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리'부터 '투캅스'까지, 한국 영화 명장면 여기 다 있다

양형석 2022. 5. 14.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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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한국 최초의 패러디 영화 <재밌는 영화>

[양형석 기자]

'선생 김봉투', '씁쓸한 인생', '황해', '생활의 발견', '놈놈놈',' 은밀하게 연애하게', '깐죽거리 잔혹사' 등은 KBS2 <개그콘서트>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던 코너들이다. '황해'나 '생활의 발견', '놈놈놈'처럼 영화 제목을 그대로 따온 것도 있고 코너 성격에 맞게 제목을 살짝 비튼 것도 있지만 모두 영화 제목을 패러디해 만들어진 개그코너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처럼 패러디는 개그에서 빠질 수 없는 요소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명장면이 탄생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여지없이 예능이나 개그 프로그램에서 그 장면이 코믹하게 패러디 된다. 가끔은 원작에 대한 모욕과 풍자로 원작자와 갈등을 빚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악의 없이 웃기는 목적으로 사용되기 때문에 원작자도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관대하게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할리우드에서는 영화 <탑건>을 기본으로 80년대 영화들을 패러디한 찰리 쉰 주연의 <못 말리는 비행사>, 많은 호러 영화들을 코믹하게 패러디한 <무서운 영화> 등이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리고 90년대 중반부터 한국영화가 '주류'로 관객들의 사랑을 받게 되자 2002년 신인 장규성 감독은 한국 최초의 패러디 영화 <재밌는 영화>를 제작·개봉했다. 
 
 <재밌는 영화>는 현재까지도 한국영화의 '유일한' 패러디 영화라는 점에서 의미가 큰 작품이다.
ⓒ 시네마 서비스
 
소소하고 아기자기한 감독의 데뷔작

대학에서 무역학을 전공한 장규성 감독은 90년대 초반 장일호, 김일수 감독이 만든 <나는 너를 천사라고 부른다>의 조감독으로 일하면서 전공과는 무관한 영화계에 발을 들였다. 90년대 중반부터 김상진 감독 밑에서 <돈을 갖고 튀어라>,<깡패수업>,<투캅스3>의 조연출을 맡으며 경험을 쌓던 장규성 감독은 직접 각본을 쓰며 데뷔작을 준비하다가 2002년 국내 최초 패러디 영화인 <재밌는 영화>를 연출하며 데뷔작을 선보였다.

사실 <재밌는 영화>는 기존에 있던 한국영화들의 명장면들을 버무려 만든 패러디 영화였고 장규성 감독 역시 각본이나 각색작업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따라서 장규성 감독의 색깔을 작품 속에 녹일 기회가 부족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장규성 감독은 2003년 <신라의 달밤>과 <라이터를 켜라>,<광복절 특사>로 한창 주가를 올리던 모델 출신 배우 차승원을 캐스팅해 실질적인 데뷔작이라 할 수 있는 <선생 김봉두>를 선보였다.

전교생이 5명 밖에 없는 시골 분교로 발령 받은 비리교사의 교화스토리를 코믹하게 풀어낸 <선생 김봉두>는 전국 240만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했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장규성 감독은 <선생 김봉두>를 통해 이원형 작가와 함께 대종상 시나리오상을 수상하며 '이야기꾼'으로서의 능력을 인정 받았다. 그리고 장규성 감독은 그만의 소박하고도 아기자기한 감성과 정서를 녹여낸 차기작들을 선보였다.

강원도 홍천에서 태어나 도시가 아닌 시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장규성 감독은 2004년 또 한 번 시골학교를 무대로 한 사제지간의 갈등과 화해를 다룬 <여선생 vs. 여제자>를 연출해 110만 관객을 모았다. 훗날 예능프로그램 <삼시세끼>와 <스페인하숙>으로 명콤비가 되는 차승원과 유해진을 주연으로 캐스팅한 <이장과 군수>역시 시골마을을 배경으로 소소한 재미와 웃음, 감동을 주며 120만 관객을 즐겁게 했다.

그렇게 시골이야기 전문감독으로 자리를 잡아가던 장규성 감독은 2012년 주지훈과 백윤식 주연의 사극 코미디 <나는 왕이로소이다>를 연출했다. 하지만 <나는 왕이로소이다>는 차태현, 오지호 주연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와 개봉시기가 겹치며 전국79만 관객을 모으는 데 그쳤다. 장규성 감독은 지난 2019년 칠곡 계모 아동학대 사망사건을 모티브로 한 <어린 의뢰인>을 만들며 새로운 장르에 도전하기도 했다.

