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전쟁 종료 못하고 있는 것..자신이 만든 늪에 빠졌다"

임선영 2022. 5. 11.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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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은 수렁에 빠져 어떻게 빠져나가야 할지 모르고 있다."(워싱턴포스트)
"가장 충격적인 부분은 푸틴이 말하지 않은 것에 있다."(더 타임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9일(현지시간) 제2차 세계대전 전승기념일 연설을 두고 푸틴이 아직까지 우크라이나 전쟁의 '출구 전략'을 찾지 못했으며, 전쟁이 더욱 예측하기 어려운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음을 시사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9일 러시아 모스크바 붉은광장에서 열린 전승기념일 행사에서 연설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푸틴, 자신이 만든 재앙서 못빠져 나와"


서방의 예측과 달리 푸틴은 전승절에 우크라이나에 대한 공식적인 전면전 선언이나 핵무기 사용 위협을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에서 승리했다고 주장하거나, 긴장 완화 신호를 보내지도 않았다. 그는 이번 연설에서 '돈바스'는 다섯 차례나 거론한 반면 '우크라이나'란 단어는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다고 BBC·알자지라 등은 전했다.

대신 그는 이번 사태의 책임을 서방에 돌리고, 현 상황을 나치에 저항한 2차 세계대전에 비유하며 자국민의 지지를 이끌어내는 데 주력하는 모습이었다.

WP의 칼럼니스트이자 외교 정책 분석가인 맥스 부트는 이날 WP 기고에서 "푸틴은 자신이 만든 재앙으로부터 쉽게 빠져나갈 수 있는 방법이 없어 보인다"고 평했다. 또 "이 전쟁이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고 있음을 이해하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푸틴이 9일 전승절 열병식 참석 후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무명용사에 대한 헌화식에 참여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푸틴이 일각의 예상과 달리 전승절에 대규모 동원령을 내리지 않은 것은 당장 군사적 이득이 없고, 국내 여론만 악화시킬 수 있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부트는 분석했다.

푸틴이 이날 우크라이나와 서방을 향해 핵 위협을 가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부트는 "우크라이나 침공 후 푸틴이 이성적인가에 대해 논쟁이 있었다"며 "푸틴은 고립돼 오판하기 쉽고, 푸틴의 군대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전쟁 범죄를 저지르고 있지만, (이날 핵 위협을 하지 않은 건) 푸틴이 미치진 않았다는 것을 암시한다"고 했다.

러시아 국방부는 당초 이날 열병식에서 핵전쟁 대비 공중 지휘통제기 ‘IL-80 둠스데이(Doomsday·최후의 날)’를 포함해 공중 퍼레이드를 선보인다고 예고했으나, 맑은 날씨에도 기상 악화를 이유로 들며 이를 취소했다.


"러, 전쟁 어떻게 끝낼지 결정 못한 듯"


국제 문제 분석가 이가르 티슈게비치는 9일 알자지라에 푸틴의 연설과 이번 열병식에 대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을 어떻게 끝내야 할지 결정하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평했다. 그는 러시아군이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지만,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상태라고 분석했다. 카네기 국제평화재단의 안드레이 콜레스니코프 선임 연구원은 CNN에 "푸틴의 계획은 더 명확해지지 않았다"고 평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이날 "푸틴이 전쟁의 출구를 찾지 못해 우려된다"며 "이에 대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 알아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우크라이나 이르핀 인근에서 파괴된 러시아군의 탱크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러시아군은 키이우에서의 퇴각을 만회하기 위해 돈바스에 집중하고 있지만, 미 전쟁연구소는 8일 "러시아군이 (돈바스의) 어떤 축에서도 이렇다 할 진격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개전 이후 전사한 러시아 군인이 2만5000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러시아군은 이번 전쟁에서 600대 이상의 탱크를 포함한 군용 차량 3500대와 항공기 121대, 9척의 해군 함정을 잃어 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의 손실을 입었다고 WP는 전했다. 서방의 제재로 올해 러시아 경제는 10% 위축되고, 인플레이션은 23%에 달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상황이다.

반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오히려 서방을 하나로 뭉치게 했으며, 우크라이나군은 서방의 지원으로 모든 종류의 무기를 갖추며 사기가 높아졌다는 평가다.


연설과 무관하게 긴장 수위 여전


그러나 푸틴의 연설은 전쟁 장기화를 암시하며 연설 내용과 무관하게 긴장 수위는 여전히 높다는 분석도 나온다.

BBC는 "푸틴은 이번 연설에서 (전쟁에 대한) 단서나 적대 행위를 끝낸다는 아무런 신호도 주지 않았다"며 "현재로선 전쟁이 계속될 것으로 봐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러시아 시민들이 9일 2차 세계대전에서 희생된 군인의 초상화를 들고 행진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더 타임스는 푸틴의 연설 내용에 대해 "우크라이나 침공을 정당화하기 위한 국내 방어용이었다"고 평했다. 그러면서 "이날 연설에서 대규모 동원령이 거론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러시아가 그런 계획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고 지적했다. 또 매체는 푸틴이 연설에서 러시아 군인들의 죽음에 애도를 표하고, 유족에게 지원을 약속한 것에 주목해 "이는 푸틴이 더 많은 희생자가 나올 것을 예상하며, 전쟁이 오랫동안 이어질 것으로 본다는 분명한 함의를 지닌다"고 분석했다.

푸틴을 연구해 온 정치 분석가 타티아나 스타노바야는 뉴욕타임스(NYT)에 "푸틴은 많은 러시아인이 전통적인 공휴일로 여기는 전승절 행사를 긴장 고조의 신호를 보내는 기회로 삼는 건 적절치 않다고 봤을 수 있다"며 "그의 시각에서 가장 큰 문제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서방의 무기 지원인 만큼 이를 저지하기 위한 본보기로 핵무기를 사용할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했다.

임선영 기자 youngc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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