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8년 된 스트라디바리우스 바이올린 가격이 256억원?

장지영 2022. 5. 15.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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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9일 경매 .. 역대 최고가였던 1741년산 과르네리 델 제수의 159억원 경신 가능성
6월 9일 미국 악기 전문 경매회사 타리시오에 나오는 1714년산 스트라디바리우스 다 빈치·엑스 세이델은 최고 낙찰 예상가가 2000만 달러(약 256억원)로 역대 바이올린 최고가를 경신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타리시오 홈페이지

스트라디바리우스와 과르네리는 클래식 음악을 잘 모르는 사람들조차 이름을 들어본 적 있는 현악기 브랜드다. 17~18세기 이탈리아 북부 크레모나 지역 현악기 제작 가문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명기 중의 명기’로 평가받는다. 제작된 지 300년 넘은 지금도 연주자들의 사랑을 받는 것은 물론 미술품처럼 많은 투자가의 관심 속에 고가로 거래되고 있다.

현재까지 공식적으로 공개된 역대 바이올린 최고가는 2014년 경매에서 1600만 달러(약 205억원)에 낙찰된 1741년산 과르네리 델 제수 비외탕(Vieuxtemps)이 가지고 있다. 그리고 1721년 스트라디바리우스 레이디 블런트(Lady Blunt)가 2011년 1590만 달러(약 204억원)에 팔렸는데, 일본음악재단이 2008년 사적 거래에서 1000만 달러에 샀다가 동일본 대지진 직후 구호기금 마련을 위해 내놓은 것이다.

스트라디바리우스와 과르네리는 악기 이력 중 유명했던 소유자의 이름이 더해지는 경우가 많다. 과르네리 델 제수 비외탕은 19세기 벨기에 출신 유명 바이올리니스트 앙리 비외탕이 소유했던 데서 유래하고, 스트라디바리우스 레이디 블런트는 영국 시인 바이런 경의 손녀인 앤 블런트 부인이 가졌던 데서 이름이 지어졌다.

프랑스의 원로 바이올리니스트 레지스 파스키에(왼쪽)가 고령으로 무대에 잘 서지 않게 됨에 따라 그동안 사용해오던 1736년산 과르네리 델 제수를 프랑스 경매회사 아퀴트에 내놓았다. 아퀴트 홈페이지

오는 6월 미국과 프랑스의 경매에 명품 바이올린 2대가 잇따라 나올 예정이어서 클래식 애호가들과 악기 투자가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두 바이올린이 역대 거래 최고가의 역사를 새로 쓸 가능성이 커서다.

먼저 6월 3일(현지시간) 프랑스 경매회사 아퀴트에 나오는 1736년산 과르네리 델 제수는 최고 낙찰 예상가가 1050만 달러(약 135억원)로 역대 바이올린 거래 탑5에 안에 들 수 있다. 76세의 나이 때문에 무대에 잘 서지 않게 된 바이올리니스트 레지스 파스키에(76)가 내놓은 것으로 10여 년 만에 경매에 나온 과르네리 델 제수라는 점에서 큰 관심을 끈다.

이어 6월 9일 미국 악기 전문 경매회사 타리시오에 나오는 1714년산 스트라디바리우스 다 빈치·엑스 세이델(da Vinci·ex-Seidel)은 최고 낙찰 예상가가 2000만 달러(약 256억원)로 역대 바이올린 최고가를 경신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 악기의 이름은 1923년 프랑스 파리의 악기상이 당시 보유하던 스트라디바리우스에 이탈리아 화가들의 이름을 붙인 뒤 제정 러시아 시절 우크라이나 출신으로 1930년대 미국에 건너온 바이올리니스트 토스차 세이델(1899~1962)이 소유한 데서 붙여졌다. 세이델은 이 악기로 뮤지컬 영화 ‘오즈의 마법사’ 등 여러 할리우드 작품에서 연주해 대중적 인기를 얻었다.

