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좀 죽여달라"던 전신마비男, 12년뒤 입으로 세상 만났다
“보기엔 볼품없어도 소중한 물건이에요”
지난 2일 인천의 한 가정집. 휠체어에 탄 아들의 얼굴엔 미소가 가득했다. 그의 곁엔 기다란 막대들이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50㎝가 넘는 이 막대는 튀김용 젓가락에 미술용 붓을 덧댄 그만의 그림 도구다. 손과 발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아들을 위해 아버지가 만들었다고 한다. 두께가 다른 붓엔 각기 다른 번호가 붙었다. 아들이 숫자를 말하면 아버지나 도우미 교사가 그에 맞는 붓을 건넨다.
이날 ‘3번 붓’을 입에 문 아들은 한참 캔버스를 바라보더니 이내 팔레트에 짜인 녹색 물감을 찍어 채색을 시작했다. 그는 “입으로 그린다는 게 어색했지만, 이젠 세상과 만나는 저만의 방식이 됐다”며 웃었다. 13년째 입으로 그림을 그리는 구필(口筆)화가 임경식(45)씨 얘기다.
불의의 사고로 접게 된 꿈
처음 겪는 장애인의 삶은 녹록지 않았다고 한다. 늘어지는 중환자실 생활과 반복되는 재활에 지친 그는 “나를 죽여달라”고 소리쳤다. 퇴원해 집에 돌아와선 욕창이 2차례 생길 정도로 칩거를 고집했다. 그럴 때마다 그를 일으켜 세운 건 가족이었다. 어머니는 뇌졸중으로 편마비를 앓으면서도 매일 아들을 위해 기도했다. 어린이집 교사였던 누나는 동생을 위해 직장을 그만두고 간병인을 자처했다.
2009년 ‘동굴’을 고집하던 경식씨가 마음을 돌렸다. 어머니의 병세가 나빠지고 아버지가 생업을 내려놓으면서 더는 짐이 될 수 없단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뭘 할지 고민하던 차에 우연히 구족화가가 그린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장애가 있어 입이나 발로 그림을 그리는 이들이었다. 붓을 잡아보라는 제안을 수차례 거절했던 그였지만 그 순간만큼은 화가가 되어보고 싶단 마음이 강했다고 한다.
유튜브 영상으로 시작한 화가의 길
불편한 몸으로 매번 강습을 다닐 순 없었다. 자연스레 유튜브가 그림 선생이 됐다. 입에 붓을 물고 영상을 보면서 그대로 따라 했다. 1시간 정도 붓대를 놀리면 입이 마비되고 목이 뻣뻣해졌지만, 쉽사리 붓을 놓지 않았다. 그를 위해 매번 물감과 이젤을 준비하는 아버지가 눈에 아른거려서다. 주로 유화를 그렸다. 수채화와 달리 쉽게 고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바깥세상이 그리웠던 그는 풍경을 주로 그림에 담았다.
임씨는 이제 대한민국 미술대전에 작품을 내보겠다는 목표를 향해 뛰고 있다. 더 많은 이들이 자신의 그림으로 용기를 얻고 따뜻해졌으면 하는 게 그의 바람이다. 그는 인터뷰 막바지에도 자신처럼 좌절했던 이들을 위한 조언을 잊지 않았다. “한때는 저도 죽고 싶었어요. 하지만 죽어도 되는 삶은 없어요. 저도 어항 속을 나오기까지 십수 년이 걸렸어요. 새로운 삶은 반드시 옵니다.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심석용 기자 shim.seok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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