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가문의 영광?

전재우 2022. 5. 13. 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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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3월 말이면 벚꽃이 언제쯤 필 것 같냐, 얼마나 피었냐라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서울 여의도에서 23년째 생활하다 보니 바람의 온기나 줄기를 보면 대충 감이 온다.

서울현충원의 수많은 꽃은 그들을 위한 것이다.

홍성철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이 집에 찾아와 "수락한 것으로 알고 가겠다"고 일어설 때도 "안 하겠다"는 말을 끝내 하지 못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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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우 사회2부 선임기자


해마다 3월 말이면 벚꽃이 언제쯤 필 것 같냐, 얼마나 피었냐라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서울 여의도에서 23년째 생활하다 보니 바람의 온기나 줄기를 보면 대충 감이 온다. 물론 틀릴 때도 많다. 그래도 만개 시기를 예측하는 답을 주면서 핀잔을 섞어 복잡하니 여의도에 오지 말라고 한다. 대신 꽃의 정취와 사색에 흠뻑 빠질 수 있는 다른 장소를 권한다. 국립서울현충원이다.

산수유꽃과 목련 개나리 진달래에 이어 벚꽃 철쭉…. 신록의 계절인 요즘까지 서울현충원은 꽃의 향연을 펼쳐준다. 라일락과 아카시아 꽃향기는 덤이다. 꽃과 함께 느릿느릿 서울현충원 길을 걷다 보면 묘비들이 눈에 들어온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헌신한 순국선열, 군인, 경찰관들이다. 어려운 시기 나와 가족의 이익을 뒤로한 채 고단한 삶을 선택하고 산화한 이들이다. 서울현충원의 수많은 꽃은 그들을 위한 것이다. 올라갈 때는 풍경에 들뜨지만 내려올 때는 생각에 잠긴다. 정치인과 고위 공무원들은 나라와 민족 국민을 위해 일하겠다는 다짐의 표시로 서울현충원에 들러 참배하고 경의를 표한다. 국민을 위하겠다지만 국민을 제대로 아는지는 잘 모르겠다. 선출직 공무원을 판단하는 토론회에서, 임명직 공무원을 살펴보는 청문회에서 나오는 이야기들은 일반인의 생활, 생각과 너무 다르다. 국민을 위하려면 적어도 국민 대다수의 생활을 알고 눈높이를 맞춰야 한다. 살아온 배경이 다르더라도 일반인 상식으로 스스로 돌아볼 수 있어야 하는데 자기 암시에 걸렸는지 자신의 잘잘못을 가릴 줄 모르는 인사가 많다.

한 시사주간지는 2003년 초 ‘노무현의 관료개혁’을 다루면서 장관 임명과 관련한 뒷얘기를 들려줬다. 얼마 전 작고한 이어령 교수는 장관 자리 기웃거리는 일을 경멸하면서도 노태우정부 첫 내각의 문화부 장관 자리를 제의받자 “마음에 잔물결이 일었다”고 고백했다고 한다. 홍성철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이 집에 찾아와 “수락한 것으로 알고 가겠다”고 일어설 때도 “안 하겠다”는 말을 끝내 하지 못했다고 한다. 장관 출신 한나라당 모 의원은 “임명되면 대단히 기쁘고, 물러나면 무척 아쉽고, 한번 해본 뒤엔 다시 한번 해보고 싶은 욕구가 생기는 자리가 바로 장관 자리”라고 말했단다.

최정호 울산대 석좌교수는 저서 ‘복에 관한 담론’에서 전통적 복 개념을 수(壽), 부(富), 귀(貴), 다남(多男)으로 규정했다. 이 중 높은 것, 흔하지 않은 것, 공경받는 것을 의미하는 귀를 설명하면서 귀의 동기를 가문을 위해서라고 평가했다. 나라를 위해서는 그릇된 짓을 해도 벼슬만 하면 가문의 족보를 위해 자랑이고 영광이라는 것이다. 최 교수는 “공(公)을 풀이하는 우리말은 없다. 귀의 개념을 오직 높은 관작으로만 배타적으로 이해한 전통사회의 복 사상이 오늘 우리에게 여전히 남아 있다. 그래서 지도층의 의무(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싹트기 어려운 문화다”고 지적했다. 역사학자 전우용 교수는 ‘140자로 시대를 쓰다’에서 “이완용이 총리대신이 되자 친척들은 가문의 영광이라며 기뻐했다”고 썼다.

헌법 제7조 1항은 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해 책임을 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영어권 국가에서 장관은 심부름꾼을 뜻하는 미니스터(Minister)나 비서를 의미하는 세크리터리(Secretary)로 표기한다. 족보는 이제 대부분 쓰지 않는다. 선출됐든 임명됐든 자유뿐 아니라 타협과 배려, 공화(共和)와 책임, 평등과 박애 등 보편적 가치를 가지고 공정한 규칙을 지키는, 봉사자가 필요하다. ‘새로운 국민’의 나라가 아닌 국민을 위한 새로운 나라에서 살고 싶다.

전재우 사회2부 선임기자 jwje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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