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 외벽에 매달린 남자.. 어느 도장공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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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찬현 기자]
▲ 이정환씨가 아파트 옥상 난간에서 줄타기를 한다. 밧줄 두 가닥에 몸을 맡긴 채 아파트 외벽에 매달린다. |
ⓒ 조찬현 |
▲ 아파트에 페인트를 칠하기 전 외벽 갈라진 틈을 퍼티(putty)로 채워주는 기초작업 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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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도장공은 페인트가 처음 사용된 일제강점기(1910~1945)부터라고 한다. 당시 하루 10시간 노동에 3원의 임금을 받았다. 하지만 요즘 도장공은 8시간 노동에 하루 40여만 원을 받는 고임금 노동자다.
그는 30년째 여수에서 시설물유지와 도장 및 방수공사를 하는 업체인 ㈜삼능기업에서 일한다. 오늘 그와 함께 작업 현장에 투입된 인력은 18명이다. 그중 러시아인이 3명이다.
현장에서 만난 ㈜삼능기업 주윤태(59) 대표는 도장업이 젊은이들이 외면하는 일이라며 인력수급에 어려움이 많다고 토로했다. 덧붙여 "여수와 순천 쪽에 도장공사 하는 업체는 외국인이 작업 안 하는 현장이 없을 거예요. 다들 몇 명 정도씩은 다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도장공의 일당은 "로프를 타는 분들은 하루에 한 40만 원 이상, 처음 배운 분들은 어차피 로프를 못 타기 때문에 18~20만 원"이라며 로프공들의 임금이 센 편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어려움은 있다. 동절기 3개월은 작업을 하지 못한다.
▲ 35년 경력의 건물 외벽도장공 이정환씨다. 그는 올해로 40년 경력을 갖춘 이 분야의 베테랑이다. |
ⓒ 조찬현 |
현장에서 로프를 타며 작업을 하는 도장공(이정환)을 만나봤다. 27세가 되던 해 페인트 일을 하던 형에게서 일을 배웠다는 그는 올해로 40년 경력을 갖춘 이 분야의 베테랑이다. 그가 가장 기쁠 때는 자신이 맡은 일이 완성되었을 때라고 했다.
여수 문수동 원앙아파트 옥상 난간에서 그에게 '밧줄 타는 일이 두렵지 않나요?'라고 물었다. 그는 "처음에는 겁났죠. 근데 좀 하다 보니까 이제 숙달이 되어 두려움이 없어요"라고 말했다. 다음은 그와 일문일답이다.
- 어떨 때 자신이 한 일에 보람을 느끼나요?
"제품이 제대로 나왔을 때 보람 있고 좋아요, 내 집 같이 잘했다, 주민들이 그렇게 얘기해 주면 기분이 좋죠."
- 그러면 페인트칠 할 때는 어떤 마음으로 하세요?
"항시 즐거운 마음으로 내 집처럼 일한다고 생각해요."
- 요즘 젊은이들한테 이 일을 좀 권장하고 싶은 마음 없어요?
"젊은 친구들이 일을 안 하잖아요, 외국인들이 와서 일하는데도. 젊은 사람들은 이 일을 하려고들 안 해요. 이걸 배워놓으면 앞으로 괜찮은데..."
- 밧줄은 하루 몇 시간 타며 일당은 얼마나 받나요?
"우리가 한 7~8시간 탑니다. 일당이 좀 많죠, 40만 원입니다."
- 주변에 동료나 같은 또래분들에 비해 고소득인데 돈은 주로 어디에 쓰세요?
"밥 먹고, 담배 피우고, 술 먹고... 손자 용돈 주는 것입니다."
- 지금 심정이 어때요, 어떤 마음으로 달비계를 타세요?
"(잠시 망설이다) 여기에 앉아 달 쳐다보고 잠자는 거예요."
달 쳐다보고 잠자는 거라 달비계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라는 농을 던지며 그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 이어 자신의 생명을 책임지는 달비계에 앉아 일을 시작했다.
▲ 30년째 여수에서 시설물유지와 도장 및 방수공사를 하는 업체인 ㈜삼능기업 주윤태 대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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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층 아파트 옥상 난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정신이 아찔하다. 하지만 그는 오랜 세월이 지나 익숙한 일이라 대수롭지 않다고 했다. 또한, 위험한 일이라 다른 사사로운 생각을 할 겨를이 없다고 했다.
주윤태 대표는 안전을 강조했다. 첫째도 안전, 둘째도 안전이라고 했다. 로프 작업하면서 안전수칙을 준수하고 주의를 하면 크게 문제 될 것은 없다며.
그 또한 자타가 인정하는 도장공 출신이다. 현장 경험을 체득한 후 25년 전 지금의 회사를 창업했다.
▲ 아파트 외벽 도장작업에 사용될 작업 도구와 재료 및 달비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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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정환씨와 동료가 아파트 옥상에 밧줄을 고정한 후 밧줄을 내리고 있다. 아파트 외벽 도장작업은 2인 1조로 이루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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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식구들이 많을 때는 40~50명이다. 이날 작업은 도장 전 작업으로 파인 부분을 메우고 투명 제품을 바른다. 이어 두 번의 도장작업이 이어진다. 아파트 외벽 도장작업은 여섯 번의 공정을 거쳐야 마무리된다.
끝으로 주 대표에게 수많은 현장 작업 중 아찔했던 순간을 물었다.
"작업자 본인이 밧줄을 직접 묶고 내려가야 하는데, 위에서 보조 인원이 묶어놨다고 했는데 안 묶인 거예요. 점심을 먹고 올라가 이건 당연히 묶여 있겠거니 하는 생각으로 작업자가 3층에서 그냥 타고 내려간 적이 있어요. 근데 1층에서 3층까지 사람이 그렇게 빨리 떨어져 버릴 줄 몰랐어요. 생명줄에 턱 걸려서 살았지."
그는 당시 아찔했던 순간을 회고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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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여수넷통뉴스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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