6월 9일 미국 악기 전문 경매회사 타리시오에 나오는 1714년산 스트라디바리우스 다 빈치·엑스 세이델은 제정 러시아 시절 우크라이나 출신으로 미국에 건너온 토스차 세이델이 1924~1962년 연주한 것이다. 사진은 세이델의 생전 모습. 타리시오 홈페이지

바이올린의 탄생과 명기 음색의 비밀
크레모나는 ‘바이올린의 고향’으로 불린다. 16세기 즈음 아마티 가문이 중세 시대 현악기를 개량해 오늘날의 바이올린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스트라디바리우스는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1644~1737)와 두 아들이 만든 현악기를 포함하지만, 일반적으로 90세 넘게 장수하며 현악기의 표준을 완성한 아버지 스트라디바리가 만든 것을 지칭한다. 18세기에는 라벨에 제작자와 지명의 라틴어로 써야 했는데, 요즘은 대체로 스트라디바리우스는 악기·스트라디바리는 제작자를 가리킬 때 각각 사용한다.

어린 시절 아마티 공방에서 배운 뒤 독립한 스트라디바리는 젊은 시절부터 섬세한 음질과 정교한 세공으로 명성을 날렸다. 평생 1100여 대의 악기를 만들었지만 현존하는 것은 바이올린 550여 대, 첼로 50여 대, 비올라 12대를 포함해 650대 정도로 추정된다. 그리고 실제 연주되는 것은 100대가 채 안 되며, 소장용 가운데 일부는 연주자에게 대여해주기도 한다.

아마티, 스트라디바리와 함께 3대 바이올린 제작 가문으로 불리는 과르네리는 1650년대 안드레아 과르네리가 아마티 공방 견습생을 하면서 시작돼 손자인 주세페 과르네리(1698~1744)에 와서 명성을 떨쳤다. 주세페 과르네리는 악기 라벨에 자신의 라틴어 이름인 요제프 과르네리우스와 함께 십자가, 예수의 첫 세 글자를 로마자로 표기한 I.H.S를 적었기 ‘과르네리 델 제수(예수의 과르네리)’라는 별명을 얻었다.

바이올린 제작자 라벨은 소리통 아랫판 안쪽에 쓰여 있는데, f자 울림구멍을 통해 볼 수 있다. 위 사진은 6월 9일 경매에 나오는 1714년산 스트라디바리우스 다 빈치·엑스 세이델의 라벨에 18세기 법령에 따라 라틴어로 쓰여진 제작자의 이름과 지명 그리고 제작년도가 적혀 있다. 아래 사진은 1736년산 주세페 과르네리 델 제수의 레이블에 십자가와 IHS 글자가 보인다. 타리시오-위키미디어

과르네리 델 제수는 스트라디바리우스에 비해 디자인은 거칠지만 깊고 풍부한 소리를 낸다. 그래서 유럽 궁정의 수요는 거의 없었지만 높지 않은 가격에 좋은 소리를 내는 일반 음악가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주세페 과르네리는 평생 200개 정도의 바이올린밖에 만들지 않았다. 스트라디바리우스보다 더 희귀한 셈이다.

두 악기 브랜드를 비교해 스트라디바리우스의 화려하고 유려한 음색을 ‘여성적’이라고 한다면 거칠지만 깊은 소리를 내는 과르네리 델 제수를 ‘남성적’으로 평가한다. 대체로 사운드가 기본적으로 뛰어나고 예민해서 연주자가 악기에 맞추는 게 스트라디바리우스라면, 과르네리 델 제수는 연주자가 자신의 개성에 맞게 악기를 길들이는 것에 따라 사운드의 격차가 크다. 이 때문에 젊은 시절 스트라디바리우스를 선호하다가 나이 들어서 과르네리 델 제수를 좋아하는 비르투오조(Virtuoso, 명연주자)가 많은 편이라고 한다.

