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 보육원 퇴소하던 날 입양.. "가족을 선물받았죠"

최기영 2022. 5. 16.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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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울타리를 만들다] ① 버림받은 것? 지킴받은 것!
윤도현씨에게 찾아온 기적
우리 사회가 바라보는 ‘가족’에 대한 시선은 주로 부부를 중심으로 한 친족 관계 집단을 향하는 게 일반적이다. 반면 일반적 시선에서 벗어나 있는 이들을 향해서는 ‘깨어진’ ‘미완성인’ ‘불안전한’ 등의 꼬리표를 단다. 입양아 이주민가정 가출청소년 미혼자(40대 이상) 미혼모 등이 그 영역에 속한 이들이다. 더 안타까운 것은 편견 어린 시선으로 ‘정상 가정’ ‘비정상 가정’을 가른 채 이들을 비정상의 범주에 넣거나 연민의 대상으로 대하는 모습이다. 가정의 달을 맞아 국민일보는 세상의 선입견 속에서도 ‘건강한 울타리’로서 가족을 만들고 진정한 행복을 추구해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5회에 걸쳐 조명한다.

윤도현씨가 지난 12일 경기도 부천의 한 카페에서 가족의 울타리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소개하고 있다. 부천=신석현

대한민국이 붉은 함성으로 가득했던 2002년 6월. 윤도현 밴드(YB)가 목청껏 ‘대한민국’을 외치며 응원가를 부르던 그때 윤도현(유한대 사회복지학과)씨는 생후 3일 만에 부모 품을 떠나 서울의 한 보육원에 맡겨졌다. 부모의 얼굴도 나이도 모르는 그에게 이름을 지어준 건 보육원 선생님이었다. 또래에 비해 정신적으로 성숙했던 그는 보육원 친구들이 이따금 일탈 행동을 할 때 그들을 타이르던 ‘어른 아이’로 통했다. 고교 시절, 친구들이 미디어에서 부정적으로 표현되는 ‘고아 캐릭터’에 상처를 받거나 편견 때문에 ‘고밍아웃’(고아와 커밍아웃의 합성어)을 두려워할 때도 당차게 자신의 보육원 생활을 소개하며 ‘인싸’(인사이더)로 살았다.

“보육원에서 생활하게 된 게 저의 잘못 때문이 아니잖아요. 결코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죠. 전 제가 버림받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오히려 지킴 받았다고 생각해요. 보육원에 맡겨지고 안전한 울타리를 만났기 때문에 더 위험한 상황에 처하지 않을 수 있었을 겁니다(웃음).”

지난 12일 경기도 부천의 한 카페에서 만난 윤씨는 유소년기를 보낸 자신의 보육원 생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보육원에서 생활하는 원생은 만 19세가 되면 ‘보호종료 아동’이란 이름으로 원을 떠나 독립해야 한다. 2020년 12월 15일 윤씨가 퇴소하던 날은 그에게도 보육원에도 특별한 날로 남아 있다. 동년배 친구들이 모두 자기 짐을 들고 혼자 퇴소할 때 윤씨 곁엔 4명의 가족이 함께했다. 그는 “새로운 둥지를 만났기 때문”이라고 했다. 입양을 통해 새 가족의 울타리 안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윤씨는 “고교 2학년 시절 우연히 보게 된 ‘보호종료 아동’에 관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이 삶의 전환점이었다”고 회상했다. 다큐멘터리는 윤씨에게 ‘보육원에서 유아, 청소년기를 보내고 보육원을 떠나게 될 후배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돼야겠다’는 결심을 서게 했다. ‘사회복지학’과 보호종료 아동 정책을 공부하면서 관련 분야 활동가들을 직접 만나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사각지대와 보완점을 찾는 데 주력했다. 그 과정에서 청소년 사역을 하던 김성준(인천 별을심는교회) 목사를 만났다. 청소년 사역 목회자와 청소년 활동가의 만남은 ‘일로 만난 사이’에서 멈추지 않았다.

2020년 12월 윤도현씨가 입양 후 가족들과 첫 외식을 하며 찍은 기념사진. 윤도현씨 제공


“목사님을 만나 3시간쯤 다양한 대화를 나누고 돌아오는 길이었는데 ‘저분이 내 아빠가 돼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고민 끝에 용기를 내 며칠 뒤 카톡을 보냈죠. ‘목사님이 제 아빠가 돼줬으면 좋겠어요’라고.” 이미 9살과 4살 남매를 키우고 있던 가정에 새로 맏이를 들이는 게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코로나19 여파 때문에 자주 만나 교감할 기회도 뚝 끊겼다. 하지만 하루에도 몇 차례 영상통화를 하며 서로의 삶을 나눈 끝에 사모도 윤씨에게 마음을 열었다. 윤씨는 “세심하게 내 마음에 공감해주고 날 신뢰해주는 모습을 마주하면서 어릴 적부터 꿈꿔 왔던 엄마를 기적처럼 만났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설명했다.

세상 어느 가족이 사랑스럽기만 할까. 윤씨네 가족에게도 일상 속 서운함이 있고 갈등이 숱하다. 평범한 가정에 일상적으로 나타나는 갈등도 입양가정에 엿보이면 ‘입양가정이라 그런가 봐’라는 선입견이 여전하지만 윤씨는 “갈등이 생기고 화해하면서 서로의 사랑을 확인할 수 있어서 더 가족 같다”며 웃었다. 19년 보육원 생활과 2년여 입양 가정생활을 경험한 윤씨에게 ‘가족의 울타리’란 무엇일까.

“가족은 혈연으로 묶인 관계가 아니라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심연’으로 묶인 관계 같아요. 지금의 아빠를 만나 신앙을 갖게 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란 말을 좋아하게 됐어요. 살아오면서 가족에 대한 결핍을 느끼는 순간들이 있었지만 돌아보면 하나님께서 보육원을 통해선 대가족을, 입양을 통해선 아담한 가족을 선물해주신 것 같아요.”

부천=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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