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거래허가구역 1년 연장했더니.."집값 안정은 무슨" 압·여·목·성 신고가行

정다운 2022. 5. 11.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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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동네 공인중개사가 수십 명인데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된 뒤 최근 1년간 한 아파트에서 매매 거래가 두어 건씩밖에 안 나왔습니다. 매물로 나오는 아파트는 거의 없는데 호가는 10% 이상 올라 있고요. 사정이 이러니 어쩌다 거래되는 아파트는 신고가를 찍을 수밖에요.” (서울 압구정동 A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

서울시가 토지거래허가구역을 재지정해 발표한 지 2주가량 지났지만 서울 강남구 압구정지구 인근 공인중개사들은 한숨을 내쉰다. 대선 직후 재건축 규제가 완화될 거라는 기대감이 커지자 그나마 아파트를 내놨던 집주인들도 매물을 거뒀다고 전한다.

성동구 성수동도 사정은 비슷하다. 성수동 B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는 “썩빌(노후 빌라), 썩상(노후 상가)에 투자하겠다며 찾아왔다가 이곳이 토지거래허가구역인 걸 듣고는 그냥 돌아가는 손님이 대부분”이라며 “자금 여력은 되는데 갭투자를 할 수 없으니 다른 동네로 가 투자처를 알아보려는 듯하다”고 전했다.

서울 내 재건축 단지가 몰린 주요 지역의 토지거래허가구역 규제가 1년 연장됐다. 새 정부의 부동산 규제 완화 기조에 집값이 다시 오를 조짐을 보이자 서울시가 이를 억제하기 위해 꺼내든 카드다. 하지만 지정이 연장된 지역은 물론 인근 지역에서도 신고가에 아파트가 거래되는 ‘풍선 효과’ 사례가 속출하고 있어 곳곳에서 토지거래허가제 ‘무용론’이 터져 나온다.

서울시는 지난 4월 21일 서울 압구정아파트지구(24개 단지), 여의도아파트지구와 인근 단지(16개 단지), 목동택지개발사업지구(14개 단지), 성수전략정비구역 등 4곳을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재지정했다. 이들 지역은 서울의 대표 재건축·재개발 사업 추진 지역으로 꼽힌다. 서울시는 이들 지역에서 여전히 투기 수요 유입과 집값 상승이 우려된다는 이유로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을 풀지 않고 1년 연장했다.

토지거래허가구역은 일정 규모 이상 주택과 상가, 토지를 살 때 관할 시·군·구청장 등 지자체장의 허가가 필요하도록 한 규제다. 특히 주거용 토지는 2년간 실거주용으로만 이용이 가능하도록 했다. 실거주 거래만 허가되기 때문에 사실상 전세를 끼고 집을 사는 갭투자가 불가능하다. 투기 수요를 잡아 집값을 안정시키겠다는 취지로 서울시가 지난해 4월 27일 압구정·여의도·목동·성수 일대 54개 단지를 1년간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했다. 최근에는 토지거래허가대상 면적 기준도 강화해 빌라 등 소형 주택 거래까지 규제하기 시작했다.

처음 토지거래허가구역에 지정됐을 당시만 해도 잠시 동안은 집값이 잡히는 듯했다. 구역 지정 이후 거래량이 급속도로 줄어들었다. 실제로 서울부동산정보광장 통계를 기준으로 지난해 토지거래허가구역이 처음 지정되기 전 1년과 지정된 후 1년 주택(아파트 포함) 매매 거래를 비교해보면 ▲압구정동 505건→40건 ▲여의도동 405건→80건 ▲목동·신정동 2595건→742건 ▲성수동1·2가 406건→166건으로 줄어들었다. 압구정동의 경우 실거래가 10분의 1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최근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재지정된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일대. (매경DB)

▶‘토지거래허가’ 뚫고 오르는 집값

▷여의도 20억·압구정 38억 신고가 줄줄

하지만 새 정부가 들어서면 부동산 규제가 풀릴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아지자 신고가 경신 사례가 속속 나타나고 있다. 압구정 외에도 여의도, 목동에서도 직전 신고가 대비 적게는 수천만원에서 많게는 수억원씩 오른 가격에 거래가 이뤄졌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영등포구 여의도동 한양아파트 전용 109㎡는 지난 4월 14일 20억3000만원(1층)에 주인을 찾았다. 이전 신고가는 지난해 4월 거래된 19억원(6층)짜리 아파트였다. 1년여 만에 1억3000만원 오른 셈이다. 이 아파트는 지난 3월에도 전용 149㎡가 25억8000만원(4층)에 매매계약서를 쓰며 신고가를 기록한 바 있다.

