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체인 데이터'가 뭐예요? 거래소·채굴자·고래 움직임으로 가격 예측
“이번에는 대체 왜 떨어진 거야?”
암호화폐(코인) 가격이 급락할 때마다 투자자는 패닉에 빠진다. 답답한 점은 ‘돈을 잃었다’는 사실뿐 아니다. 무엇 때문에 코인 가격이 떨어졌는지 짐작도 잘 안 가는 게 더 답답하다. 이유라도 알아야 다음에는 다른 투자 결정을 할 텐데, 코인 시장에서는 그게 어렵다.
물론 뉴스 기사나 전문가들이 가격 급락을 놓고 이런저런 해석을 내놓기는 한다. ‘금리 인상이 결정돼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창업주 발언 때문에’ ‘미국 금융당국의 코인 시장 규제가 강화돼서’ 등. 하지만 이는 ‘사후 해석’, 그리고 ‘정황상 이런 이유 때문인 것 같다’는 추측성 해석에 그치고 만다.
주식 시장과는 달리 이른바 ‘펀더멘털’이 없다는 점도 투자자 입장에서는 곤혹스럽다. 코인 프로젝트는 기업처럼 딱히 ‘실적’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없다. ‘전년 대비 영업이익이 줄어서’ ‘자산 가치가 감소해서’와 같은 식의 해석이 불가능하다. 대부분 투자자가 본인의 ‘감’에만 의존해 투자에 나설 수밖에 없는 이유기도 하다.
하지만 코인 시장에도 참고할 만한 ‘지표’가 분명히 있다. 그것도 모두에게 공개돼 있고, 또 주관이 개입되지 않은 객관적인 데이터. 바로 ‘온체인 데이터(On-chain data)’다. 온체인 데이터는 무엇인지, 또 투자 결정에 있어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지 살펴본다.
▷블록체인에 기록되는 공개 데이터
온체인 데이터는 블록체인 위에서 주고받는 모든 거래 기록에 대한 데이터를 말한다. 블록체인상에서 거래된 코인 종류나 개수, 지갑 주소, 채굴자에게 지급되는 채굴 수수료 등이 대표적이다. 블록체인은 그 특성상 모든 정보가 대중에 개방돼 있다. 모든 정보는 블록체인에 공동으로 기록돼 저장되고 공개되기 때문에 거래 정보를 숨기거나 조작할 수 없다.
모든 이가 열람할 수는 있지만 이를 일일이 다 파악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거래가 이뤄질 때마다 끊임없이 최신화되는 데다 개별 거래가 하나하나 기록되는 탓에 유의미한 정보를 도출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주식 시장으로 비유하면 ‘1월 1일 오후 1시 30분, A가 삼성전자 2주 매수’ ‘1월 1일 오후 1시 31분 B가 삼성전자 3주 매도’ 같은 정보가 끊임없이 올라오는 식이다. 매수·매도 흐름이 차트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파편화된 개별 정보만 등록되는 셈이다.
온체인 데이터를 종합하고 시각화까지 하는 ‘온체인 데이터 전문 분석 기업’들이 나온 배경이다. 이들은 블록체인상 데이터를 한곳에 수집하고 단순 나열된 데이터를 가공해 분석한다. 예를 들면 수많은 암호화폐 지갑 중 거래소 지갑만 분리해놓는다든지, 채굴자 지갑만 따로 관리해 해당 거래를 분석하는 식이다. 전 세계적으로는 글래스노드(Glassnode), 크립토퀀트(Cryptoquant) 같은 기업이 유명하다. 특히 한국인인 주기영 대표가 창업한 크립토퀀트는 한글 서비스를 지원하는 덕분에 해외뿐 아니라 국내 투자자 이용률도 높다.
▷거래소·채굴자 코인 보유량
의미 있는 온체인 데이터 분석을 위해서는 먼저 코인 시장과 가격에 큰 영향을 끼치는 ‘주요 플레이어’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크게는 셋이다. 첫째 ‘가상자산 거래소’, 둘째 ‘채굴 사업자’, 셋째 막대한 유동성을 보유한, 흔히 말하는 ‘고래 투자자’다. 이들 사이 거래 흐름을 포착하면 전체 시장 가격 추이를 예측해낼 수 있다.