스트라디바리우스와 과르네리 델 제수가 명기인 이유에 대해서는 그동안 다양한 연구가 행해졌다. 제작자의 기량과 함께 1645년부터 100년간 지속한 ‘미니 빙하기’가 바이올린의 음색에 큰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크레모나의 현악기 제작자들은 크로아티아산 단풍나무를 썼는데, 추운 겨울로 인해 나무의 밀도가 높아 음색을 좋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또한, 나무를 갉아 먹는 해충과 곰팡이를 억제하기 위해 각종 화학 약품으로 방부제 처리를 한 것이나 이전과 다른 고품질의 바니쉬(니스칠)도 음색의 질을 높였다는 연구 결과 등도 나와 있다. 그런가 하면 2011년에는 의료용 컴퓨터 단층 촬영(CT) 기술을 활용한 스트라디바리우스의 복제품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가격 높아질수록 악기 둘러싼 논란도 이어져
스트라디바리우스와 과르네리 바이올린의 가격은 보관상태, 음질, 이력 등에 따라 달라진다. 기본적으로 100만 달러 이상을 호가하며 1700~1725년 사이 ‘황금기’에 만들어진 것은 500만 달러 이상에 거래된다. 사적 거래에서는 경매 등에서 공개된 가격보다 더 높게 팔렸을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1716년산 스트라디바리우스 메시아는 영국 옥스퍼드 애슈몰린 박물관에 소장돼 있어 경매에 나올 가능성이 거의 없지만 혹시라도 거래될 경우 2000만 달러를 훌쩍 넘길 것이라는 예상이 오래전부터 나온 바 있다. 바이올린이 거의 연주되지 않아 변형이 거의 없을 뿐만 아니라 19세기 비르투오조 요셉 요아힘도 20세기 비르투오조 네이던 밀스타인도 음색을 격찬한 바 있기 때문이다.

또 비올라는 원래 바이올린보다 가격이 낮지만 1719년산 스트라디바리우스 맥도널드는 2014년 미국 소더비 경매에 최소 경매가 4500만 달러에 나왔다. 비록 유찰되긴 했지만, 경매 시작가격부터 유난히 높았던 것은 스트라디바리가 만든 비올라의 수가 매우 적기 때문이다.

스트라디바리우스나 과르네리 델 제수의 가격이 천문학적으로 올라가다 보니 2000년대 들어 이들 악기에 투자하는 전문 펀드도 다수 등장했다. 실제로 이들 악기 투자의 평균 수익률은 20% 안팎이나 됐고, 일부는 40%에 육박해 다른 펀드 수익률을 압도했다. 이 때문에 요즘 연주자들은 고가인 이들 악기를 직접 소유하기보다 임차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간혹 젊은 연주자들은 콩쿠르 우승이나 후원자 등을 통해 연주 기회를 얻기도 한다.

저명한 바이올리니스트 로만 토텐버그가 1980년 도난당했다가 지난 2015년 발견된 1734년산 스트라디바리우스 에임스. 이 바이올린은 생전에 절도 혐의자로 의심됐지만 증거 불충분으로 수색 영장이 신청되지 못했던 바이올리니스트가 사망한 후 그 부인이 감정을 의뢰하면서 세상에 다시 나왔다. 고유식별 번호를 알아본 감정사가 경찰에 신고함에 따라 스트라디바리우스 에임스는 이미 사망한 토텐버그를 대신해 그의 딸들에게 되돌아갔다. AP연합뉴스

하지만 이런 경제적 가치 때문에 스트라디바리우스나 과르네리 델 제수는 수차례 도난되기도 했다. 다만 도난된 악기가 공식적으로 거래되기는 어렵다. 명품 악기에는 고유식별 번호가 있어서 도난된 악기가 나오면 바로 신고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난된 악기가 수년 안에 다시 발견되기도 하지만, 일부는 여전히 안개 속에 감춰져 있다.

또한 스트라디바리우스나 과르네리 델 제수의 가격이 과연 타당한지에 대한 논란도 오랫동안 이어지고 있다. 수차례 블라인드 테스트에서 현대 악기가 이들 악기 못지않다는 것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연주자는 안대를 낀 채 연주하고, 음악에 식견 있는 청중은 무작위로 소리를 듣는 실험을 한 결과 연주자와 청중 모두 소위 ‘명기’와 현대 악기를 구분하지 못했다. 오히려 음색과 음향 방사도 등 모두 현대 악기가 더 우수하다고 선택했다.

다만 이런 객관적인 실험이나 스트라디바리우스가 300년 이상 되면서 원목의 심한 건조로 음색이 점점 나빠진다는 연구에도 불구하고 스트라디바리우스나 과르네리 델 제수에 대한 열망은 시들지 않고 있다. 이들 악기가 단순한 연주를 넘어서는 영감과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 악기가 앞으로도 경매에 나올 경우 최고가 경신을 이어나갈 가능성이 크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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