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단색은 고향 통영의 푸른 바다와 하늘에서 왔죠"
서울 종로구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원로작가 심문섭(79)의 개인전 ‘물(物)에서 물(水)로’(6월 6일까지)가 10일 개막했다. 전시가 열리기 전 막바지 설치 작업이 한창인 지난 8일 전시장에서 작가를 만났다. 20여년 후학을 가르치던 중앙대 미대에서 정년퇴직한 후 그는 경남 통영과 프랑스 파리의 작업실, 가족이 있는 서울을 오가며 작업한다.
이번 전시에는 조각과 회화 등 다양한 장르 작품이 출품됐지만 회화에 방점이 찍혀 있다. 2층 전시장의 경우 단색의 물감층이 띠를 이루며 너울대는 듯한 거대한 캔버스들이 벽면을 가득 메우고 있다. 큰 것은 가로 6m의 대작이다. 에너지가 분출된다. 파란색도 있고 짙은 회색이나 검은 회색으로 채워진 캔버스도 있다. 모두 세로로 그은 붓의 결이 살아 있어 리듬감이 있다. 얼핏 요즘 미술시장에서 상한가를 치는 ‘단색화’(단색의 추상화)로 묶일 것 같은 저 작품은 뭘 표현한 걸까.
“내 작품이 박서보 하종현 등이 하는 단색화와 비슷하게 비칠 수 있겠지요. 그런데 내게 단색이란 풍토적인 것, 지리적인 것에서 왔습니다. 유년 시절 바닷가에서 놀던 체험이 묻은 겁니다. 바다도 푸르고 하늘도 푸르고…. 다만 그 푸름이 젊음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물고기가 푸드덕 뛰듯이 말이지요.”
그것은 파도였다. 그가 그린 화폭에는 ‘내 고향 남쪽 바다’ 경남 통영의 파도가 잔물결 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통영에서 나고 자랐다. 어릴 적 그에겐 바다가 놀이터였다. 도시 아이들이 학교 갔다 오면 골목에서 종일 놀았던 것처럼, 그는 또래들과 바다에서 해가 질 때까지 놀았다. 배가 고프면 자맥질해 들어가 멍게 해삼을 따서 먹었다.
파란색, 혹은 회색의 단색 띠들은 파도의 재현이 아니다. 그가 단색으로 그린 추상화는 밀려왔다가 사라지고 다시 탄생하는 시간의 띠이기도 하다. 누군가는 이를 “생성과 소멸을 거듭하는 생명의 표면, 시적 마티에르”라고 표현했다.
심 작가는 ‘포스트 단색화 작가’로 분류되는 걸 거부하지 않았다. 다만 캔버스에 표현하는 단색이 박서보 등 대표적인 단색화 작가들의 단색 개념과 차이 난다는 점을 강조했다. 1970년대 중반부터 집단적 움직임처럼 캔버스를 단색으로 채우기 시작한 이들의 작품 세계는 ‘조선 도공의 물레질’ 혹은 ‘선비의 구도 자세’ 등으로 비유됐다.
“나의 행위(붓질)는 구도하는 것은 아니지요. 어릴 때 통영 바다에서 물장구치고 헤엄치던 자유로움이 배어 있어요. 한마디로 내 작품에는 흐르는 무엇이 있습니다.”
이번 전시에는 근년에 해온 회화 작품이 많이 나왔다. 캔버스를 몇 개 붙인 500호 이상 대작도 여러 점 내놓는 등 스케일이 남다르다. 그래서 ‘어, 심문섭 작가가 회화로 완전히 돌아섰군’이라는 인상을 주기 쉽다.
그는 조각가로 통해왔다. 서울대 미대 조소과 학·석사를 졸업하고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에서 조각으로 상을 받았다. 한국은 물론 일본 도쿄, 프랑스 파리, 중국 베이징 등 각국을 돌며 조각가로서 개인전을 했다. 2009년에는 ‘문신 조각상’도 받았다. 그래서 말년에 하는 회화 작업이 상업성을 고려한 것 아니냐는 뜨악한 시선을 받을 수도 있겠다.