28편의 한국영화 패러디, 한일 병폐 비판까지
 
 <재밌는 영화>는 무려 한국영화 28편의 명장면들을 패러디했다.
ⓒ 시네마 서비스
 
<재밌는 영화>는 <쉬리>를 비롯해 <동감>,<인정사정 볼 것 없다>,<친구>,<주유소 습격사건>,<접속>,<여고괴담>,<초록물고기>,<엽기적인 그녀>,<간첩 리철진>,<넘버3>,<번지점프를 하다>,<거짓말>,<투캅스>,< 공동경비구역JSA >,<반칙왕>,<서편제>,<박하사탕>,<비트>,<약속> 등 90년대부터 2001년까지 개봉했던 28편의 한국영화들을 패러디해 만들어진 한국 최초의 본격 패러디 영화다.

이야기의 기본이 되는 <쉬리>나 800만 관객을 모으며 당시 한국영화 최고 흥행성적을 기록했던 <친구>, 극적인 연출이 가능한 <인정사정 볼 것 없다> 등은 영화 속에서 여러 장면이 패러디 됐다. 반면에 <접속>이나 <여고괴담>,<거짓말>,<박하사탕>처럼 영화에서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던 명장면이나 명대사만 짧게 나오고 조용히 퇴장하는 영화들도 적지 않았다. 심지어 <8월의 크리스마스>는 지나가는 포스터로만 등장했다.

<재밌는 영화> 주인공으로 임원희, 김정은, 서태화, 김수로가 캐스팅 됐는데 시간이 흐른 후 다시 영화를 감상하면 당시 배우들이 굉장히 열과 성을 다했는지 알 수 있다. 실제로 <재밌는 영화>의 주역들 대부분은 이 작품 이후 대중들에게 더욱 익숙한 배우가 됐고 특히 김정은은 차기작 <가문의 영광>을 통해 500만 관객을 모으며 전성기를 달렸다.

<재밌는 영화>는 상영시간 내내 각종 패러디로 관객들을 웃기는 코미디 영화지만 마지막 남북일 정상들의 예술공연 장면에서는 상미(김정은 분)의 대사를 통해 한국과 일본의 병폐를 비판하기도 했다. 상미는 종군위안부, 역사교과서, 독도문제 등을 비판하며 현장에 있던 한국관객들에게 박수를 받지만 "일본 그렇게 욕하면서도 몰카, 원조교제, 출장마사지 그딴 거 제일 먼저 받아들인 게 네들이잖아"라고 일침을 가한다.

영화의 감동코드(?) 책임진 고 김인문 배우
 
 고 김인문 배우는 영화 <동감>을 패러디해 북한의 최고권력자를 무선통신으로 처음 만난다.
ⓒ 시네마 서비스
 
대놓고 '패러디를 통한 코미디'를 표방한 영화답게 웃음을 주기 위해 조연 및 카메오들도 대거 출연한다. 특히 오프닝 장면에서는 당시 <뉴논스톱>에 출연하며 최고의 여성 예능인으로 주가를 올리던 박경림이 '수술 전 하나코' 역으로 출연해 온갖 액션과 코믹 연기를 선보였다. 특히 사람 사이에 있는 장애물을 맞춰야 하는 사격훈련에서 귀신 같이 사람만 명중시키며 구석에 있던 무라카미를 긴장 시킨다.

독특한 발성과 순박하고 서민적인 연기로 사랑 받았던 고 김인문 배우는 한국의 대통령으로 출연했다. <동감>의 페러디로 북한의 최고 지도자(정진각 분)와 무선통신을 통해 친분을 쌓는 한국대통령은 옥류관 서울분점에서 비를 홀딱 맞으며 김위원장을 기다린다. 그리고 영화 말미에는 김위원장과 <약속>의 성당장면을 패러디하며 <재밌는 영화>에서 몇 안 되는 감동적인 장면을 연출했다.

이원종이 연기한 고국장은 <쉬리>에서 윤주상 배우가 연기했던 OP 책임자와 <반칙왕>에서 부지점장을 연기했던 송영창을 합친 듯한 캐릭터다. 극 중에서 갑두(서태화 분)를 보기만 하면 헤드록을 거는 고국장은 PPX를 분실한 무라카미의 테러가 실패로 돌아갈 때마다 "무라카미가 의외로 소심한 구석이 있구만. 그 큰 경기장에서 쓰레기통 하나라니"라는 진지한 대사로 관객들에게 소소한 재미를 던져준다.

지난 2000년 1월에 개봉했던 장선우 감독의 문제작 <거짓말> 패러디 장면에서는 훗날 <타짜>의 곽철용으로 유명해지는 김응수가 등장했다. 한국과 공조하기 위해 내한하는 일본의 와타나베 형사를 연기한 김응수는 김정은과 함께 <거짓말>의 한 장면을 코믹하게 패러디했다. 그리고 하나코에 의해 제거당한 후에는 조사를 나온 황보(임원희 분)와 갑두의 <투캅스> 패러디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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