한강변 대표 부촌인 압구정 등 강남권 토지거래허가구역에서도 신고가 거래가 터지고 있다.

압구정동 현대8차 전용 107㎡는 지난 4월 23일 38억7000만원(7층)에 팔렸는데, 직전 최고가 36억8000만원(지난해 10월)보다 1억9000만원 상승했다. 대치동 선경1차 전용 117㎡ 역시 이전보다 5억7000만원 오른 38억4000만원(10층)에 신고가 거래를 기록했다. 대치동은 현재 삼성동, 청담동과 함께 국제교류복합 개발 사업 관련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여 있는 곳이다. 구역 지정은 오는 6월이면 종료되지만 집값 상승 우려에 재지정될 가능성이 높다.

비강남 지역인 목동, 성수동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거래 자체는 예전보다 줄었지만 신고가를 쓰는 곳이 심심찮게 등장한다. 신정동 목동신시가지9단지 전용 107㎡도 지난 3월 직전 신고가 대비 5000만원 높은 21억5000만원(14층)에 실거래됐다. 성수동 한강한신 전용 85㎡도 대선 직후인 지난 3월 23억7000만원(6층)에 팔렸다. 지난해 1월 직전 거래가보다 3억4000만원 뛰었다.

이들 토지거래허가구역에서는 경매를 통한 갭투자 열기도 뜨겁다. 경매는 일반 매매와 달리 허가제 신고 대상이 아니라서다. 자금조달계획서 제출과 실거주 의무도 없다. 낙찰을 받은 뒤 전세를 놓을 수 있다 보니 자금 여력이 부족한 투자자들이 ‘갭투자’ 용도로 활용하는 모습이다. 윤재호 메트로컨설팅 대표는 “실제 올해 토지거래허가구역에서 나오는 주택 경매 매물은 최초 감정가보다 수억원씩 높은 가격에 낙찰되고 있다”며 “높은 가격에 낙찰받아도 당장 들어가는 자금이 적고 직접 입주할 필요도 없다 보니 수요가 꾸준하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집값 잡혔나” 고개 드는 무용론

▷서초에서도 신고가 속출 ‘풍선 효과’

일명 ‘압·여·목·성’ 지역에서 매매 거래가 주춤한 데도 신고가를 잇따라 경신하는 동안 토지거래허가구역이 아닌 지역에서도 ‘풍선 효과’가 감지된다. 특히 반포·잠원동이 있는 서초구는 강남 3구 가운데 유일하게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되지 않아 서울 내에서도 신고가 거래 비중이 높다.

반포동 ‘아크로리버파크’ 전용 85㎡는 지난 4월 2일 43억1000만원(12층)에 거래됐다. 지난 1월 실거래가(46억6000만원, 8층)보다는 다소 하락했지만 지난해 4월 같은 아파트가 31억~34억원대에 거래됐던 점을 감안하면 1년 만에 10억원가량 시세가 뛰었다. 공교롭게도 지난해 4월 압·여·목·성 지역이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된 이후 가격이 급등했다. 반포동 B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는 “래미안원베일리에서는 전용 84㎡가 지난 3월 38억7407만원에 주인을 찾았다”며 “불과 지난해 8월 33억5000만원에 거래됐던 평형이 1년도 안 돼 5억원 이상 뛰었다. 20평대 소형 아파트도 지난 1년 새 3억~5억원씩 뛴 곳이 수두룩하다”고 귀띔했다.

주요 지역을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재지정했는데도 신고가 거래가 속출하다 보니 일각에서는 ‘규제 무용론’까지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토지거래허가제로 갭투자가 줄어드는 등 투기를 차단하는 긍정적인 효과는 있다”면서도 “다만 구역에 지정된 1년간 정비사업의 구체적인 추진 방법이나 일정 등 계획을 수립하는 데 써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질적인 정비사업 추진 절차 없이 무기한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을 연장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지적이다.

[정다운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58호 (2022.05.11~2022.05.17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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