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윰노트] 나의 눈부신 동료

2022. 5. 13. 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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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연 (에이컴퍼니 대표·아트디렉터)


“지수씨, 이거 입는 순간 파리지앵이 된 것 같아. 지수씨, 이거 봐. 너무 고급스럽지? 지수씨, 나 너무 우아하지 않아? 어때, 잘 어울리지?” 주로 패션 콘텐츠를 다루는 방송인 김나영씨의 발랄한 유튜브 채널에는 언제나 ‘지수씨’가 있다.

김나영씨는 시청자에게는 보이지 않지만 바로 앞에서 카메라를 들고 있을 지수씨를 연신 부르며 친구와 수다를 떨듯이 브이로그를 찍는다. 지수씨는 적절하고 센스 있는 대답들을 날리며 김나영씨가 즐겨 하는 깨방정 역할극의 찰떡같은 파트너가 돼준다. 목소리만 등장하지만 방송을 함께 끌어가는 지수씨의 인기는 점점 높아져 70만명 가까이 되는 채널 구독자들은 유튜브를 통해 지수씨의 결혼식도 보고, 신혼집 집들이도 함께할 수 있었다. 이제 지수씨 없는 ‘김나영의 노필터티비’는 상상하기 어렵다.

작은 미술 기획사를 운영하는 나에게도 지수씨가 있다. 나의 지수씨는 그래픽 디자이너다. 주로 재택근무를 하다가 화요일마다 회의하러 사무실에 온다. 매주 빠짐없이 회의에 먹을 간식을 사 오는데 겹치지 않는 새로운 메뉴를 찾으려고 애쓰는 걸 알아서 나도 몇 번은 ‘지수씨, 다음 간식은 내가 준비할게요’라고 메시지를 보내게 된다. 최근 출시한 포스터 판매에 고객 리뷰가 없는 걸 걱정하다가 구매자에게 손글씨로 고마움을 전해보자며 회의가 끝나면 카드를 써놓고 가는 사람도 지수씨다. 처음 몇 번은 디자인만 하다가 어느새 직접 SNS에 게시물을 올리는 수고를 하는 사람도 지수씨다.

사실 지수씨는 우리 회사에 네 번째 재직 중이다. 첫 입사는 11년 전으로, 내가 막 창업해 사업자등록증에 잉크도 마르지 않았을 때였다. 그녀 자신도 대학을 갓 졸업했을 때였는데 맑고 풋풋한 모습으로 재능이 넘치는 포트폴리오를 별것 아닌 듯 보여줬었다. 지수씨는 솜사탕 같은 꿈과 좌충우돌만 가득한 신생 회사의 첫 디자이너로서 로고를 만들고 명함을 만들었다. 하지만 얼마 후 경험도 없고, 사수도 없고, 일도 없기에 더 배울 수 있는 곳으로 가고 싶다며 퇴사했다. 다 맞는 말이라 말릴 수는 없었지만 나는 진심으로 언젠가 다시 지수씨와 일할 수 있기를 바랐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서로 조금씩 성장한 후에 우리는 정말 다시 만났다. 이후에도 또 다른 이유들로 퇴사와 입사가 몇 번 이뤄졌지만 항상 지수씨의 선택을 이해할 수 있었고, 지수씨가 어디서든 행복하게 지내다가 다시 함께하기를 기대했다. 오히려 퇴사한 기간에 가끔 밖에서 만나 식사하거나 전시를 보면서 친구가 될 수 있었다. 일 이외의 삶에 대해서도 더 많이 이야기하며 서로의 인생을 응원하게 됐다. 지수씨는 얼마 전 결혼을 하고, 그림책 작가가 되기 위해 새로운 공부와 작업도 시작하고 있다. 곧 예술가로 지수씨를 만날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지수씨를 볼 때면 좋은 사람이자 훌륭한 동료라는 생각이 든다. 조용하고 담백하면서도 결국 서서히 돋보이는 사람, 지켜볼수록 눈부신 사람이다. 어느새 실력과 경력을 상당히 갖춘 디자이너인데다 여전히 시간을 잘 지키고 자발적으로 일한다. 게다가 다른 동료들에게 간식과 칭찬을 아끼지 않는 마음은 대표로서의 나를 격려하고 고양시킨다. 저런 동료가 있는데 뭘 못하겠어, 저런 사람들과 함께 오래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니 말이다.

평소 본인에게 직접 이런 표현을 잘하지 못하는 터라 지수씨가 이 글을 보게 되면 무척 쑥스러울 것 같다. 하지만 오늘도 노필터티비에서 김나영씨가 ‘지수씨!’를 외치는 것을 듣고 있노라면 나에게도 지수씨가 있다는 사실이 기쁘고 감사하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김나영씨가 해줄 때도 있다. “내겐 너무 소중한 지수씨, 지수씨처럼 똑똑하고 다정한 사람이 내 곁에 함께해줘서 얼마나 고맙고 든든한지 몰라. 지수는 참 귀하고 아름다운 사람이에요.” 그리고 나도 누군가에게 지수씨 같은 동료가 될 수 있기를.

정지연 (에이컴퍼니 대표·아트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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