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0명 찍힌 사진만 20장..김정은, 4말5초 '코로나 판단미스'

정영교 2022. 5. 13.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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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12일 1만8000여명의 발열 환자가 발생했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 1명을 포함해 6명이 사망했다고 13일 관영매체를 통해 전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이날 국가방역사령부를 찾아 방역체계의 허점을 질타하면서 신속 대응을 지시했다.

매체들은 "4월 말부터 원인을 알 수 없는 열병이 전국적 범위에서 폭발적으로 전파·확대됐다"고 전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확진자 0이라며 코로나 청정국을 주장하던 북한에서 무슨 일이 생긴 건지, 4월부터 역순으로 짚어보니 코로나 확산 배경을 가늠할 수 있는 몇 가지 단서가 나왔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2일 국가비상방역사령부를 방문해 방역체계의 허점을 질타하면서 신속한 대응을 지시했다. 노동신문, 뉴스1

김정은 '홀로서기' 과시의 4월


올해 4월은 김정은의 리더십을 더욱 공고화하는데 큰 의미를 가진 달이었다. 김 위원장의 공식집권(당 제1비서 추대) 10주년(4월 11일), 김일성 주석 생일 110주년, 조선인민혁명군 창건 90주년(4월 25일) 등 비중있는 정치 기념일이 포진해 있는 시기였기 때문이다.

북한은 이미 지난 1월 당 중앙위 정치국 회의를 열어 선대 지도자들의 생일 기간을 '성대히 경축'한다는 결정서를 채택하며 대대적인 행사를 예고하기도 했다.

북한이 조선인민혁명군(항일유격대) 창건 90주년인 지난달 25일 저녁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병식을 개최했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이를 위한 '역대급 행사' 준비를 위해 각지에서 물자와 인력을 동원하면서 바이러스가 유입됐을 가능성이 크다. 북한은 코로나19 확산 초기인 2020년 1월부터 국경을 봉쇄했기 때문에 내부 자원이 고갈된 상태였고, 필요한 물품을 외부에서 조달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과정에서 최소한의 인적 접촉은 불가피했을 것으로 보인다.

경축 분위기를 이어가던 4월 행사의 클라이막스는 25일에 열린 열병식이었다. 북한이 시인한 발병자 확산 시기가 4월 말로, 열병식 전후와 맞물린다.

하지만 김정은은 그럼에도 열병식을 강행함으로써 김일성·김정일의 그늘에서 벗어나 '홀로서기'에 성공했음을 과시한다는 정치적 선택에 더 무게를 둔 것으로 보인다. 실제 북한은 열병식 전후로 김정은이 완성된 핵무력을 가진 강군을 완성했다는 '스토리텔링'을 내놓으며 우상화에 집중했다. 다소의 감염 확산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성대한 행사로 자신의 리더십을 대내외에 선보일 기회를 놓칠 수 없었던 셈이다.


최고존엄의 '판단미스'?


비슷한 시기 체제 결속과 주민 단합을 위해 진행한 김정은의 전례 없는 적극적인 '사진정치'도 이뤄졌는데, 이런 조치가 코로나19 확산의 결정적 촉매제로 작용했을 수도 있다. 김정은은 열병식 직후인 4월 말부터 5월 초까지 군 장병 및 방송 관계자(4월 27일), 열병부대 지휘관(4월 28일), 군 수뇌부(4월 29일 추정) 그리고 대학생·근로청년(5월 1일) 등을 대거 불러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1일 열병식에 참석한 대학생들과 촬영한 기념사진. 노동신문, 뉴스1
이 중에서도 특히 열병식 당시 김일성 광장에서 대형 카드섹션을 연출한 대학생·근로청년들과의 지난 1일 기념사진 촬영을 유의해 볼 필요가 있다.

당시 김정은은 20장의 기념사진을 찍었는데, 1장당 약 1200명의 인원이 집결했다. 노동신문은 지난 6일 1면에 게재한 '온 나라를 진감시킨 5·1절의 기념촬영 충격'이란 제하 기사에서 김 위원장이 열병식 행사에 참가했던 수만 명의 청년과 기념사진을 찍은 일화를 소개했다.

이에 따르면 김정은은 지난달 30일 "열병식에서 바닥 대열에 동원됐던 청년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으려고 한다"며 한 명도 빠짐없이 데려오라고 직접 지시했다. 이에 노동당 간부들은 열병식 직후 전국 각지로 흩어진 이들을 데려오기 위해 새벽 2시부터 수십 대의 대형버스를 동원해 청년·학생들을 수송했다. '최고존엄'의 지시 관철을 위해 병원에 입원했던 학생들까지 촬영장에 집결시켰다는 것이다.

