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원준 칼럼] 너무나 당연한 통합
인사·국정과제·취임사 등서 관련 메시지가 너무 부족했다
진영 장벽 허무는 국민통합은 말·행동의 지속적인 메시지
켜켜이 쌓여야 가능한 목표 치열한 소통으로 길 열어야
실외 마스크 착용 의무가 사라진 지 벌써 열흘이 지났지만 사람들은 마스크를 벗지 않고 있다. 길을 걷다보면 여전히 쓰고 다니는 사람이 열에 아홉은 된다. 뜻밖이었다. 입을 막고 숨 쉬는 불편함에서 마침내 벗어나게 된 기회를 사람들은 선뜻 누리려 들지 않았다. 많이 줄었다지만 매일 수만명씩 확진되는 코로나 상황이 불안해서 그럴 수도 있고, 건물에 들어갈 땐 어차피 다시 써야 하니 귀찮아서 벗지 않는 걸 수도 있겠는데, 그보다는 마스크를 벗고 다니는 것이 오히려 어색해졌기 때문 아닐까 싶다. 우리는 2년 넘게 신체의 일부처럼 마스크를 쓰고 살아왔다. 남들이 보는 데서 마스크 착용을 잊었을 때는 무슨 죄라도 지은 양 허둥대곤 했다. 그렇게 길이 든 습관을 내려놓기가 결코 쉽지 않음을 요즘 거리의 마스크 풍경이 말해주고 있다. 새로운 것에 익숙해지려면 시간이 걸리듯, 익숙한 것과 결별하는 일에도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는 문재인정부 5년간 많은 것에 자의 반 타의 반 익숙해졌다. 재난지원금처럼 정부가 통장에 그냥 꽂아주는 돈, 껑충껑충 뛰어올라 1만원에 육박한 최저임금, 재정을 퍼부어 만들어주는 공공일자리 같은 것들이 이제는 익숙하다. 그중에서도 가장 익숙해진 것 하나를 꼽으라면 나는 ‘진영’이란 단어를 들겠다. 서초동과 광화문, 둘로 갈라졌던 조국 사태의 광장에서 진영 갈등은 진영 전쟁으로 격화됐다. 전쟁은 무조건 이겨야 하는 것이니 내 편의 승리를 위한 진영 논리가 확대 재생산됐고, 입맛대로 골라듣는 유튜브 같은 매체를 통해 사람들의 생각에 깊숙이 침투했다. 그런 상황에서 치러진 대통령선거는 두 진영의 사생결단 네거티브 전장이 됐으며, 0.73% 포인트의 미세한 표차는 우리 사회가 얼마나 극명하게 양분돼 있는지 여실히 보여줬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퇴임 직전 방송 대담에서 “늘 저쪽이 더 문제인데, 이쪽의 작은 문제가 더 부각된다”는 말을 했다. “(윤석열 당선인을) 우리 편으로 했어야 했나”라고도 했다. 이쪽, 저쪽, 우리 편 같은 편 가르기의 표현을 온 국민 앞에서 공개적으로 사용했다. 취임 당시 “저를 지지하지 않은 분들까지 아울러 모든 국민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던 그도 이런 말을 거리낌 없이 할 만큼 5년 사이 진영 구분에 익숙해져버렸다. 진영 논리에 사고회로의 주파수를 맞추고 진영의 시각에서 모든 사안을 바라보는 습관. 그 익숙함에서 벗어나는 일은 생각하는 방식을 바꾸는 것이다. 행동하는 방식을 바꾸는 마스크 벗기도 주저함이 앞서서 하루아침에 되지 않는데, 생각을 바꾸는 일이야 오죽하겠나.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어렵고,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진영의 익숙함을 털어내도록 이끄는 그 지난한 작업이 바로 국민 통합이다.
통합을 위해 어떤 메시지를 내놓았는가. 이 질문을 들이대면 윤석열정부의 출범 과정은 후한 점수를 받기 어렵다. 인사에서는 통합 의지가 엿보이는 구석을 찾아볼 수 없었고, 국정과제에서도 특히 강조되지 않았다. 국민통합위원회를 운영하면서 “통합 없이는 위기 극복이 불가능하다”는 윤 대통령의 언급이 나왔지만, 신구 정권의 격한 충돌과 험악한 말싸움에 퇴색하고 말았다. 그 충돌 과정에서 먼저 대화의 손길을 내미는 모습도 보지 못했다. 취임사에는 통합에 관한 대목이 담기지 않았다. “너무나 당연한 것이어서” 넣지 않았다는데, 이는 문제의 성격을 잘못 판단한 것이다. 두 진영 사이에 놓인 높다란 인식의 장벽을 허물려면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야 한다. 말과 행동의 메시지가 지속적으로 발신되고 켜켜이 쌓여야 그 목표에 조금이라도 근접할 수 있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퇴임 후 이런 질문을 받았다. “대통령 취임 당시로 돌아가 그 때의 오바마를 만난다면 어떤 조언을 해주겠나.” 그는 “국민과 소통하는 방법을 좀 더 깊이 고민하라고 말하겠다”고 답했다. 거의 매일 기자들 앞에서 질문에 답했던 그였지만, 더 많은 소통에 대한 갈증을 갖고 있었다. 뚜렷한 형체가 없는 국민 통합이란 목표를 향해서 가는 길은 결국 소통을 통해 찾아야 할 것이다. 사람의 생각은 솔직한 이야기에 움직이지 않던가. 윤 대통령이 청와대 대신 용산을 택한 것도 접촉면을 넓히려는 생각에서일 것이다. 국민, 야권, 언론과의 소통에 더욱 과감하게 나서야 한다. 너무나 당연한 통합을 현실로 만들어내는 길은 그것뿐이다.
태원준 논설위원 wjt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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