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듣고싶은 설교] 긍휼을 베푸는 삶
팔복의 다섯 번째 가르침은 긍휼히 여기는 자에 관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긍휼히 여기는 자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이 말은 우리가 긍휼한 마음을 가지고 긍휼을 베풀며 살아가길 원하신다는 것을 뜻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경험과 상관없이, 자신이 어떤 삶을 살아왔든지 상관없이 긍휼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모든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이미 입었기 때문입니다. 개인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 그분의 긍휼하심을 이미 받았기 때문에 다른 영혼에 대해 긍휼의 마음으로 바라봐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모든 성도는 상처 입은 치료자(Wounded healer)입니다. 고난과 고통으로 인하여 괴로워하고 절망하며 생명까지도 포기하고 싶을 만큼 어려움을 겪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그 분의 긍휼로 인하여 회복된 것입니다. 그렇기에 나를 위로해 주신 그 위로로 다른 영혼들을 위로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성경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요한복음 3장 16절에 나타나듯이 하나님의 사랑일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거저 주시는 사랑,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사도바울도 로마서 5장 8절에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말합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그런데 에베소서 2장 4절과 5절을 보면 이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님의 긍휼하심에 기인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그리고 마태복음 9장 36절은 예수님 역시 이 긍휼의 마음으로 이 땅에서 많은 사역들을 감당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 하나님의 긍휼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나타나고 그 사랑은 예수님의 사역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긍휼히 여기는 마음은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그리고 그런 마음을 품은 자가 복이 있는 이유는 그가 곧 하나님과 주님의 마음을 품은 자이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해 하나님의 마음과 일치하기 때문에 복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마음이 세상의 것이 아닌 오직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 주님의 마음과 일치하길 원하십니다.
그렇다면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며 산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긍휼히 여기며 사는 것은 단순히 머리로만 불쌍히 생각하고 마음으로만 측은히 여기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실질적으로 손과 발을 움직이는 것을 말합니다. 빌립보서 2장 5절은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 곧 긍휼의 마음을 품으라고 말하는데 이어지는 6절 이하는 그 마음이 어떤 것인지를 잘 보여줍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긍휼의 마음은 내가 좀 나으니까 불쌍히 여겨줘야지! 내가 측은히 여겨줘야지! 하는 마음이 아닙니다. 주님은 단지 불쌍히 여기시는 것에 그치지 않고 아래로 내려오셨습니다.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마음이 아닌 위에서 내려오는 마음, 이것이 진정한 긍휼의 마음입니다. 그래서 긍휼을 ‘함께’라는 의미의 com과 ‘고난’, ‘고통’이라는 뜻의 passion의 합성어인 compassion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고난의 자리에서 고통을 함께 느끼는 것, 그것이 바로 긍휼의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삶인 것입니다.
누가복음 10장 25절 이하는 긍휼을 베푸는 삶에 대해 보다 구체적으로 보여줍니다. 한 율법교사가 예수님께 내가 무엇을 행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는지를 묻자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시면서 자비를 베푼 사마리아인 이야기를 해 주십니다. 한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성으로 가는 중에 강도를 만나 거의 죽을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하지만 그 곁을 지나가던 제사장도 레위인도 그를 도와주지 않고 그냥 지나칩니다. 반면 사마리안 사람은 그를 보고 불쌍히 여깁니다.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그리고 그에게 가까이 갑니다. 발이 움직인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기름과 포도주를 상처에 부어 치료해 줍니다. 손을 움직인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 짐승에 그 사람을 태워 여관으로 데려가 돌보아 줍니다. 심지어 여관 주인에게 이틀 치 품삯에 해당하는 데나리온 둘을 주면서까지 잘 돌보아 줄 것을 부탁하는 것도 모자라 돈이 모자라면 내가 돌아올 때 더 주겠다고 까지 이야기합니다. 이 때 예수님께서 율법교사에게 묻습니다.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율법교사는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이것이 바로 긍휼을 베푸는 삶입니다. 긍휼을 베푸는 삶에는 수고가 따릅니다. 시간을 들여야 하며 물질을 내어놓아야 합니다. 내가 전혀 손해보지 않으면서, 내가 전혀 내려오지 않으면서 단지 동정만 한다면 그것은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삶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대로 그 높은 보좌를 버리시고 이 땅에 내려오셔서 십자가에 죽기까지 낮아지신 것처럼 살아가는 삶이 진정한 긍휼을 베푸는 삶, 긍휼히 여기는 자의 모습입니다.
로마서 1장 29절 이하에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불의한 자들의 모습 21가지가 나오는데 이 중에서 마지막 두 가지가 바로 무정한 자와 무자비한 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따뜻한 마음을 품고 자비와 긍휼을 베푸시길 원하십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먼저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 저를 불쌍히 여겨주시고 긍휼히 여겨주셔서 나의 마음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가득 채워주시옵소서! 그리하여 다른 영혼들을 긍휼히 여기며 자비를 베풀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나 자신만이 아닌 나의 배우자와 자녀들, 그리고 함께 신앙 생활하는 성도들과 주변의 이웃들을 위해서도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교회 공동체 안에 깊이 들어가야 합니다. 교회는 마음을 나누고 삶을 나누는 공동체입니다. 기쁜 일에 함께 웃고 슬픈 일에 함께 아파하며 눈물을 흘리는 곳입니다. 나의 삶에 어려움이 있고 기도의 제목이 있는데 어느 누구와도 나눌 수 없다면 그것은 신앙의 큰 위기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지 않아 영원한 형벌을 받게 될 잃어버린 영혼을 향한 긍휼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아직 믿지 않는 그들을 향한 불쌍한 마음,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그들에게 가서 생명을 전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 주님께서 원하시는 삶입니다. 우리 모두 주님의 마음인 긍휼을 품고 삶 속에서 자비를 베풀며 복음을 전하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마음껏 누리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황덕영 목사
새중앙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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