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소문 포럼] 탈 청와대식 규제개혁
“인류 역사를 돌이켜보면 자유로운 정치적 권리, 자유로운 시장이 숨 쉬고 있던 곳은 언제나 번영과 풍요가 꽃 피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10일 취임사에서 자유를 35번이나 강조했다. 시장경제에 대한 확고한 입장도 밝혔다. 윤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인 지난달 20일 전북 전주 국민연금공단을 방문해 “임기 중 풀 수 있는 규제는 다 풀겠다. 우리 국민이든 기업이든 외국인이든 해외 기업이든 우리나라에서 마음껏 돈 벌 수 있게 해주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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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규제에 막히는 창의적 기업 활동
민간의 역동성 살려야 미래 있어
대통령 결단에 시스템 더해져야
」
경제 사령탑인 추경호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도 11일 취임사에서 “민간·시장·기업 중심으로 우리 경제의 역동성을 되살려 저성장의 고리를 끊어내겠다”고 말했다. 추 부총리는 “과감한 규제 혁신 등을 통해 창의적 기업활동의 발목을 잡고 있는 족쇄를 풀고 모래주머니를 벗겨드리면서 기업이 투자와 양질의 일자리 창출에 적극적으로 나서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취임 초 규제개혁을 내세우지 않은 정부가 없다. 이명박 정부에선 공단 커브 길의 전봇대 때문에 대형 트레일러 운행이 어렵다는 사례에서 나온 ‘전봇대 규제’, 박근혜 정부에선 ‘손톱 밑 가시’라는 표현도 나왔다.
문재인 전 대통령도 2018년 6월 제2차 규제혁신점검회의를 불과 몇 시간 앞두고 취소했다. 내용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당시 청와대에 따르면 문 전 대통령은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규제개혁 성과를 반드시 만들어 보고해 달라. 속도가 뒷받침되지 않는 규제혁신은 구호에 불과하다”고 당부했다.
그런데도 기업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고 한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9일 발표한 500개 기업 대상 체감도 조사 결과 새 정부의 규제개혁에 대해 ‘기대한다’는 응답은 24.6%에 그쳤다. ‘기대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24%, 나머지 51.4%는 ‘보통’이라고 답했다. 자유를 강조하는 윤석열 정부가 들어섰지만 기업의 기대감이 그리 크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규제개혁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규제개혁이라는 용어만 보면 규제가 나쁜 것 같지만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규제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대개 ‘좋은 의도’에서 시작된다.
수도권 규제를 보자. 기업은 수도권에 공장을 짓길 원하지만 이를 허용하면 다른 시·도의 반발을 산다. 정치적으로도 부담이 된다. 자칫 대형 사고라도 터지면 여론도 규제와 처벌이 강화되는 쪽으로 쏠린다. 담당 공무원 입장에선 이런 부담을 감수하기 싫어한다. 규제 개혁을 하려면 이익 갈등을 조정하고 해결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
규제개혁이야말로 대통령이 작심하고 챙겨야 하는 사안이다. 어떻게 해서든 민간의 역동성을 살리지 않으면 한국 경제엔 미래가 없다.
전직 경제관료 5명이 지난해 내놓은 『경제정책 어젠다 2022』라는 책의 서문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저자 중 한 명이 최상목 현 대통령 경제수석이다.
“대통령이 경제 문제 전부를 챙길 수는 없다. 가능하지 않다. 그렇다고 유능한 경제 전문가를 장관으로 등용하고 전권을 위임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대통령의 리더십이 있어야 해결될 수 있는 정책 과제가 있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은 취임과 동시에 대통령 집무실을 청와대에서 용산으로 옮겼다. 윤 대통령을 지지한 보수층에서도 반대가 적지 않았다. 탈(脫) 청와대 자체에 대한 반대보다 너무 급하게 이뤄졌다는 비판이 더 많았다고 본다. 다만 청와대에 한번 들어가면 다시 나오기 어렵다는 점도 고려 대상이 됐을 것이다. 이런 결정은 선출된 대통령이 아니면 할 수 없다.
집무실 이전으로 생기는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장기적으로 개방된 청와대가 창출하는 경제 효과도 작지 않을 것이다. 청와대를 국민에게 돌려준 것처럼, 기업에도 규제개혁을 통해 마음껏 사업할 수 있는 공간을 열어줘야 한다.
다만 규제개혁은 집무실 이전처럼 바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대통령의 결단과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마련한 110대 국정과제에도 ‘규제시스템 혁신을 통한 경제 활력 제고’가 포함돼 있다. 대통령 주재 규제혁신전략회의를 통해 강력한 리더십으로 핵심 과제를 신속하게 해결하겠다고 한다. 다만 문재인 정부 시절의 규제혁신점검회의와 어떻게 차별화할 것인지는 지켜볼 일이다.
윤 대통령은 11일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일을 구둣발 바닥이 닳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정말 기업의 애로를 듣는 것에도 구두 밑창이 닳아야 한다.
김원배 경제산업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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