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표 교수의 연극이야기]선과 악의 불완전한 인간들의 이야기 <반쪼가리 자작>

2022. 5. 16.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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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와 국가는 전쟁을 통해 성장하고 발전되어 왔다. 세계의 영토는 승자의 땅으로 편입되어 왔고, 전쟁의 역사적 폭력성은 인류를 파괴하고 멸망시키면서도 지배 권력에 의해 도시는 성장해 왔다. 그 누구도 역사의 전쟁과 죽음을 구원하지 못했으며 잔혹한 욕망으로 파괴된 국가와 인류는 폭력과 잔인한 ‘악’으로 인류의 지도를 그려왔으며 그들의 지배를 받아왔다.

역사적으로 세계 정치지형을 둘러싼 영토 전쟁과 극단적인 이념 전쟁, 수 세기 동안 일어난 전쟁은 박제(剝製)된 세계사나 한국사의 한 장면이 아니라 지금 이 시각에도 세계는 핵으로 무장하고 첨단무기를 만지작거리며 러시와의 침공(侵攻)으로 우크라이나 영토는 죽음의 핏물자국의 도시가 되어가고 있다. 잘한다 프로젝트(대표 조혜랑)가 기획한 <반쪼가리 자작>(창작조직 성찬파, 연출 박성찬, 5.5~15 소극장 알과핵) 은 17세기 오스만의 투르크인들과 이탈리아의 종교전쟁에 참전해 몸은 포탄의 파편으로 몸은 선과 악으로 반쪼가리가 되어 고향 테랄바(이탈리아)로 돌아와 영토를 지배하는 동화 같은 메다르도 자작의 이야기다.

작가 이탈로 칼비노의 단편소설을 박성찬 연출이 재해석하고 각색해 2019년도에 초연한 작품으로 꾸준한 재연공연을 거치면서 올해 제43회 서울연극제 공식참가작으로 선정된 작품이다. <반쪼가리 자작>은 초연 당시 6명의 배우와 스텝들이 연출을 중심으로 극단 <프로젝트 하다>에서 2021년부터 <창작조직 성찬파>로 도전적이고 공격적인 이름으로 변경해 작품을 무대화 해 오고 있다. 연출은 인형, 무대디자이너로 <애기똥풀>(2004 아스테이지 국제아동청소년연극제 미술상), <나무아이>(2013, 김천국제가족연극제 무대미술상)으로 알렸고 <행맨>(창작집단 싹)으로 제37회 대한민국연극제 네트워킹페스티벌에서 연출상을 수상했다. <시르릉 삐죽 할라뽕>, <누드왕>, <반쪼가리 자작> 등과 같은 작품을 연출해 오면서 무대에서 인형오브제, 배우의 놀이성으로 텍스트를 극대화해 무대 공간을 입체적으로 표현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불완전한 인간들의 욕망 <반쪼가리 자작>

칼비노의 소설 <반쪼가리 자작>은 메다르도 조카의 3인칭 시점으로 서술되는데 희곡으로 각색된 무대는 전쟁의 폭격으로 몸이 선과 악 반쪼가리 된 메다르도의 이야기다. 17세기 오스만제국 투르크인들과의 종교전쟁의 이야기가 광대들에 의해 설화처럼 포개진다. 텍스트의 우화적이면서도 동화적인 판타지를 배우들의 놀이성과 신체, 인형오브제로 장면전경을 확장하고 포탄이 떨어지는 메다르도의 전투 장면은 메타적 놀이로 극중 인형극으로 장면화해 칼비노의 판타지를 살려내는 식이다. 원작 텍스트의 동화적 상상을 연극적으로 표현하고 극대화한 연출의 시선이 돋보이는 장면들이다. 특히 광대로 분한 배우들은 ‘코메디아 델 아르테’의 캐릭터들을 연상시키며 ‘몸이 반으로 갈라지면서 순수한 악만 남게 되는 반쪽! 순수한 선만 남게 되는 또 다른 반쪽!!’ 이탈리아 델레바 가문의 명예를 높이기 위해 자원 입대한 메다르노 자작의 이야기로 되돌린다.