해당 행사가 대확산의 계기가 됐을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역대급 열병식 성공에 도취한 북한이 방심한 측면이 있다"며 "대규모 밀접접촉이 이뤄진 사진촬영 행사가 코로나19 유행의 촉매제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여기에는 지난해 9월 정권수립 73주년 기념 열병식 직후에도 코로나19 의심자가 다소 발생했으나 무사히 넘어갔던 경험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서욱 당시 국방장관은 열병식 직후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북한 스스로는 코로나 환자가 없다고 하지만, (드러나는)모습을 보면 내부에 코로나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열병식장에는) 검사를 정확히 하고 투입한 것 같다"고 밝혔다. 당시에도 일부 발열 환자가 발생했을 수 있지만, 이후로도 계속 코로나 청정국을 주장한 것으로 미뤄 큰 문제 없이 넘어갔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폭증에도 상황관리 부각


북한 당국은 12일 관영매체를 통해 코로나19 확진자 발생 사실을 대내외에 공개한 뒤 ▶모든 시·군 지역 봉쇄 ▶경계근무 강화 ▶각 단위별 격폐 후 생산활동 ▶의료품 비축분 동원 등의 방역조치를 내렸다. 또 35만여명의 발열 환자가 나왔지만, 그 중에서 16만 2200여명이 완치했다고 강조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12일 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8차 정치국회의를 주재하는 모습.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이는 보건·의료 체계가 열약하다는 외부의 지적을 반박하는 동시에 코로나19 유행 상황을 주도적으로 잘 관리하고 있다는 점을 부각하려는 의도로 읽힌다. 현실적으로 격리·봉쇄 외에는 뾰족한 대응책이 없는 가운데 내부적 불만을 잠재우기 위한 것일 수도 있다.

다만 북한이 발열 환자와 격리 및 치료자, 사망자 수까지 구체적으로 공개한 것은 국제사회의 지원에 대한 여지를 남겨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북한은 고난의 행군 시절이던 1990년대 후반에도 국제기구에 식량 지원을 요청하며 구체적인 곡물 수확량 예상치를 밝혔다.

이와 관련, 대통령실 관계자는 13일 기자들과 만나 "(북한 코로나 상황을)발표된 것보단 자세히 알고 있다. 간단하진 않다. 생각보다는 심각하다"고 설명했다. 또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 시절부터 대북 인도적 지원은 비핵화와 관계 없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다시 확인하며 "우리는 지원할 의향이 있는데, 북한이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뜻"이라며 "북한은 (외부 지원이)필요 없다는 메시지를 내는데, (방역 시스템 완비가)다 돼 있는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완치자 어떻게 치료했나


일각에선 공식적으로 백신·치료제를 일체 지원받은 적 없는 북한에서 16만2200여명에 달하는 완치자가 나왔다는 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북한은 2020년 7월 국가과학기술위원회가 운영하는 웹사이트에서 "코로나19 후보 왁찐(백신)을 개발했다"고 주장하긴 했지만, 내부 결속을 위한 선전 수단에 가깝다는 해석이 지배적이었다. 북한의 입장을 대변하는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선총련) 기관지 조선신보도 13일 "당초부터 방역전의 장기화를 미리 예견해 그에 대처하기 위한 조직기구적, 물질적 및 과학기술적대책들을 일관하게 취해왔다"며 "방역강화에 필요한 수단이 충분히 갖추어지고 조선식의 독자적인 방역체계가 더욱 완비됐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여기서 언급한 '수단'이 백신이나 치료제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지난 6일 노동신문이 전한 북한 내 코로나19 방역활동 모습. 노동신문, 뉴스1

오히려 북한 당국은 필수 의약품이 부족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약초와 전통치료법을 사용하는 고려의학(한방) 치료를 확대하고 있다. 노동신문은 지난 2일에도 "의료 봉사 사업을 개선 및 강화하기 위한 방도의 하나는 고려 치료 비중을 높이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오경섭 통일연구윈 연구위원은 "보건·의료체계가 붕괴된 상태기 때문에 일반 주민의 경우 적절한 의료 지원을 받을 수 없을 것"이라면서 "완치자의 경우 격리 과정에서 면역체계가 작동해 자연적으로 치료 된 것일 수 있다"고 말했다.

정영교 기자 chung.yeonggy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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