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외국을 다녀온 듯한 이 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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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남동 뉴타운 얘기가 현실화가 되어가는 요즘, 한남동의 과거와 오늘을 돌아봅니다. <기자말>
[심채윤 기자]
'한남대교'라는 표지판이 보이면 집에 거의 도착했다는 안도감이 느껴진다. 한강을 가로지르는 한남대교를 지나다보면 넓은 도로 위로 남산이 보듬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한'강을 넘어 '남'산 쪽으로 향한 동네. 한 글자씩 따서 한남동이라고 이름을 지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사는 동네에 대해 과연 얼마나 알고 있었을까.
서울지명사전에 따르면 한남동은 조선시대 한성부 남부 성외 지역에 속하였으며, 영조 27년(1751)에 발간된 <도성삼군문분계총록>에 의하면 한성부 남부 한강방(성외) 한강계로 되었다. 갑오개혁으로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1895년 5월 26일 칙령 제98호에 의해 한성부 남서(南署) 한강방(성외) 한강 상동 · 중동 · 하동으로 칭하였다.
한남동에는 조선 시대 정자 '제천정 (濟川亭)'과 '천일정(川一亭)' 터가 있다. '제천정'은 세조 때부터 명종 때에 이르기까지 한강변의 정자들 중 왕들이 가장 자주 찾았고 이곳에서 외국의 사신들을 접대했다. 조선시대부터 한남동에는 외국인이 많았다. 교육·문화 등 여러 분야에 공적을 남긴 언더우드 선교사의 별장터인 '세심대(洗心臺)'도 있었다. 자연스럽게 외국인의 왕래가 많아졌고 각국 대사관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외국인 주거 단지 'UN 빌리지'도 형성되었다.
시내와 가까운 교통의 요지, 풍광 좋은 한강변이라는 조건 등은 외국인들에게 최적의 업무지이자 주거지였다. 외교부장관 관사가 한남동에 위치한 것도 이해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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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8년도의 한남동 일대 현재는 유엔빌리지가 자리한 곳 |
ⓒ 용산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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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강진 나루터 한강진은 서울에서 왕래가 매우 잦았던 나루터였다. |
ⓒ 용산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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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년 한남동 일대 남산에서 내려오는 길에서 본 한남동 |
ⓒ 심채윤 |
세계 각국에서 모인 사람들은 저마다의 문화가 있다. 그 문화들이 모여서 또 하나의 독특한 문화를 이룬다. 다른 나라로 여행을 가지 않아도 서울에서 외국을 다녀온 듯한 기분이 든다. 이런 다양한 문화는 누군가가 선택하고 취합하여 만들어낸 것이 아닌 자연스러운 포용이다. 한강을 통해 스며든 다양한 모습들을 남산이 따뜻하게 안아주는 것은 아닐까.
한남동의 매력은 모든 사람들을 보다듬는 따스함이 있는 동네라고 마무리 짓고 싶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잘 품어 주었으니 앞으로도 수많은 희망과 꿈을 품고 키워줄 것이다. 앞으로도 다양한 사람들이 어우러지는 멋진 동네로 이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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