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슬픈 축가 '임을 위한 행진곡'

임무택 2022. 5. 10.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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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을 위한 행진곡'은 오월의 피와 혼이 응축된 상징이며 5·18민주화운동의 정신 그 자체입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애국가 다음으로 많이 부르는 노래가 아닌가 생각되며 이 노래 말속에 깃든 정신이 너무나 절절하고 가슴 깊이 다가와 정신을 올곧게 다잡기 위해 부르는 노래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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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무택 기자]

 윤상원의 생가 마을 담벼락에 그려진 벽화모습
ⓒ 임무택
'임을 위한 행진곡'은 오월의 피와 혼이 응축된 상징이며 5·18민주화운동의 정신 그 자체입니다. 이 행진곡은 불린 시대의 역사, 노래를 불렀던 사람들이 공유하는 체험까지도 아우르는 총체적 융합물일 것입니다.
이 행진곡은 1982년 2월 20일 광주 망월동 묘역에서 극단 '광대' 출신들이 죽은 사람의 원한을 풀어 주는 음악극 '넋풀이 굿'에서 마지막 노래로 소개되었으며 '임을 위한 행진곡'은 고인이 되어 저승으로 떠나는 '두 남녀'가 '산 자'에게 남기는 마지막 노래입니다.
  
 윤상원 박기순이 들불야학을 진행했던 광천동성당의 교육관이 철거되었지만 입구 일부를 기념으로 보존하고 있는 모습
ⓒ 임무택
 
[임을 위한 행진곡]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 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광주광역시 광산구 천동길46(신룡동) 윤상원 생가의 담벼락 모습
ⓒ 임무택
   
'임을 위한 행진곡'은 1983년부터 5·18민중항쟁 기념식에서 제창되었고 1997년부터 5·18광주민주화운동이 법정기념일로 제정되어 5·18기념식에서 제창으로 불려왔으나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하고 2009년 5·18기념식에서는 식전행사에서만 제창되었습니다.
2010년 5·18기념식에서는 당시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이 이 행진곡 대신 경기도 민요 '방아타령'을 연주하려다 '마른잎 다시 살아나'를 연주했던 아픈 기억이 있으며, 2011년부터 2016년까지 이 행진곡은 제창이 아닌 합창으로 불려졌습니다. 그 후 2017년부터 문재인 정부가 다시 제창 형식으로 되돌리면서 2017년 5.18기념식부터는 제창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윤상원기념관으로 사용하고 있는 해파재 전경
ⓒ 임무택
 
1980년대 이후 광주 민주화운동·노동운동 진영에서는 집회 때마다 국민의례에 상응하는 '민중의례'라는 새로운 의례를 자발적으로 하는 흐름이 생겨났으며, 민중의례란 국민의례의 애국가 제창, 순국선열 및 호국영령에 대한 묵념에 상응해,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고 민주열사에 대한 묵념을 실시하는 것입니다.
  
 윤상원생가에 세워진 기념탑 모습
ⓒ 임무택
 
'임을 위한 행진곡'은 애국가 다음으로 많이 부르는 노래가 아닌가 생각되며 이 노래 말속에 깃든 정신이 너무나 절절하고 가슴 깊이 다가와 정신을 올곧게 다잡기 위해 부르는 노래일 것입니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를 함께 하였던 지난 세월을 뒤돌아보면 아득한 산 넘어 산처럼 흐릿하게 보이는 것이 지난 세월이 아닌가 합니다.
 
 윤상원 기념관(해파재) 내부모습
ⓒ 임무택
   
이 세상의 모든 노래가 사연이 있겠지만 지난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는 5.18기념행사에 정부의 공식 입장으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노래를 부르지 못하게 한 것은 그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의 의식을 못마땅하게 바라보았기 때문에 국가보훈처를 앞세워 국민을 이념대결의 장으로 몰아세운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임을 위한 행진곡' 악보. 좌측은 1982년 소설가 황석영의 집이 있던 곳(현재는 광주문예회관)에 설치된 기념물이며, 우측은 윤상원 생가 마을 벽에 그려진 행진곡 가사.
ⓒ 임무택
 
'임을 위한 행진곡'은 1982년 소설가 황석영과 당시 전남대학교 학생이었던 음악인 김종률 등이 1980년 5월 27일 5·18광주민주화운동 중 전남도청을 사수하다가 계엄군에게 사살된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과 들불야학에서 함께 활동한 박기순의 영혼결혼식에 헌정된 노래입니다.
박기순은 1978년 말 노동현장에서 '들불야학'을 운영하다가 12월 25일 연탄가스 중독으로 사망한 노동운동가이며 '두 남녀'의 영혼결혼식 마지막을 장식하는 합창으로 쓰이기 위하여 지어졌습니다.
  
 1997년 망월동 구 묘역(광주시립묘지 제3묘원)에서 국립518민주묘지로 이장하기 위해 파묘하고 있는 윤상원 묘.
ⓒ 임무택
 
그 후 이 노래는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들이 부르는 노래였으나 청춘의 사랑도 접고 명예 따위 구하지 않고 이름은 가명으로 바꿔 가면서 어둠을 없애리라 맹세했던 한 여자와 한 남자는 도청을 지키고 죽어간 사람과 그에게 크나큰 감동과 슬픔을 안겨 주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원래 가사는 "앞서서 가나니 산 자여 따르라"였으나 가사는 사람들의 입속에서 "앞서서 나가니"로 바뀌면서 가사는 죽은 자와 산 자의 경계를 허물게 됩니다. 그 노래를 부르면서 많은 청춘들이 윤상원으로, 박기순으로 빙의되었고 그들은 대한민국의 현대사에 펼쳐진 1980년대 불의 바다에서 불방울들이 되었던 것입니다.
 
 국립518민주묘지에 윤상원 박기순의 합장한 묘지 모습
ⓒ 임무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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