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명의 할머니 작가들의 그림을 소개합니다!

이마루 2022. 5. 12.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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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붓과 펜을 든 할머니 작가들. 그 끝에 놓인 세상을 향한 애정어린 시선

김두엽

김두엽 할머니는 오사카에서 태어났습니다. 해방 직후 귀국해 홀로 지내다가 83세 때 달력 뒷면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죠. 난생처음 그린 사과 그림이 정말 좋다고 해준 막내아들 이현영 화가의 칭찬에 힘입어 이후 매일같이 그림을 그렸습니다. 전남 광양에서 아들과 며느리, 반려견 칠복이·뿡뿡이와 살고 있는 김두엽 작가는 아크릴 물감으로 꽃과 가족, 동네 풍경을 선명한 색채로 그려냅니다. 오사카 단추 공장에서 일하던 어린 시절의 데이트처럼 잊지 못할 기억이 주제가 되기도 합니다. 2016년, 아들과 함께 광양문화예술회관에서 첫 전시를 연 후 지금까지 열 번이 넘는 전시에 참여했습니다. 지난해 광양에 작은 갤러리를 열었고, 그림 에세이 〈그림 그리는 할머니 김두엽입니다〉와 나태주 시인과 함께 시화집 〈지금처럼 그렇게〉를 펴냈습니다.

〈며느리 생일 꽃〉, 2021. 꽃은 김두엽 작가가 가장 좋아하는 그림 소재다.
세밀한 표현을 위해 쪽가위로 털끝을 살짝 잘라낸 붓으로 그린 〈황금 들녘〉, 2020.
아들의 하얀색 사륜차와 반려견 칠복이를 함께 그려넣은 〈동네 드라이브〉, 2019.

정선늠

@grandma_sunneum

88세 정선늠 할머니의 그림은 시골집 툇마루에서 북 찢어낸 달력 한 장과 모나미 볼펜 한 자루로 영글었습니다. 한평생 햇살 아래 풀꽃과 나무, 밭을 가꾸며 살아온 할머니는 식물이 지닌 생명력과 순수함을 선연한 색채로 그리며, 종이 위에 또 다른 밭을 가꿔나갑니다. 자연을 보듬고 매만져온 사람만이 지닌 애정이 담긴 그림들. 한의사인 손녀 김청림은 할머니의 그림을 진료에 필요한 제품 패키지 디자인에 적극 활용하기도 합니다. 다가오는 5월 1일에는 인생의 반려로서 함께한 그림들의 여정을 기록한 첫 개인전 〈정선늠의 그림밭〉이 펼쳐질 예정입니다.

무성히 꽃을 피운 민들레 꽃을 그린 〈민들래〉.
〈콩〉. 실제로 할머니는 평생 농작물을 가꿨다.
사과의 탐스러운 붉은 빛깔이 그대로 담긴 〈얼음골사과〉.

조무준

고(故) 조무준(1925~2018) 할머니의 눈에 비친 세상은 이토록 다채롭고 아름다웠던 모양입니다. 70세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 93세에 타계하기까지 400점이 넘는 작품을 남겼습니다. 어린 나이에 타지로 시집가 늘 고향 산천을 그리워하던 할머니는 딸이 우연히 건넨 스케치북과 크레파스로 애틋한 기억 속 세상을 구현했습니다. 손자와 손녀가 쓰던 색연필과 수채 물감으로 나들이를 떠난 새, 알록달록한 꽃밭, 흐드러진 녹음을 병석에 누워서도 7시간씩 그릴 정도로 그림을 사랑한 할머니. 2019년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2020년 두 번째 개인전, 지난 2월에 열린 〈Grandma jo’s Garden〉전을 통해 할머니의 순수한 창작 의지는 더 많은 들에게 전해지고 있습니다.

저마다 다른 쪽빛의 생동감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새들의 나들이〉, 1991.
선명한 색채의 〈사각 초록 줄기〉, 1991.
켄트지 위에 컬러 펜으로 그린 〈파란꽃밭〉, 1991.

오경춘

제주도 서귀포시에서 태어난 오경춘 할머니는 86세의 나이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에서 동양화를 전공한 손녀 양수인은 어느덧 1000점의 드로잉 작품을 남긴 할머니의 가장 가까운 그림 친구이자 동료입니다. 따뜻한 색연필 그림과 맑은 수채화 작품으로 엮인 오경춘 작가의 그림에는 그가 생애를 통해 지켜본 제주도의 사계와 사랑하는 가족들의 얼굴이 담깁니다. 제주도 방언으로 ‘끄적이다’ ‘낙서한다’는 의미를 가진 〈엥기리다〉라는 제목의 전시를 진행하고, 책을 펴냈습니다.

