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집가 이건희 회장의 초대.. 명품 355점 스토리 살아 숨쉰다

손영옥 입력 2022. 5. 15.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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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컬렉션 기증 1주년 기념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는 이건희 컬렉션 기증 1주년 기념 특별전은 ‘어느 수집가의 초대’라는 제목으로 수집가의 집을 구경하는 콘셉트로 꾸몄다. 인상주의 화가 모네의 걸작 '수련이 있는 연못'이 창밖 정원 풍경처럼 보이게끔 설치한 모습.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입구엔 돌로 새긴 인물상 두 점이 손님을 맞는다. 근대기 조각가 권진규의 부조 작품 ‘문’을 지나면 민중미술가 임옥상이 한지를 사용해 한옥을 부조처럼 만든 ‘김씨 연대기’가 있다. 그곳 황토 마당에는 그 집을 일구고 세상을 등진 부부의 형상이 음각돼 있다. 후손의 현재가 선조들의 터전 위에서 이어지고 있음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인다. 창 너머로는 연못이 얼핏 보인다. 그 풍경이 궁금해 창밖을 돌아 나가면 정원에는 인상주의 화가 클로드 모네의 걸작 ‘수련이 있는 연못’이 걸려 있다.

모네의 '수련이 있는 연못'.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고 이건희 삼성 회장의 컬렉션 기증 1주년 기념전이 지난달 29일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개막해 인기몰이하고 있다. 3일 찾은 현장은 평일임에도 문을 열기 전부터 줄이 길게 서 있었다. 전시는 오는 8월 28일까지 열린다.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이 공동 주최한 전시이지만, 개최 장소를 고려해 박물관이 주도했다. 콘셉트는 ‘미알못’(미술을 알지 못하는 사람)을 위한 전시다. ‘이건희’라는 이름에 끌려 난생처음 미술관을 찾은 관람객을 염두에 뒀다. 전시 제목은 ‘어느 수집가의 초대’다. 이수경 학예관은 “지난해 기증이 이뤄진 후 SNS 등을 살펴봤다. 이건희 회장이 언제 어떻게 수집했는지, 수집품으로 어떻게 집을 꾸몄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가장 많았다. 전시를 통해 호기심이 대리만족 되도록 집처럼 꾸며보자는 생각을 했다”고 설명했다.

1부 ‘저의 집을 소개합니다’는 컬렉터의 집을 은유하는 공간으로 꾸몄다. 부부의 초상화가 등장하고 가족을 주제로 한 작품들이 나왔다. 일제강점기 우리나라 파리 유학파 1호인 이종우가 그린 ‘부친 상’, 박득순이 아내를 그린 유화 ‘봄의 여인’이 원래의 맥락과 상관없이 부부 초상화로 불려 나왔다. 장욱진의 ‘가족’, 권진규의 조각 ‘모자상’, 조선시대 실학자 정약용이 쓴 글씨 ‘정효자전’ ‘정부인전’ 등도 볼 수 있다. ‘정효자전’ ‘정부인전’은 유배 시절의 정약용이 강진 사람 정여주의 부탁을 받고 일찍 죽은 그의 아들과 홀로 된 며느리의 사연을 글로 쓴 서예작품이다. 조선 서화와 근현대 회화 및 조각 등이 가족애를 매개로 한 공간에 섞였다.

2부 ‘저의 수집품을 공개합니다’는 컬렉터의 수집품을 구경하는 느낌으로 꾸몄다. 네 가지 소주제로 나눴는데 ‘자연과 교감하는 경험’ 코너에는 자연에서 영감을 얻은 조선시대 산수화와 근현대 회화가 함께 나왔다. 국보인 겸재 정선의 걸작 ‘인왕제색도’를 여기서 만날 수 있다. 이 방에서는 조선 후기 풍속화가 김홍도의 ‘추성부도’, 생존 작가 박대성의 수묵화 ‘불국설경’, 조선 말기 서화가 이경승의 ‘나비’ 등이 한 달 간격으로 교체 전시된다.

조선시대 달항아리와 그 달항아리에서 영감을 얻은 김환기의 비구상 작품, 추상 작품을 나란히 설치한 전경. 손영옥 기자


두 번째 ‘자연을 활용하는 지혜’에서는 토기, 도자기, 금속공예품을 내놨다. 고대 토기부터 조선 후기 백자 각병까지 시대순으로 진열한 코너에선 이건희 컬렉션이 시공을 초월할 정도로 방대하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권진규의 테라코타 조각 ‘손’이 예술 행위를 상징하며 고미술품이 즐비한 코너에 슬쩍 들어갔다.

세 번째 ‘생각을 전달하는 지혜’에선 불교미술과 전적류를 집중 소개한다. 고려불화 ‘수월관음도’와 ‘천수관음보살도’(보물)가 교대로 소개된다. ‘석보상절’ 등 귀중한 옛 책도 여기서 만난다. 서책은 국립중앙박물관 기증품의 40%(1만점)를 차지한다. 많다는 느낌을 주기 위해 서책 꾸러미를 서가에 올려둔 것도 재치있다. 네 번째 ‘인간을 탐색하는 경험’에서는 상상력과 창의력의 산물로서 예술품을 돌아본다. 사람들이 쏟아져 나온 모습을 형상화한 이응로의 ‘군상’도 여기 있다. 천경자의 ‘만선’(광양 전남도립미술관) 이인성의 노란 옷을 입은 여인상(대구미술관) 등 5개 지역 공립미술관이 소장한 기증작도 서울 나들이를 오면서 총 355점이라는 엄청난 컬렉션을 볼 수 있다.

작품을 디스플레이할 때 시각적 유사성에 전적으로 기댄 만큼 미술사적·사회사적 맥락은 무시됐다. 광주민주화항쟁을 배경으로 한 이응로의 ‘군상’이 저항을 은유한다는 본래의 의미와 다르게 전시된 게 그 예다. 스토리텔링이 돋보이지만, 깊이에서는 아쉬움이 있다.

손영옥 문화전문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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