폰 버리고 배달원 위장..여권 뺏긴 '反푸틴' 록가수 극적 탈출
반(反)푸틴 러시아 록밴드 '푸시 라이엇'의 리더 마리아 알료히나(33)는 불과 얼마 전까지 가택 연금 중이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공개 비판했다는 이유에서다.
알료히나는 여권도 압수된 채 러시아 경찰의 감시를 받는 상태였고, 러시아 당국은 그를 곧 유형지(流刑地)로 데려가겠다고 통보했다. 그러나 알료히나는 현재 러시아를 빠져나와 리투아니아에 머무르며 우크라이나를 돕는 기금 마련 순회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그는 어떻게 삼엄한 러시아 당국의 감시망을 뚫고 국외로 탈출할 수 있었을까. 뉴욕타임스(NYT)는 10일(현지시간) 알료히나의 극적인 탈출 과정과 자유를 위한 그의 지난 10년간의 투쟁을 러시아 당국이 어떻게 억압해왔는지 소개했다.
록밴드 푸시 라이엇은 지난 2012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3기 집권을 반대하며 모스크바에 있는 러시아 정교회 성당에서 시위성 공연을 해 국제사회에 이름을 알렸다. 당시 알료히나 등 푸시 라이엇 멤버 3명은 종교 시설에서 난동을 피웠다는 이유로 기소돼 징역 2년형을 선고받았다.
국제사회에선 이에 대해 인권 탄압이란 비판이 일었지만, 푸틴 대통령은 당시 "그들이 체포된 것과 법원의 결정은 옳은 일"이란 의견을 밝혔다.
NYT는 "(최근) 러시아 정교회의 수장 키릴 총대주교는 우크라이나로 가는 러시아 군인들을 축복했고, 유럽연합(EU)의 제재 명단에 이름이 올랐다"며 "당시의 시위성 공연은 (현재의 상황에서 볼 때) 선견지명이 있었다"고 평했다.
알료히나는 감형으로 2013년 12월 풀려난 뒤 멤버들과 함께 정부에 비판적인 독립 매체를 세웠고, 관련한 해외 순회 공연도 했다. 러시아 당국의 압력으로 이들의 공연을 허락한 러시아 공연장은 3곳 뿐이었다.
알료히나는 러시아의 정치범 석방을 요구하거나 푸틴과 가까운 알렉산더 루카센코 벨라루스 대통령을 비판하는 게시물을 소셜미디어에 올려 여러 차례 단기형을 선고받고 투옥됐다. 그가 표현의 자유와 같은 기본 인권을 위해 싸우다 15일간의 단기형을 선고받은 건 지난해 여름 이후에만 6차례나 된다고 NYT는 전했다.
알료히나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 정부를 비판한 이후 연금된 집의 문에 누군가 '배신자'라고 써 놓은 걸 보고 탈출을 결심했다고 한다. 그는 음식 배달원 유니폼을 입고 배달원인 척 위장해 경찰의 눈을 피했다. 위치 추적을 피하기 위해 휴대전화는 집에 두고 나왔다고 한다.
밖에서 차를 타고 대기하고 있던 친구가 그를 벨라루스 국경까지 데려다줬다. 그러나 러시아 당국에 의해 압수돼 그는 여권이 없었고, 수배자 명단에도 올라있었다.
그는 국경을 넘는 첫 번째 시도에서 벨라루스 국경 경비대에 의해 6시간 억류됐다 풀려났고, 두 번째 시도도 거부당했다. 그러나 알료히나는 유럽 국가의 도움으로 EU 시민에게 부여되는 여행 증명서를 발급받을 수 있었다. NYT는 이 증명서는 알료히나를 위해 벨라루스로 밀반입됐고, 그에게 도움을 준 나라와 관리는 익명을 요구했다고 전했다. 그는 벨라루스에서 일주일간 머문 뒤 버스를 타고 리투아니아로 올 수 있었다.
알료히나는 NYT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러시아에서 벨라루스를 거쳐 탈출할 수 있었던 건 러시아의 사법 기관이 엉성하다는 걸 보여준다고 했다. 그는 "밖에서 보면 (러시아가) 큰 악마처럼 보이지만 안에서 보면 정말 체계가 없다"면서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른다"고 했다.
또 그는 "러시아는 더 이상 존재할 권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우크라이나 침공) 이전에도 러시아가 어디로 가고 있는 지에 대해 의문이 있었지만, 지금은 더 이상 의문의 여지가 없는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알료히나는 "언젠가 러시아에 돌아가고 싶다"면서도 "마음이 자유롭다면 어디에 있든 상관없다"고 했다.
임선영 기자 youngc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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