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를 잃어가는 美 파월 의장
첫 사례는 지난해 11월 말 발언이다. 그동안 인플레이션에 대해 ‘일시적’이라는 표현을 고집하더니 갑작스레 쓰지 않겠다고 단언했다. 지난 한 해 동안 글로벌 공급망이 붕괴되고, 코로나 팬데믹으로 원재료, 인력 등의 조달이 어려워지는 등 구조적 물가 상승 요인이 겹겹이 쌓였다. 시장은 진작부터 더 이상 돈을 푸는 일이 어려울 것이라며 금리 인상 가능성을 점쳤는데 파월 의장은 인플레이션을 일시적 현상으로 치부했다.
‘경제학자 100명보다 경제 전망을 더 정확히 알아맞힌다’는 미국 국채금리가 이를 잘 보여준다. 지난해 9월부터 채권 시장은 파월의 판단력에 의구심을 갖기 시작했다.
미국 국채 2년물은 팬데믹 기간 내내 0~0.25%였던 기준금리보다 0.1~0.2%포인트 안팎의 높은 수준에서 맴돌았다. 미국 국채 2년물은 통상 1년 후 기준금리 기대치를 앞서 보여준다고 한다. 신한금융투자 분석에 따르면 양자 간 상환계수가 69%로 꽤 높은 편이다. 당분간 시장에서는 연준이 금리를 올릴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본 것이다.
그런데 갑작스레 10월부터 2년물 금리가 오르기 시작한다. 10월 7일 처음으로 0.3%대로 올라왔고, 18일에는 0.4%로 치솟는다. 11월 말에야 인플레의 심각성을 깨달은 파월 의장의 판단력보다 시장의 예감이 빨랐거나, 아니면 시장은 파월 의장이 자신의 판단을 숨기고 있다고 여긴 것이다.
그렇게 기준금리와 폭을 넓히던 미국 국채 2년물은 올 1월 1%대로 올라섰고, 3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전에는 1.8%대까지 뛰어올랐다. 파월이 3월에 결정한 기준금리 인상폭은 0.25%포인트였다. 시장은 이미 파월보다 훨씬 앞서 움직였다.
이후도 마찬가지다. 시장은 5월 FOMC에서 파월 의장이 0.5%포인트 인상을 결정하리라고 이미 확신을 했고, 0.75%포인트 인상도 곧 현실화할 것이라 점쳤다. 그 결과 FOMC 직전 미 국채 2년물은 2.77%까지 급등했다. 기준금리와의 차이가 2.53%포인트로 최근 20년 새 최대폭으로 벌어졌다.
파월 의장은 예측대로 5월 회의에서 0.5%포인트 인상을 결정하면서 “앞으로 너무 앞서 내달리지 말라”고 시장에 주의를 줬다. 그 속내는 “0.75%포인트 인상은 적극적으로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발언으로 응축돼 나왔다.
일단 시장은 안도했다. 국채 2년물이 5.56%나 급락했고, 나스닥은 3.1%대 급등세로 화답했다. 더 이상 금리 인상이 시장을 억누르지 않겠다는 기대가 폭발했다. 하지만 이튿날 바로 냉정을 되찾았다. “우리가 파월을 언제부터 그리 믿었냐”는 듯 국채금리는 다시 급등하고 나스닥은 4.99%의 폭락세로 마감됐다.
시카고선물거래소의 연방기금금리 선물 시장도 파월에 대한 불신을 표현했다. 5월 FOMC 이전 95%였던 6월 0.75%포인트 인상 확률이 파월 의장 발언으로 74.5%로 내려가더니 이튿날 곧바로 82.9%로 다시 치솟았다.
시장과 파월 사이 간극이 좁아지려면 인플레 진정의 신호가 필요하다. 미국 주택 구매 여력지수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인 80 밑으로 떨어지는 등 희망적인 신호가 나오고 있지만 아직 안심은 금물이다.
[주간국장]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58호 (2022.05.11~2022.05.17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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