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성범죄 당했다면 공격적 방어·빠른 상담이 최선"

강준구 2022. 5. 15.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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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범 한 달 서울 안심지원센터 르포
한 달 만에 800여건 상담
"경찰 수사 중" 공격적 방어가 필요


내 신체를 촬영한 영상이 불특정 다수에게 공개된다면 당장 숨이 턱 막히는 공포가 찾아온다. 어렵게 영상을 지웠더니 며칠 뒤 다른 사이트에 올라온다면? 해외 유명 성인 사이트에 퍼진다면? “영상을 유포하겠다”며 강도가 센 노출 영상이나 금품을 요구하는 협박을 받는다면? 벌써 인스타그램을 끼고 사는 내 10대 아이가 이런 범죄에 연루된다면?

피해자의 영혼까지 잠식하는 디지털 성범죄에 대응하기 위한 원스톱 대응 기관인 ‘서울시 디지털 성범죄 안심지원센터’(지원센터)가 지난 3월 출범했다. 개관 한달 만에 상담 사례가 800건을 넘어설 정도로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희정 피해지원팀장은 “무엇보다 중요한 건 빠르게 신고해 전문가가 개입토록 하는 것”이라며 “공격적 방어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고 말했다.

10대를 노리는 온라인 그루밍

서울 디지털 성범죄 안심지원센터 전경

내 딸이 5000원짜리 문화상품권에 넘어가 스스로 노출 동영상을 타인에게 보냈다면 이를 쉽게 이해하는 부모가 드물다. 디지털 성범죄는 이런 허점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아이는 ‘내가 잘못한 것’이라는 죄책감에 시달려 부모에게 말하지 못하고 가해자에 끌려다니기 십상이다. 애초에 처음부터 문화상품권 한 장에 심한 노출 영상을 보내는 경우는 거의 없다. “손이 예쁘다”, “눈이 매력적이다”로 시작해 신뢰 관계를 쌓은 뒤 점차 요구하는 신체 부위가 노골적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한 번 사진을 보냈다면 그다음부턴 거부할 수 없게 된다. “네가 스스로 보낸 사진을 네 SNS 친구 등에게 뿌리겠다”는 협박을 받으면, 그래서 내 잘못이었다고 자책하기 시작하면 그다음부턴 속수무책으로 끌려다닌다. 영상들은 돈벌이로 전락해 여러 성인사이트와 웹하드 등으로 퍼져나가게 된다. 이 단계에 이르면 자포자기하는 피해자들이 급격히 늘어난다.

지난달 26일 서울 동작구 대방동 지원센터에서 만난 이 팀장은 “빨리 전문기관을 찾아 상담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두렵다 보니 주저주저하게 된다. 죄책감이 있다 보니 신고를 하지 못하는 것”이라며 “‘당신 잘못이 아니다’고 해도 ‘내가 사진을 보낸 건데 왜 내 잘못이 아니냐’라고 자책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이효정 서울시여성가족재단 지원센터장도 “신고 전화를 했다가도 ‘나중에 다시 하겠다’고 끊는 경우도 많다”고 전했다.

서울 디지털 성범죄 안심지원센터 상담실 모습

그래서 첫 번째 상담이 매우 중요하다. 실제로 디지털성범죄 전문 기관이 아닌 일반 성범죄 지원 기관에 연락했다가 “디지털 범죄 특성을 너무 몰라 답답했다”고 호소하는 피해자들이 적지 않다. 이 팀장은 “첫 전화에 어떻게 응대하느냐가 매우 중요하다. 안심지원을 위해선 처음 개입할 때 숙련도 있게, 노련하게 접근해야 한다”며 “상담을 통해 ‘내 잘못이 아니다’라고 인식하게 하는 게 중요하다. 그리고 피해를 최소화하려면 무조건 빨리 신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기까지가 첫 번째 단계다.

공격적 방어

일단 이런 영상을 발견하면 삭제 작업과는 별도로 형사 절차를 밟게 되는 경우가 많다. 추가 피해자를 예방하고, 가해자 처벌을 위한 절차다. 그런데 이 밖에도 형사 절차를 밟는 이유가 있다. 이 팀장은 이를 공격적 방어라고 표현했다. 그는 “일단 형사고소가 들어가면 영상을 유통하는 업자들 사이에 소문이 난다”며 “‘이 영상은 경찰에 고소된 건’이라는 소문이 나면 유포자들도 함부로 퍼트리지 못한다”고 말했다.