“소설을 읽다가 소설은 못 씁니까. 시는 못씁니까. 쓰기도 하고 읽기도 하는 거지요. 캔버스에 붓을 들면 그림이 되고 나무와 끌을 들면 조각이 되는 겁니다. 라디오도 다이얼을 마음대로 돌리는데 사람은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게 말이 되나요. 우리는 대학에서 조각·회화 분류해서 공부시키지만, 저쪽(서구)에서는 장르를 넘나들며 여러 공부를 많이 시킵니다. 심문섭이 그림 그리니 ‘엉뚱한 짓 한다’ ‘영 생소하다’ ‘안 해도 될 일을 하는가 보다’ 평가하는 데 저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그는 2005년부터 회화 작업을 병행하고 있다. 회화를 하기까지 시간이 걸린 건 “내 문법과 내 색깔을 찾는 시간이 걸려서”라고 설명한다. 사실 심문섭은 조각가이지만 조각의 고정관념에 끊임없이 반발하는 ‘반조각’을 추구했다. 그러면서도 1980~90년대 몰두했던 ‘목신 연작’은 인기를 끌었다. 덕분에 ‘목신 작가’라는 애칭도 얻었다. 2017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개인전도 했다. 작가들의 최고 로망이 살아 있을 때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여는 것이다. ‘목신 연작’은 나무를 다듬은 듯 다듬지 않은 느낌을 주고, 자연의 형상인 곡선과 문명의 상징인 기하학적 직선이 공존하는 추상조각이다. 전통 조각에서 벗어나 설치 작품이라고 불러야 할 작품도 했다.
1970년대 초반 전위적인 작업을 하던 30대 청년 작가 시절에는 ‘현전’ 연작 등 입체적 조각이면서도 평면적 작업을 한 게 눈에 띈다. 평면은 미술사 전통에서 회화의 다른 이름이 아닌가. 그는 사포로 문질러 일부분이 인위적으로 닳게 된 캔버스 천을 전시하고 흙으로 빚은 추상화 같은 평면 조각을 내놓기도 했다. 종이를 벽에 붙이고는 일부를 오린 뒤, 바닥에 내려앉은 종이 위에 돌을 얹은 작품도 선보였다. 이처럼 실험적인 작업을 하던 청년 작가들의 모임인 ‘AG 그룹’ 등에서 활동했고 국제적으로도 주목받으며 71년, 73년, 75년 파리비엔날레에 세 차례 초대받았다.
“73년엔 이건용과 나, 75년에는 이강소와 내가 초청받아 갔지요. 전위적인 작업을 했는데, 셋이 다 용케 살아남았습니다.”(웃음)
80을 전후해 이건용 이강소 등은 아트페어의 인기 작가가 됐다. 그의 작품도 유럽아트페어(TEFAF) 등 해외 아트페어에서 사랑받고 있다. 어떻게 하면 작가로 살아남을까. 심 작가는 젊어서는 역설적으로 상업성에 관심을 두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답했다. 작품에만 몰두하면 해외로도 길이 뚫린다는 걸 경험했다. 그는 88년 서울올림픽 개최에 맞춰 정부가 주최한 ‘제1, 2차 국제야외조각 심포지엄’에 세계 유명작가들과 함께 초청된 적이 있다. 거대한 C자형 조각이 눈길을 끄는 이탈리아의 마우로 스타치올리, ‘엄지손가락’으로 유명한 프랑스의 세자르 발다치니 등 35명의 세계 현대미술계 거장 속에 심문섭도 포함된 것이다.
그때 서울을 오간 프랑스 평론가들이 현지에 그의 작품을 소개하면서 파리의 한 갤러리로부터 전속 작가 제안을 받았다. 93년의 일이었다. 재불 화가들도 전속화랑이 없던 시절이었다. 파리에서 유학하지 않고 불어를 못 해도 그런 놀라운 일이 생겨난 것이다. 이후 그는 파리에도 작업실을 두고 1년에 한두 차례, 길면 90일씩 체류하며 국제적인 감각을 벼리고 있다.
후배 작가들한테 해줄 조언을 부탁했다. “요즘은 속도가 워낙 빨라 선배가 해줄 말도 없고 해줘도 듣지 않는다”며 웃었다. 그러면서도 “청년시절에는 아주 실험적인 작업을 해라. 요즘 청년들 너무 달콤한 작업을 한다. 달콤한 것 하면 사탕 많이 먹어 이빨 상하는 것처럼 작가로서 생명이 길지 못하다. 예술의 지향점 찾아 질문하고 헤매지 않으면 답이 안 나온다. 끝없이 질문해야 된다. 당장은 답이 안 나와도 나이 들면 스스로 정리돼서 자기 길이 나오기 마련이다. 그때 비로소 자기의 세계가 열린다”고 했다.
경매에서 인기 있는 젊은 작가들을 거론하자 가차 없이 말했다. 컬렉터들이 새겨들었으면 싶었다.
“요즘은 작품을 어떻게 누구한테 팔 것인가를 먼저 고민하는 것 같습디다. 그래서 선배 작품 비슷한 게 굉장히 많이 눈에 띄어요. 그게 통하는 게 이상할 지경이에요. 하지만 예술은 다수의 생각이 지배할 수 없습니다. 다수가 인정하는 작품은 이미 끝났다는 신호입니다. 예술은 끝없는 새로운 창조를 요구하기 때문이지요.”
손영옥 문화전문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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