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수완박? 권력이 말아먹는 법"..인혁당 언급한 한동훈, 왜

정용환 2022. 5. 10.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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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새벽 3시까지 17시간 넘게 진행된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인혁당(인민혁명당) 사건’이 언급됐다. 한 후보자가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 시행의 우려되는 점을 설명하면서 헌정사상 대표적인 사법살인 사건으로 꼽히는 인혁당 사건을 거론한 것이다. 그는 검수완박 법안을 두고 "인혁당 사건과 같은 처리 방법을 법으로 제도화 한 것"이라고 규정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는 지난 9일 오후 검수완박 법안을 두고 "후보자 입장에서는 이 법이 내용상 문제가 있다는 것을 분명히 확인한 것 맞냐"는 김형동 국민의힘 의원 질의에 "그건 전문가적 양심으로 확신한다"고 대답했다. 한 후보자는 그러면서 "심각한 것은 검찰이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는 조항을 넣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그는 "제가 현장에서 느끼는 바로는 이렇게 되면 검찰 수뇌부가 사건을 마음대로 말아먹을 도구로 악용될 것"이라며 "그 이유로 과거 인혁당 사건이 있었다"고 운을 뗐다. 이어 "인혁당 사건에서 수사 검사가 증거가 부족하다며 기소를 안 하겠다고 버티자 검사장이 당직 검사한테 배당을 해서 기소해버렸다"며 "(검수완박 법안은)인혁당 사태와 같은 처리 방법을 법으로 제도화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중정이 고문 송치한 1차 인혁당…검사들 "기소 거부" 사표

국내 사법 역사의 치욕스런 한 페이지를 장식한 인혁당 사건은 1961년 5·16 군사정변으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에 벌어졌다. 박 전 대통령의 한일회담에 반대한 대규모 시위가 1964년 3월부터 6월까지 벌어졌고, 결국 정부는 6월 3일 계엄령(6·3사태)을 선포해 시위를 무력 진압했다. 그해 8월 14일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은 "좌익 계열 정당인 인민혁명당이 북한의 지령을 받고 대규모 지하조직을 결성해 국가 변란을 시도했다"며 혁신계 인사와 언론인·교수·학생 등 41명을 검거하고 16명을 수배했다고 밝혔다. 이른바 1차 인혁당 사건이다.

법원의 `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인혁당) 사건` 재심이 결정된 뒤 유족과 관계자들이 당시 서대문형무소 사형장을 찾아 헌화하며 오열하고 있다. 중앙포토

중앙정보부는 피의자들을 서울지검(지금의 서울중앙지검) 공안부로 송치했는데, 사건을 넘겨 받은 담당 검사들은 3주 가까운 철야 수사 끝에도 기소를 할만한 증거를 찾지 못했고 오히려 중앙정보부의 고문 흔적 등만 발견했다. 검사들은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기소하지 못하겠다는 결론을 상부에 보고했고, 상부의 기소 압박이 계속되자 담당 검사 4명 중 3명(이용훈 부장검사, 김병리 검사, 장원찬 검사)이 기소장 서명을 거부하고 사표를 제출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서울지검은 중앙정보부 차장 출신의 당시 신직수 검찰총장의 명령에 따라 구속 만기일 당직 검사에게 기소장에 서명토록 해 인혁당 사건을 기소했다.

이 사건은 이후 유신정권 때인 1974년 인혁당 재건위(2차 인혁당) 사건으로까지 확대됐고 이때 중앙정보부는 군법회의 검찰부(군검찰)를 동원해 군법회의 재판부(군사법원)에 기소했다. 당시 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8명이 1975년 4월 8일 대법원이 사형을 확정한지 18시간 만에 사형 집행을 당했다. 2002년 9월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 의해 인혁당 사건이 재조명됐고, 법원은 2007년~2008년 2차 인혁당 사건, 2013년 1차 인혁당 사건의 재심을 열어 피해자 모두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한동훈 "정치사건 기소·불기소 맘대로 조정할 수 있어"

한 후보자가 검수완박법을 두고 인혁당 사건을 언급한 것은 이 법의 수사권·기소권 분리 조치가 자칫 권력자로 하여금 중요 사건에서 수사권자의 의도를 묵살하고 기소권자를 취사 선택하도록 만들 수 있어서다. 한 후보자는 "정치적인 사건이 있었을 때 수사 검사는 의견이 없게 된다"며 "(권력자가) 내가 원하는 기소 검사한테 맡겨서 기소, 불기소를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게 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국회가) 이 의도를 하고 (법을) 만드신 것은 아니겠지만 현장에 있는 사람으로서 저는 이게 가장 먼저 보였고 이게 운용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 검찰 간부는 "현행 검찰청법(제7조의 2)도 검사장이 소속 검사의 직무를 다른 검사로 하여금 처리할 수 있게 했지만 이는 매우 불가피한 사유가 있을 때에나 적용 가능한 예외 규정에 불과하다"며 "검수완박 법대로라면 검사장이 수사가 끝난 사건을 간단한 절차에 따라 기소 검사에게 손쉽게 배당하게 되는데, 이런 배당 절차로 인해 인혁당 사태 때의 무리한 사건처리 방식이 아주 간단히 제도화할 수 있다는 점은 충분히 우려할만 하다"고 말했다.

정용환 기자 jeong.yonghwa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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