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짝 실적' 줄 잇는 상사업계, 자원 투자 '뚝심'..사업 다각화 통했다

배준희 2022. 5. 10.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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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재·에너지 가격 상승과 물류 대란 속 상사업계가 반사이익을 톡톡히 누리는 중이다. 상사는 과거 수출입 중개가 주력 사업이었으나 국내 기업들의 ‘글로벌라이제이션(세계화)’이 가파르게 진행된 뒤 오랜 기간 침체를 겪었다. 돌파구를 찾아 상사업계는 해외 자원에 지분 투자 등 다각화에 역량을 쏟아왔는데 이런 노력이 이제야 빛을 보기 시작했다는 분석이다.

▶신바람 난 상사업계

▷1분기 앞다퉈 최고 실적

초인플레이션으로 대부분 기업이 비용 통제에 비상이 걸린 가운데 최고 실적을 기록한 상사업계는 남몰래 표정관리 중이다. 이는 코로나19 사태가 ‘엔데믹’ 체제로 전환되면서 각국에서 원자재 수요가 급증한 데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까지 겹쳐 에너지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은 결과다.

지난 4월 27일 삼성물산 상사 부문은 1분기 연결 기준 매출 5조7800억원, 영업이익 1900억원으로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1년 전보다 매출은 53% 늘었고 영업이익은 2배 이상 급증했다. 이에 한동안 기를 펴지 못했던 상사 부문 목소리가 커졌다는 분석이다. 2015년 제일모직, 삼성물산 등을 합병하면서 통합 삼성물산이 출범할 당시에는 건설 부문이 ‘대들보’ 역할을 했다. 이번 1분기에는 상사 부문이 건설 부문보다 두 배가량 많은 매출액을 기록했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상사 부문의 이익 기여도가 과거보다 크게 올라갔을 것으로 보고 있다.

10여년간 자원 개발에 나섰던 LX인터내셔널과 포스코인터내셔널 또한 1분기 나란히 최고 실적을 기록할 전망이다. LX인터내셔널은 연결 기준 1분기 잠정 매출이 전년보다 34% 증가한 4조9181억원을 기록했다고 최근 밝혔다. 이 기간 영업이익은 2457억원으로 2배 이상 늘었다. 영업이익과 매출 모두 분기 기준 역대 최대다. LX인터내셔널이 잠정 실적을 선제적으로 공시한 것부터가 이례적인 것으로 업계는 본다. 잠정 실적은 의무사항이 아니다. 잠정 실적 공시는 일종의 ‘신호 효과’가 있어 한동안 잠정 실적을 공시하다가 돌연 중단했을 땐 사업 전략에 차질이 빚어진 것 아니냐는 우려 섞인 해석을 초래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잠정 실적을 공시한 것은 앞으로 실적에 자신감이 있다는 방증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포스코인터내셔널도 올 1분기 ‘깜짝 실적’을 달성했다. 1분기 매출액은 9조9123억원으로 1년 전 같은 기간보다 40% 늘었다. 이 기간 영업이익은 70% 늘어난 2160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역대 최고였던 지난해 2분기 1700억원을 훌쩍 웃도는 것이다. 철강 트레이딩 부문이 사상 최대 분기 실적을 달성했고 팜유 가격이 오르면서 투자법인 실적이 좋았다. 에너지 부문 수익성 개선을 바탕으로 2분기 이후로도 호실적을 이어갈 것으로 증권가는 전망했다. 이외 현대코퍼레이션도 지난해 1분기(70억원)보다 2배 많은 145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호실적 원동력은

▷원자재 적기 투자 덕분

상사업계 호실적의 원동력은 석유, 천연가스, 석탄 등 원자재·에너지 가격 급등이다.

LX인터내셔널은 유연탄(석탄)과 팜오일 가격이 급등한 덕을 봤다. LX인터내셔널은 인도네시아에서 팜유 농장을 운영한다. 팜유는 식용유와 바이오디젤 등의 원료로 쓰인다.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가 세계 전체 팜유 생산량의 80%가량을 차지하는데, 코로나19 국면에서 노동력 공급에 차질을 빚으면서 코로나 이전보다 공급량이 줄어 가격이 상승했다. 시장조사업체 트레이딩이코노믹스에 따르면 최근 팜오일은 1년 전과 비교해 60% 이상 오른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그린플레이션’으로 석탄 가격도 급등했다. 유럽연합(EU)의 러시아 추가 제재가 구체화한다면 석탄 값은 더 오를 수 있다. EU 회원국은 석탄의 절반가량을 러시아로부터 수입한다.

