 내용을 5일 이내에 금융감독원과 한국거래소에 보고하도록 의무화한 제도다. 투자조합의 지분율 총합은 약 35%로 최대주주인 에너지솔루션즈(약 16.7%)를 훌쩍 넘는다. 하지만 각 조합이 보유하고 있는 각각의 지분율은 최대주주보다 낮고, 지분 매각 후 5%를 밑도는 곳들도 많아 추이를 알기 어렵다.

‘보호예수 의무’에서도 자유롭다. 코스닥 시장 상장 규정 제51조는 실질적 영업활동을 하지 않는 법인이나 조합이 코스닥 상장사의 최대주주가 될 경우 투자한 기업 주식을 1년간 보유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하지만 앞서 살펴봤듯 투자조합은 최대주주가 아니기 때문에 보호예수 규제와 무관하다. 언제든 주식을 팔 수 있다는 얘기다.

가장 큰 문제는 주가 조작과 시장 혼란이다. 투자조합 여러 곳이 기업과 입을 맞춰 ‘인수합병’ 같은 굵직한 뉴스를 허위 살포한 후, 주가가 급등하면 팔아치우는 ‘먹튀’가 충분히 가능한 형태다. 한 금융투자 업계 관계자는 “현행 제도로는 투자조합이 주식을 대거 팔아치워도 위법 행위에 해당되지 않는다. 대량 매도해도 공시 의무가 없고 조합 대표자 외에는 다른 정보를 파악하기도 어렵다. 개미투자자들은 투자조합이 물량을 내던지는지도 모르고 있는 상태로 투자에 뛰어들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금감원 “투자조합, 대대적 단속 나선다”

▷실체 불분명한 투자조합 관련 투자 NO

투자조합 행태가 문제가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금융감독원은 2015년 1월부터 2016년 12월까지 2년간 발생한 투자조합의 기업 인수 사례 42건 중 총 13건의 불공정 거래 혐의를 포착해 조사에 나선 바 있다. 당시 금융감독원이 파악한 ‘투자조합 불공정 거래’ 양상은 다음과 같다. ‘재무 상태가 부실한 한계기업 인수 → 투자자 관심 유도가 용이한 분야에 진출 → 보유 주식 처분으로 시세차익 실현’이다. 이번 에디슨EV 사태와 패턴이 꼭 닮았다.

금감원은 올해도 투자조합 불공정 거래에 대한 대대적 단속에 나설 예정이다. 정은보 금융감독원장은 최근 “테마주 형성 등 시장 분위기에 편승한 불공정 거래 개연성이 나타나고 있어 시장 질서를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며 그 원흉으로 ‘투자조합’을 꼭 집어 언급했다. 그는 “투자조합 형태로 상장사 인수전에 나서거나 비상장 회사와 결탁해 우회상장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주가 조작·부정 거래 등으로 시세차익만 거두고 떠나는 세력이 있다. 현재 투자조합이 연관된 불공정 거래 10건을 조사 중”이라고 경고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실체가 불명확한 투자조합의 기업 인수와 관련된 투자는 지양할 필요가 있다. 사실상 최대주주 변경이 잦거나 대주주 지분율이 낮아 경영 안전성이 미흡한 곳도 피해야 한다”고 말했다.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 법·제도 손질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단순히 단속을 강화하는 것만으로는 이미 피해를 본 투자자를 구제할 길이 없다. 앞으로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또다시 피해자가 나타나면 그때는 늦다. 기업 인수와 관련된 투자조합에 대한 현행 보호예수 규제와 대주주 지분 변경 공시에 대한 의무를 보다 강화할 필요가 있다.” 고동원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제언이다.

[나건웅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59호 (2022.05.18~2022.05.24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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