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원 짜리가 '김프' 붙어 1414원..루나 '지옥의 단타' 판친다

이태윤 2022. 5. 15. 16:14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최근 일주일 99.99% 하락하며 극심한 변동성을 겪는 한국산 암호화폐‘루나’를 두고 투자자와 트레이더 사이 ‘죽음의 단타(단기 투자) 폭탄 돌리기’가 벌어지고 있다. 특히 국내 일부 거래소에서는 국제 시세보다 2800배 이상 비싸게 거래되는 이상 현상도 나타났다. 사진은 12일 서울 서초구 빗썸 고객센터 전광판에 비트코인 등 가상자산의 차트가 표시된 모습. 뉴스1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한국산 코인 '루나'의 가격이 최근 일주일 사이 99.99% 하락했지만, 지옥에서도 마지막 한 방을 노린 '루나'를 둔 투자자들의 '단타 폭탄 돌리기'가 벌어지고 있다. 그 여파로 국내 일부 암호화폐 거래소에서는 루나가 국제 시세보다 2800배 이상 높은 가격에 거래되는 이상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글로벌 암호화폐 시황 중계사이트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15일 오후 1시 기준 루나는 24시간 전보다 52.13% 오른 0.0003791달러(약 0.5원)에 거래 중이다. 이날 오전 한때 230% 오르는 등 가격이 널뛰고 있다. 지난달 100달러를 넘었던 루나가 최근 일주일 사이 99.99% 하락한 만큼 하루 등락률은 사실상 의미가 없다.

문제는 터무니없는 '김치 프리미엄(김프)'이다. 김치 프리미엄은 국내 암호화폐 시세가 해외 거래소보다 높은 것을 뜻한다. 15일 오후 1시 기준 빗썸에서 루나는 24시간 전보다 15.9% 오른 1414원에 거래 중이다. 국제 시세보다 약 2800배 이상 ‘김프’가 붙었다. 게다가 24시간 거래대금 규모만 149억원에 이르며 빗썸 기준 상위 10위에 이름을 올렸다.

과거 비트코인 등 주요 암호화폐의 국내 거래가격이 해외 시장 보다 비싼 적은 많았지만, 루나와 같은 격차는 이례적이다. 국내 최대 암호화폐 거래소인 업비트에서 루나는 같은 시간 0.8원 정도에 거래되고 있다. 빗썸과 같은 '김프'는 없었지만 전날보다 0~50% 오르내리는 등 극심한 변동성은 마찬가지였다.

15일 오후 1시 30분 기분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 빗썸에서 루나가 1400원이 넘는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반면 글로벌 암호화폐 시황 중계 사이트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같은 시간 루나의 가격은 0.1달러 미만이다. 제공 각 사이트 캡처

루나의 비정상적인 '김프' 현상은 상장 폐지 직전까지 큰 변동성을 이용해 단기 차익을 노리는 일부 거래자와 반등을 틈타 손해를 조금이라도 줄여보려는 기존 투자자가 뒤섞인 영향으로 풀이된다. 업비트는 오는 20일 루나의 거래를 중단할 계획이고, 빗썸도 오는 27일 오후 3시 루나를 상장 폐지한다.

박성준 동국대 블록체인연구센터장 “(루나의 급등은) 상식적이지 않은 이상 거래 현상”이라며 “이미 암호화폐 시장에서 신뢰를 잃은 만큼 이전 가격을 회복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김형중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특임교수도 “단기 변동성을 잘 타면 몇 배 수익을 낼 수 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착각”이라며 “관련 암호화폐를 정리하고 관망하는 편이 좋다”고 조언했다.

암호화폐 업계는 ‘죽음의 단타 대회’에 최대 수만 명이 몰렸을 것으로 추정한다. 업계에 따르면 13일 0시 기준 국내 4대 거래소의 루나 보유 투자자는 약 17만명 수준이었다. 업계 관계자는 “단기 시세 차익을 노리고 신규 투자자가 유입되며 루나 보유 투자자가 20만명으로 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며 “변동성이 심해 정확한 규모나 피해 상황 파악은 어렵다”고 말했다.

제공 권도형 트위터 캡처

루나의 자매 코인인 테라는 가격이 1달러에 고정되도록 설계된 스테이블 코인이다. 테더처럼 담보물을 현금이나 채권 등 유동자산으로 보유한 스테이블 코인과 달리 테라는 권도형 테라폼랩스 최고경영자(CEO)가 고안한 ‘테라 생태계’에서 루나와 테라의 공급량을 연동하는 자체 알고리즘을 통해 가치를 유지해왔다.

테라 가격이 1달러 아래로 떨어지면, 루나를 지불하고 테라를 사들이며 테라의 공급량을 줄여 1달러로 복귀하는 방식이다. 반대로 테라 가격이 1달러를 넘어서면, 루나를 사고 테라를 시장에 풀면서 가치를 떨어뜨렸다.

지난달 루나는 118달러까지 올랐지만 최근 암호화폐 급락세에 테라가 1달러 밑으로 떨어지고, 루나의 가치마저 폭락하자 가격 방어를 위한 알고리즘이 무너졌다. 블룸버그는 11일(현지시각) “테라와 루나의 가치는 이것이 유지될 수 있다는 투자자의 믿음에 기반을 둔다”며 “모든 것이 무너졌다. 죽음의 소용돌이에 빠졌다”고 보도했다.

권 CEO도 자신의 실패를 인정했다. 그는 지난 14일 트위터에 “최근 며칠간 UST(테라)의 디페깅으로 엄청난 충격을 받은 테라 커뮤니티 회원과 직원, 친구, 가족과 전화 통화를 했다. 내 발명품(테라‧루나)이 여러분 모두에게 고통을 안겨 비통하다”고 적었다.

루나발(發) 암호화폐 시장 혼란에 금융당국도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15일 암호화폐 업계 및 관련 부처에 따르면 암호화폐 관련 주무 부처인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루나 사태가 터지자 긴급 동향 점검에 나섰다.

다만 실질적인 규제나 처벌까지 이어질 지는 미지수다. 금융 당국은 특정금융정보업법(특금법)에 따라 자금세탁 방지 관련 업무에만 권한이 있고 암호화폐 거래는 기본적으로 민간 자율영역이기 때문이다. 금융 당국은 이후 주요국의 암호화폐 규제 법률에 대한 제정 추이를 지켜보며 관련 법 제정에 나설 방침이다.

이태윤 기자 lee.taeyun@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