황제를 만나기 위해 떠나는 메다르도와 전쟁의 백전노장이자 하인인 쿠르치오(이경민 분)가 떠나는 전쟁의 길가는 말과 인간의 사체(死體)들로 넘쳐나고 배우들(광대)은 때로 삶과 죽음의 시체와 길가로, 전투에 나서는 용맹한 시민들로 분하면서 작가의 판타지적인 동화를 따라 텍스트는 장면의 언어를 입체적 이미지로 그리며 무대는 배우들의 신체로 장면을 만들고 인형오브제로 동화적 언어를 미니멀하게 그려낸다. 막대로 만들어진 말(馬)의 형상화는 메다르도로 분한 배우의 섬세한 신체로 전쟁으로 죽음의 도시가 되어 가는 장면의 분위기를 생산해 내고 말부터 죽이고 기사를 죽여야 생존할 수 있는 살육의 전쟁터를 달리는 말은 배우의 움직임으로 감정을 만들어 내고 인간과 말들의 사체는 인형들로 채워지면서도 장면 전환과 극중 장면이 겉돌지 않는다. 시선은 집중시키고 동화책 한 장 한 장 넘기는 속도감을 유지하는 배우들의 놀이성이 돋보인다.

배우들의 신체로, 인형 오브제로 텍스트의 상상과 선과 악의 유쾌한 질문 <반쪼가리 자작>

<반쪼가리 자작>을 판타지적인 우화로 무대장면을 구축하면서도 황세의 먹이가 되어가는 죽음과 도시의 길목은 전쟁과 페스트로 뒤엉켜진 죽음의 길가가 되어 배우들의 놀이성으로 장면을 만들고 투르크인들조차 버린 전쟁터의 노쇠한 창녀들이 유혹해도 메다르도 자작은 국가와 황제를 위해 전쟁의 승리만을 생각하는 선한 인간이다. 총·칼을 제대로 쓸 줄 모르는 델레바 시민의 존경을 받아온 선한 메다르도도 전투에 참전하면서 인간의 내면은 분열되고 사악한 승리의 욕망과 광기가 살아나는 악한 인간의 존재가 되고 살육의 전쟁터를 누비며 죽음의 전투에 참전한다. 메다르도 몸이 반쪽으로 갈라지는 흥미로운 장면이 일어난다. 무대는 메다르도의 전투 장면이다. 극중 인물은 관절인형으로 폭탄이 날아드는 장면들이 인형들로 채워지며 광대로 분한 배우들과 인형이 동일화를 이루며 한편의 전투장면을 인형극 극중극으로 재생되고 인형 메다르도는 적군의 포탄을 향해 달린다. 배우들은 인형 조종을 넘어 전쟁의 놀이 장면으로 극대화 시키고 인형극으로 모아지는 장면과 배우들의 놀이성은 연극적 메타성으로 전쟁을 비극의 축제로 장면화를 만들고 연출의 미장센이 칼비노의 소설을 입체화 한다. 때로는 광대들로 분한 배우들과 선·악으로 갈라진 메다르노와 인형들로 전환되는 장면(전투, 수술 장면)에서도 장면 전환이 텍스트의 상상을 자극하고 칼비노의 동화적 판타지를 연극적으로 표현하는 연출 감각이 느껴진다.

몸이 선과 악 반쪼가리로 갈라져도 살아남은 메다르도 자작의 이야기는 동화적판타지를 느끼게 하면서도 칼비노가 텍스트의 소재로 삼고 있는 선과 악의 양가적 인간과 전쟁역사의 소환은 극단적 이념의 대립, 전쟁과 공포, 인간의 희생과 죽음, 광기, 이념, 종교 갈등, 인간의 욕망이 극단화 되고 표현되는 것 보다 칼비노에게 전쟁은 ‘인간’이 대상화 된다. 이념이나 선과 악도, 죽음과 공포도, 권력과 지배의 욕망성은 인간을 통해 비롯되는 것이며 그것을 규정하고 선택하는 것 또한 인간의 문제이다. 칼비노에게 전쟁은 체제와 이념에 한정되지 않으며 직접적이지 않다. 전쟁은 인간들의 놀이로, 비현실적인 판타지로, 카니발적인 죽음의 놀이성으로 우화적이면서도 동화적으로 표현되어 지면서도 전쟁은 인간의 파멸과 죽음의 폭력만이 공존하는, 선과 악도 물화시키는 약탈적인 인간 광기의 세상으로 바라본다. 자유와 전쟁, 종교의 갈등과 이념의 분열, 악의 구원은 선함도 온전한 인간도, 절대적인 종교도 아니며 인간 스스로 구원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장면들은 메다르도 몸이 반쪼가리가 되어 고향 테렐바로 돌아오면서부터다.