유포 피해 사건의 경우 고소를 반복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아직 가해자를 확정하지 못한 상태에서 여러 사이트에 시차를 두고 영상이 올라오는 경우다. 이 팀장은 “우리는 가해자를 잡아야 한다. 사이트 하나에 영상이 올라올 때마다 반복적으로 채증을 해 경찰에 고소한다”고 설명했다. 영상이 올라올 때 마다 등록자의 아이디, 올라온 시간 등을 파악해 잡힐 때 까지 계속 고소를 할 수밖에 없다. 이런 과정에서 피해자는 끝없는 고통에 빠져들게 된다.

이 팀장은 “한번 영상이 올라왔다가 한동안 조용해졌던 건이 있었다. 그런데 한참 후에 다시 영상이 등장했다”며 “그러면 피해자가 굉장한 두려움을 느낀다”고 말했다. 통제범위를 벗어난, 인생의 거대한 사건에 직면하게 되면 무기력감이 엄습한다. 이 팀장은 “우리의 무기력이야말로 가해자가 원하는 것일 수 있다”며 “피해자를 다독이고, 다시 작업을 시작한다”고 설명했다. 숙련된 피해자 지원 인력이 필요한 가장 큰 이유다.

그는 “모든 과정을 통틀어 피해자가 지지받고 있다고 느낄 수 있어야 한다”며 “국가 기관의 지원, 피해 회복에 대한 보장 의지를 느끼고 안정감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부연했다. 서울의 지원센터는 대부분 민간위탁인 다른 기관과 달리 서울시여성가족재단에 공공위탁 운영한다. 이 팀장은 “공공기관이 개입한 만큼 새로운 모델을 세워야 한다. 피해 회복 전 과정을 일원화하고 체계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끝까지 간다

지원센터는 대법원 판결까지 피해자를 지원한다. 모든 과정을 함께하는 ‘찾아가는 지지동반자’ 사업이다. 일반 형사 소송 지원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사건 발생 이후 모든 대응을 피해자와 같이 설계해 대응하는 과정이다. 이 센터장은 “고소장 작성부터 수사기관 진술 동행, 전문가를 연계한 심리 치료까지 함께 하는 것”이라며 “경찰서 출장도 자주 간다. 피해자 진술 시 불미스러운 상황을 예방하고, 피해자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팀장은 “형사 소송에만 같이 가는 게 아니라 아예 모든 과정을 피해자와 같이 설계해 대응하게 된다”며 “3심까지 형사 소송을 지원하는 것을 비롯해 모든 과정을 굉장히 긴밀하게 논의한다”고 부연했다. 상담사로서도 정신적·육체적으로 힘든 장기전이지만 이 팀장은 “피해자 인생이 흔들리는 중요한 사건이기 때문에 소홀히 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 센터장은 “피해 시민과 일대일 맞춤형으로 전 과정을 지원하고, 삭제지원 등에 시간을 쏟아야 하는 업무인 탓에 사실 직원에 대한 심리 지원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실제 삭제지원 업무의 경우 전담팀이 일일이 성인사이트에 회원으로 가입해 영상의 정보를 확인하고 사업자에게 삭제를 요청하고 있다. 5~7일 단위로 삭제 여부를 모니터링한다. 최근에는 경찰청과의 협업을 통해 크롤링(자동정보 수집)을 통한 불법 촬영물 자동 삭제 시스템을 구축 중이다. 이 시스템이 완성되면 피해자가 일일이 여러 사이트를 방문하는 고통스러운 과정이 크게 줄어들 것으로 기대된다.

나날이 법망의 사각지대를 파고드는 디지털 성범죄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전문인력 양성이 가장 시급하다. 이 팀장은 “전문 인력을 양성하고, 마음 편하게 지원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센터장도 “결국 상담사의 역량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며 “인프라 구축은 물론 지원센터의 역량 강화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만약 디지털 성범죄 피해가 의심된다면 상담 전용 직통번호 ‘815-0382(영상빨리)’로 전화하면 된다. 직통번호는 오전 10시~오후 5시까지 운영되며, 야간·휴일에는 여성긴급전화 1366과 연계돼 24시간 상담할 수 있다. 아동·청소년 등 전화 상담이 부담스러운 상황이라면 카카오톡에서 ‘지지동반자 0382’를 검색해 상담하면 된다.

강준구 기자 eye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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