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녹화 있어?" 그의 발언은 두둔이었나 외압이었나

이경원 2022. 5. 15.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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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윤 외압 재판 '영상녹화' 언급 상반된 해석
이성윤 서울고검장이 지난 13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공판에 출석하는 장면. 뉴시스


이성윤 서울고검장은 대검찰청 반부패강력부장(검사장)으로 있던 2019년 6월 20~21일 당시 안양지청 차장으로 근무하던 배용원 서울북부지검장에게 처음 전화를 걸었다. 안양지청이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에 대한 출국금지 조치에 절차적 문제가 있었다는 혐의를 잡고 수사를 하던 때였다. 당시 이 고검장 전화를 받은 배 지검장은 “왜 이런 것을 가지고, 문제가 없는 건데 이런 보고서를 보내고 수사하려고 하느냐”는 뉘앙스였다고 현재 기억하고 있다. 배 지검장이 이 고검장에게 바로 항의하진 않았지만, 속내로는 ‘문제가 되는데 수사하지 말라는 의미인가’ 생각했다고 한다.

이 고검장의 배 지검장에 대한 두 번째 통화는 수일 뒤인 2019년 6월 26일 오후 1시9분부터 약 10분간 이뤄졌다. 안양지청은 법무부 출입국 부서 직원들을 조사하던 상황이었는데, 배 지검장은 두 번째 통화에서는 어느 정도 이 고검장에게 항의의 뜻을 표했다. 수일 전에 이어 되풀이된 전화에 그는 “왜 검사 말을 못 믿고 다른 사람 말만 듣고 그러시느냐” “우리 다 수사할 때 이상한 것이 나오면 확인을 하지 않느냐”고 했다고 한다. 이때 이 고검장은 조금 당황한 기색이었고, 이때 “영상녹화 있어?”라고 배 지검장에게 물었다고 한다.

이 고검장의 안양지청 수사외압 의혹 사건을 심리하는 서울중앙지법 형사27부(재판장 김옥곤)에서는 이 고검장이 ‘영상녹화’를 거론한 진짜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공방이 벌어졌다. 피고인인 이 고검장 측은 ‘검사를 오히려 보호하거나 두둔하려던 것’이었다고 하는 반면, 이 말을 들은 안양지청 측은 증인으로 나와 ‘수사를 문제시하며 검사를 추궁하는 의미’로 받아들였다는 반응이다. 전화를 주고받은 이들은 통화 분위기 자체를 다르게 기억한다. 일선 차장으로서 전화를 받은 배 지검장은 ‘어려운 분’임에도 항의를 표하자 상대방인 이 고검장이 당황했다고 했다. 반면 이 고검장은 통화 분위기가 나빴다거나 다퉜다는 기억은 없었다고 말하고 있다.

이 고검장 측은 배 지검장에게 전화를 건 것은 당시 현안과 관련한 총장 지시를 전달하는 뜻이었을 뿐, 안양지청의 특정 수사를 꺾으려는 의도는 없었다는 입장이다. 의정부지검에서는 2019년 5월 당시 한 병원 사무장이 수사를 받던 중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고, 이에 유족이 강압수사 의혹을 제기한 것이 반부패부장과 지청 간 통화로 이어졌다고 이 고검장 측은 강조한다. 당시 검찰총장이 ‘영상녹화는 검사 개인을 보호하기 위한 훌륭한 장치’라고 지시사항을 하달했고, 이에 특별수사 지휘를 총괄하는 이 고검장이 주초부터 각 일선 차장들에게 내선과 휴대전화 등으로 연락을 돌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배 지검장도 이 고검장이 영상녹화가 검사를 보호하는 장치라는 취지로 말을 한 것은 어느 정도 기억한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대화 말미에 이뤄진 언급일 뿐, 대검 차원에서의 어떤 일반적인 지시를 전달하는 통화로는 들리지 않았다고 했다. 배 지검장은 안양지청의 당시 수사를 대검이 승인해 주지 않으니 더 나아갈 수 없지만, “우리 차원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다 확인해 놓자”는 입장이었다고 법정에서 증언했다. 그는 “나중에 이 사건이 어떤 식으로든 재론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도 했다.

이 고검장이 영상녹화를 거론한 진짜 배경이 무엇이었는지, 안양지청의 수사를 꺾을 의도가 아닌 ‘일반론’에 그쳤는지는 다른 정황들과 함께 재판부의 판단을 받게 된다. 이 고검장은 배 지검장에게 전화를 걸던 무렵 다른 지청 관계자들과도 영상녹화를 주제로 통화한 사실이 있다고 법정에서 말했다. 검찰 관계자는 “이 고검장의 일방적 주장에 불과하다”고 했다. 그런 성격의 통화라면 반부패강력부장이 직접 하지도 않는다고, 많은 검사들은 말한다.

이 부분이 논란이 되자 재판부는 이 고검장 측에 다른 일선 지청 관계자와 통화한 내역을 지난 13일 기일까지 제출토록 권고했었다. 영상녹화를 운운한 2019년 6월의 통화가 안양지청에만 유별나게 이뤄진 것인지, 여타 지청에도 실제 그런 지시가 있었는지 알아보려는 것이었다. 다만 이 고검장 측은 지난 13일까지는 다른 지청 차장들에게 연락한 것을 증빙하는 자료들을 재판부에 내지는 못했다.

이 고검장의 수사외압 의혹 사건에는 현직 검사들이 줄줄이 증인으로 법정에 출석하고 있다. 2019년 당시 서울동부지검장이던 한찬식 전 검사장도 지난 13일 증인으로 나왔다. 앞으로도 당시 대검 반부패부 관계자들과 문무일 당시 검찰총장의 증인신문이 예정돼 있다. 배 지검장은 증언을 마치며 “안양지청에서는 수사 중 새로운 사실을 발견해 수사하겠다고 대검에 보고했지만, 못 했다. 이게 이 사건의 본질”이라고 했다. 이 고검장 측은 ‘사후편향적’이라고 했다. “안양지청에선 중요할 수 있었겠지만 대검에선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했으면 당시 대검이 ‘태평’했던 건 어떻게 설명할 것이냐”고 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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