먼저, 가상자산 거래소다. 가상자산 거래소에도 당연히 지갑이 있다. 코인 매매는 따지고 보면 ‘투자자가 거래소 지갑에 C코인을 보내고 그 가치만큼의 D코인을 받는 행위’나 다름없다. 거래소 지갑이 보유한 코인 수량과 코인 움직임을 분석하는 것은 중요하다. 대부분 거래가 거래소에서 이뤄지고 가격도 거래소에서 결정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거래소 지갑으로 갑자기 많은 양의 비트코인이 입금된다면? 이때는 비트코인 가격이 떨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해석할 수 있다. 투자자가 비트코인을 팔기 위해, 또는 비트코인으로 다른 알트코인을 구입하기 위해 개인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을 거래소로 옮겼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거래소 지갑에서 개인 투자자 지갑으로 비트코인이 대거 빠져나갔다면 가격 상방 압력이 생겼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투자자가 개인 지갑으로 비트코인을 옮겨놓는 것은 ‘안전한 장기 보유’를 원하기 때문이다. 장기 보유를 원하지 않는다면 거래소에 예치해놓은 비트코인 매수·매도를 반복하지, 굳이 번거롭게 지갑으로 출금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상관관계를 잘 보여주는 선례도 많다. 2020년 3월 12일, 코인 투자자들에게는 ‘검은 목요일’로 불리는 날이 대표적이다. 당시 비트코인 가격은 개당 8000달러 선에서 3780달러까지, 하루 만에 50%가 넘는 낙폭을 보인 바 있다. 하지만 폭락이 시작되기 전 크립토퀀트 온체인 데이터에는 이미 비트코인 가격 폭락 조짐이 보이고 있었다. 3월 6일 297만개였던 거래소 비트코인 보유량이 3월 10일에는 300만개, 3월 12일에는 305만개까지 급등한 것. ‘피의 부처님 오신 날’로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지난해 5월 19일에도 비슷한 양상이 포착됐다. 5월 14일 268만개였던 거래소 비트코인 보유량이 5월 19일 274만개까지 늘었다. 같은 기간 비트코인 가격은 4만9892달러에서 3만6736달러까지 폭락했다.
크립토퀀트 관계자는 “거래소가 보유한 코인양은 대체로 가격과 반비례한다. 거래소로 입금된 코인양에서 출금된 코인을 뺀 ‘코인 순입출금량’ 역시 마찬가지다. 단, 현물이 아닌 선물 거래소 순입출금량의 증가는 가격 하방 압력보다는 가격 변동성이 커질 것이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채굴 사업자가 보유한 코인 개수도 가격과 유의미한 상관관계를 갖는다. 채굴자 보유 코인이 줄어들면 가격은 하락한다. 채굴로 얻은 코인을 시장에 내다 팔았다는 의미기 때문이다. 반대로 채굴자 코인 보유가 급격히 늘면 시장에 긍정적인 신호로 해석할 수 있다. 이는 채굴량이 늘어났다는 뜻이 아닌, 채굴자가 코인을 ‘매입’했다는 증거다. 주로 내다 팔기만 하는 채굴자조차도 코인을 사 모으기 시작했다는 것은 시장에 ‘호재’가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여기에는 채굴자들은 일반 투자자보다 상대적으로 더 많은 정보를 갖고 있다는 점도 고려된다.
온체인 데이터 전문 기업들은 ‘큰손 투자자’ 이른바 ‘고래’의 지갑 주소도 따로 관리한다. 그 분석 결과가 ‘거래소 비트코인 고래 비율 지표(Exchange Whale Ratio)’다. 고래 비율 지표란 거래소에 들어오는 입금량 기준 상위 10건의 비트코인 수량과 전체 입금량 사이 비율을 뜻한다. 해당 지표가 커지면 고래들의 매도 압력이 늘어나거나, 알트코인 매수·마진 거래 수요가 증가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가격 하락 신호로 여긴다. 크립토퀀트 관계자는 “해당 지표가 1에 가까워질수록 고래 물량 비중이 높다는 얘기다. 보통 0.6 이상으로 오르면 하방 압력 신호로 판단한다”고 설명했다.
▶온체인 데이터, 주의할 점은
▷거래소 내 입출금은 파악 어려워
투자에 참고할 만한 온체인 데이터는 이 밖에도 많다. 코인 보유 기간별 평균 매수 가격을 뜻하는 ‘UTXO’, 전체 코인 투자자들의 투자 실적을 합산했을 때 수익 구간인지 손실 구간인지를 보여주는 ‘미실현순수익(NUPL)’ 등 100가지도 넘는다.
온체인 데이터가 물론 만능은 아니다. 거래소 내부 지갑끼리 거래를 뜻하는 ‘마켓 데이터’는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개인 외부 크립토 지갑에서 업비트 거래소로 코인을 옮길 시에는 데이터가 잡히지만, 업비트 계좌에 원화를 예치하고 있던 이가 1000만원어치 비트코인을 구입하는 것은 포착하지 못한다. 투자를 결정할 때 참고 데이터 정도로 활용하는 것이 현명하다. 크립토퀀트 관계자는 “거래소 내부 거래, 갑작스러운 외부 충격 등을 파악하지 못한다는 단점은 있지만 코인 가격 급등과 급락, 그리고 장기 추세를 예측하는 데 있어서는 온체인 데이터 적중률이 높다. 여러 온체인 데이터를 종합 분석하는 습관을 기르다 보면 코인 투자에 도움이 될 것으로 자신한다”고 말했다.
[나건웅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58호 (2022.05.11~2022.05.17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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