악한 인간으로 오른쪽만 남겨진 몸으로 돌아온 메다르도는 아버지(아이울프 자작)을 죽음으로 몰아 놓고 테렐바의 영주가 된 그는 사악하고 포악한 인간의 잔인함을 보인다. 사형을 남발하는 영주의 판결에 시민들은 메다르도에게 절대적인 복종을 하게 되고 온전한 것들은 메다르도에 의해 불완전한 반쪽으로 갈라진다. 위그도 사람들과 문둥병 마을도 악한 인간을 통해 지배되는 영토와 인간들은 영주의 사악함과 악함을 잊게 되고 지배 질서에 길들여진다. 그 무엇도 결정 할 수 없는 선악의 양가성은 비로소 선한 존재로 살아남은 메다르도의 반쪽이 델레바로 돌아오면서 극명해 진다. 무대는 선한 메다르도가 전쟁터에서 수도사들에 의해 구출되는 장면으로 플레시 백 되고 반쪽으로 갈라진 청년 메다르도가 수행자들에게 기독교의 삼위일체와 무함마드의 자비와 포용에 대해 배우는 장면은 설화 그림자인형극 처럼 입체적인 장면화가 되어 텍스트의 판타지적 이미지가 선명하게 그려진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농작물 값을 10분의 1만’ 받으라는 선한 메다르도에게 시민들은 지쳐가고 인간의 선함과 가난한 자들을 위해 선한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그의 설교는 절대적인 진리로 삶의 방식을 변화 시킬 수 없으며 전쟁과 이념도, 죽음과 삶도, 인간의 갈등과 종교의 분열도 온전함으로 구원하지 못하게 된다.

소설의 텍스트, 동화적 상상

마지막 장면은 시민들은 자유를 찾기 위해 반쪽으로 갈라진 두 메다르로의 결투를 만들고 선과 악은 승리 하는 자가 없이 파멜라에 의해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온전한 인간으로 돌아온 메다르도 자작이다. “이 복잡한 세상이 우리에게 가져다준 문제를 현명해진 메다르도 자작이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라는 시민들의 말에 선과 악으로 온전해진 메다르도는 그 어떠한 판단과 인간을 구원해 줄 수 없는 무기력한 인간만 존재한다. 전쟁의 폭력과 인간 사회를 구원할 수 있는 것은 선과 악도, 절대적인 권력도, 이데올로기도 아니며 그 열쇠는 한 인간으로부터 구원되고 치유 되는 것이 아니며 국민과 시민으로부터 연속되어 지는 것이다.

연극 <반쪼가리 자작>은 전쟁의 포화로 몸이 반쪼가리가 된 극중 인물 메다르도 자작(김선권, 백효성 분)을 때로는 인간의 몸으로 선과 악으로 반쪼가리가 된 동화적인 캐릭터를 인형오브제로 활용해 배우들의 장면과 중첩시키며 칼비노의 판타지적인 서사를 연극적인 표현 방식으로 무대화시켰다. 세계사적인 전쟁을 통해 투영되는 죽음과 삶, 선과 악의 양가적인 인간의 욕망을 우화적인 놀이성과 동화적인 판타지로 그려내며 배우들은 칼비노의 텍스트를 신체로 구현하며 <반쪼가리 자작>소설의 텍스트를 동화적 상상으로 무대를 생산적으로 전경화 시켰다. 무대에서 그려지는 칼비노의 텍스트는 현실을 이탈(離脫)하면도 판타지적인 이미지로 그려지는 서사와 극중 인물들의 비현실적인 전경(全景)은 동시대에 살아가는 온전한 인간들의 선과 악의 욕망과 지금, 전쟁의 현실을 바라보게 만든다. 기대되는 연출가고, 앞으로 기대되는 극단이다. 언어와 모호함의 실험의 경계가 무대로 채워지는 시대에 배우들의 신체와 놀이성으로 인형의 오브제를 활용해 무대를 자신감 있게 채워가는 연출의 시선과 태도가 반가운 작품이다.

대경대학교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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