2019년 전시를 위해 제작된 서귀포시 이미지. 한라산, 산방산, 정방폭포, 귤밭과 동백꽃, 성산일출봉, 범섬, 문섬, 그리고 섶섬을 손녀 양수인 씨와 함께 그렸다. 장지에 물감과 오일 파스텔, 색연필을 사용한 의미있는 작업
서울과 미국에 흩어져 사는 손주들이 오면 바다와 관광지를 보러 가곤 했던 할머니의 눈에 들어온 풍경.
오경춘 작가의 밤의 기억에는 부엉이가 있다.
“그 하루방은 뭐가 경 급해싱고?” 먼저 세상을 떠난 할아버지와의 추억은 할머니의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다.

정맹순

@bird_books

올해 81세인 정맹순 작가의 일과는 아파트 베란다에 찾아온 새들을 챙기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수원에서 ‘탐조책방’을 운영하며 생태문화기획자이기도 한 딸 박임자가 카메라로 찍은 새 사진을 토대로 새를 그리기 시작하게 된 것은 심장 수술 후유증을 극복한 2019년의 일. 이후 아파트 단지를 찾는 새들을 직접 만나러 다니기도 하며 그린 300여 점의 새 그림은 달력이 되기도 하고, 얼마 전에는 동네 도서관에서 열린 전시를 통해 세상에 선보이기도 했습니다. “일상 어디에나 존재하지만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노년의 삶은 새와 같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닌 것처럼 맹순 씨도 새처럼 가볍고 자유롭게 살아가기를 바란다.” 평생 호미를 들던 엄마의 손에 볼펜과 색연필, 직접 만든 노트를 건넸던 딸 박임자의 말입니다.

2020년 1월에 처음으로 그려본 곤줄박이와 손자에게 보낸 편지 글.
크라우드 펀딩에서 목표치의 6배를 초과 달성하며 인기를 끌었던 〈2022년 아파트 새 달력〉 표지 이미지 중 하나.
먹이를 찾아 아파트를 찾는 겨울 철새 홍여새 그림.

김성일

@halmoney_kim

올해 76세인 김성일 할머니는 남편과 어머니의 죽음 이후 색연필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 10년 넘게 꽃과 어릴 적 추억을 그려왔습니다. 딸이 반려묘 향이를 키우기 시작한 6년 전부터 고양이에게 빠져 이젠 고양이를 가장 즐겨 그립니다. 김성일 작가의 스케치북엔 수채 물감으로 그린 향이부터 이웃집 고양이들(앙증이·초롱이·행복이), 동네 길고양이들, 상상 속 고양이까지 모두 담깁니다. 엄마의 사랑스러운 그림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던 딸 유진희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김성일 작가의 고양이 그림을 나누고 있습니다.

길냥이와 한련화를 함께 수놓은 〈내가 좋아하는 꽃〉.
〈시원한 화분 아래서〉.
딸의 반려묘 향이가 스크래처에서 자는 모습을 그린 〈피곤해요〉.
이웃집 고양이들을 그린 〈친구야 보고싶다〉.
〈나도 한입만 줘〉. 김성일 작가의 위트 있는 제목은 항상 딸을 웃음 짓게 한다.

박옥순

@painting_ok

봄이 찾아든 시골 마을, 들에서 뛰어노는 강아지 무리, 큰 꽃송이를 수십 개나 피워낸 동백나무…. 대전에 거주하는 84세 박옥순 할머니의 그림은 소박하지만 아이처럼 순수한 풍경으로 가득합니다. 할머니의 그림은 손녀 김자현이 우연히 사다 준 컬러링 북에 색을 덧입히며 시작됐습니다. 밤에는 술 없이 잠들지 못하고, 외로움으로 가득 찬 시기를 극복하게 한 힘은 그림이었다고요. 직접 보거나 상상해 온 것들을 수채화 특유의 따스하고 촉촉한 감성으로 담아낸 그림은 먼저 마을에서 유명해졌고, 지난해 교회에서 미니 전시회를 열었습니다. 할머니의 그림을 구입하는 바다 건너 열렬한 팬들도 생겼답니다.

계절의 색채가 담긴 〈시골 마을〉.
〈동물농장〉과 〈개는 훌륭하다〉 등 동물 예능 프로그램 애청자인 할머니. 〈들에서 뛰노는 강아지들〉 그림에서도 동물 사랑이 오롯이 느껴진다.
만개한 동백꽃과 새의 조화가 따스함을 안기는 〈동백〉.
어딘지 쓸쓸해 보이는 겨울 나무와 나그네를 그린 〈도롯가 위의 겨울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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