삼성물산 상사 부문은 트레이딩과 원자재·에너지 개발 사업 등에서 고른 실적을 냈다. 영업이익 비중은 트레이딩 61%, 사업 운영 23%, 사업 개발 16% 순이다. 트레이딩 분야에서는 인도에서 대형 비료 사업 입찰 건을 따내는 등 외형 성장이 두드러졌다. 사업 운영 분야에서는 루마니아 오텔리녹스 철강 정밀재 공장과 캐나다 온타리오 신재생 발전 사업 등 해외 사업장의 생산성 제고 노력이 수익성 개선으로 이어졌다.

2013년부터 미얀마 가스전을 확보해 운영해온 포스코인터내셔널은 최근 국제 유가가 오르면서 유가에 연동하는 천연가스 가격 상승에 따른 수혜를 보고 있다. 포스코인터내셔널은 1990년대 중반부터 미얀마에 일찌감치 네트워크를 구축했던 대우인터내셔널이 전신이다.

▶체질 개선 효과 가시화

▷전략 자산 투자 다각화

최근 분위기 관련, 글로벌 무역 환경 변화 이후 오랜 기간 공들여온 상사들의 체질 개선 노력이 결실을 맺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과거 종합상사는 1975년 정부의 수출진흥 정책에 따라 종합무역상사제도가 시행되면서 줄지어 설립됐다. 종합상사로 지정되면 세제·금융 지원이 뒤따랐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1999년 종합상사 수출이 국내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1%였다. 1990년대 후반까지 상사업체는 중개 수수료 수익을 버는 데만 몰두했다. 그러다 1998년 IMF 외환위기를 변곡점으로 국내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해외 진출에 나서면서 무역 판도는 격랑에 휩싸였다. 개별 기업의 글로벌 네트워크 확대와 이를 기반으로 한 수출 역량이 획기적으로 개선되면서 종합상사 사세는 확 쪼그라들었다. 2009년에는 종합무역상사제도마저 폐지됐다. 2020년 기준 종합상사가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대로 미미하다.

상사업계는 새로운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탁월한 글로벌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자원 개발을 비롯한 신사업 다각화에 적극 나섰다. 가령, LX인터내셔널의 에너지 사업군은 지난해 영업이익의 40% 정도를 책임질 만큼 주력 사업으로 자리 잡았다. 포스코인터내셔널은 트레이딩·에너지·투자 등 3가지 사업군 가운데 투자업의 존재감이 남다르다. 포스코인터내셔널은 전체 영업이익 중 인도네시아 팜 농장, 우즈베키스탄 면방 사업 지분 투자와 관련한 비중이 2019년 4.6%에서 지난해 30%까지 올랐다.

일각에서는 원자재발 인플레이션이 ‘피크아웃’했다는 전망과 함께 일회성 이익 아니냐는 우려 섞인 시선이 제기되지만 여기에는 반박이 따른다. 무엇보다 작금의 추세가 단기간에 뒤집혀 원자재 가격이 급랭할 것으로는 보지 않는 분위기다. 허장 IMF 상임이사는 최근 인플레이션에 대해 “구조적인 문제”라며 “중국이 여전히 봉쇄 중인 데다 예상치 못한 우크라이나 사태가 발생했기 때문에 향후 추이를 지켜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에도 고물가 상황이 전 세계적으로 장기화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에 상사업계는 그린플레이션 등 구조적 가격 상승세가 예상되는 핵심 자원을 중심으로 투자를 지속하는 한편, 원자재 사업의 이익 변동성을 완화하기 위한 다각화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동시에 ESG 경영 전략의 일환으로 친환경 사업 발굴에도 역량을 쏟는다.

가령, 지난 3월 포스코인터내셔널은 호주 에너지 기업 세넥스에너지 지분 50.1%를 3720억원에 취득하기로 결정했다. 세넥스에너지는 호주 6위 천연가스 생산·개발 기업이다. LX인터내셔널은 친환경 바이오매스 발전 사업 진출을 위해 DL에너지가 보유한 포승그린파워의 지분 63.3%를 950억원에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바이오매스 발전이란 식물·동물·미생물 등을 통해 얻는 에너지로 전기를 생산하는 것을 말한다. LX인터내셔널은 올 들어서만 포승그린파워 인수를 포함해 7325억원의 사업 다각화 계획을 내놨다. 노동길 신한금융투자 애널리스트는 “구조적으로 원가 부담이 높지 않거나 비용을 전가하기에 유리한 산업인 상사, 비철 등 원자재 관련 업종 수혜는 앞으로 더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배준희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58호 (2022.05.11~2022.05.17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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