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호정] 엄원상의 진화, "이젠 측면보다 하프스페이스를 사랑해요"

서호정 기자 2022. 5. 10.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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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볼리스트] 서호정 기자 = 2022시즌 리그 우승이라는 절대적인 목표를 준비하던 울산현대는 개막을 3주 앞두고 이동준의 이적이라는 거대한 변수와 맞닥뜨렸다. 과감한 이적료를 제시하며 FC서울과의 경쟁에서 앞서 엄원상을 데려오는데 성공하면서, 급한 불을 끈 홍명보 감독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또 다른 숙제도 기다리고 있었다. 폭발적인 스피드와 준수한 공격포인트 생산 능력은 닮았지만 2021시즌의 이동준은 자신과 팀의 플레이를 조율하고, 결정적인 순간마다 해결을 짓는 에이스 그 자체였다. 엄원상이 이동준의 자리를 메우려면 울산 유니폼을 입고 한 단계 더 발전해야 했다.


11라운드를 마친 현재 엄원상은 홍 감독의 불안감을 걷어내고 기대에 부응하는 중이다. 개막 직전에 합류하다 보니 팀과 함께 경기를 하는 데는 시행 착오도 있었지만 5경기 만에 득점에 성공했다. 부담감을 떨친 뒤 인천, 제주, 대구를 상대로 3경기 연속 골을 터트렸다. 그리고 8일 강원 원정에서 올 시즌 최고의 활약인 1골 2도움으로 팀의 3-1 역전승을 이끌었다.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ACL) 탈락과 직전 수원전 패배로 자칫 크게 흔들릴 수 있었던 울산은 강원에 선제골을 내주고 끌려가던 중 엄원상이 흐름을 바꿔준 덕분에 3-1 역전승을 거둘 수 있었다. 


홍 감독의 평가는 매우 호의적이다. "처음 영입할 때는 동준이의 역할을 해 줄 성향의 선수가 원상이 뿐이었기에 무조건 데려와야 했다. 큰 틀에서의 장점만 파악하고 있었는데, 함께 해 보니 장점이 더 많다. 그걸 우리 팀 플레이 스타일에 맞춰 보니 시너지 효과가 난다. 무엇보다 성격적으로 축구에 매우 진지하고, 계속 발전하길 원한다. 앞으로 더 좋아질 수 있다"는 게 홍 감독의 얘기였다. 


플레이 스타일에 대한 편견도 깼다. 공간이 열려야만 빠른 속도를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 기존 평가였지만, 울산에서는 지공 상황에서도 섬세하게 페널티 박스 부근과 하프스페이스(경기장을 세로로 5등분했을 때 양쪽 측면과 중앙을 제외한 그 사이 공간)를 중심으로 한 박스 안 공간을 공략하는데 능한 선수임을 증명하고 있다. 홍 감독은 "강원전 3번째 득점 과정이 대표적이다. 예전처럼 측면으로 넓게 빠져 있었으면 만들기 어려운 찬스인데 지금은 안쪽으로 좁혀서 하는 플레이를 아주 잘 한다. 그 전에는 많이 하지 않았지만 울산 스타일에 녹아들어서 해 보니까 패스, 터치가 수준급이라 잘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중이다"라며 변화상을 소개했다. 


엄원상은 어떤 생각을 갖고, 어떤 노력을 해 왔을까? 최근 활약에 대한 생각과 이적 후 울산 적응기에 대해 얘기를 나눠봤다. 


- 강원전 1골 2도움 맹활약으로 팀을 구했습니다. 교체 투입 당시의 상황도 그랬고, 자칫 팀이 무너질 수 있는 위기에서 정말 중요한 승리를 이끌었습니다. 
이전 챔피언스리그, 수원전의 결과가 안 좋아서 선수들이 흐름적인 면에서 강원전에서 반드시 승리하길 원했어요. 베테랑 형들을 중심으로 다시 뭉치며 준비를 잘 하자고 했어요. 올 시즌 치른 경기 중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한 경기였습니다. 다행히 제가 들어가서 조금 도움이 된 것 같아요.


- 울산에 온 뒤로 측면이 아닌 하프스페이스를 주로 삼고 있습니다. 강원전에서 팀의 3번째 득점을 만들 때 활용하는 영역이 그랬죠. 
그 장면은 팀의 전술적 움직임이 나왔어요. 오른쪽에서 주로 뛰기 때문에 경기 전에 (김)태환이 형과 얘기를 많이 하는 편입니다. 제가 안으로 들어가면 태환이 형 쪽에 공간이 비는데, 그러면 어떻게 할 지에 대해서 몇 가지 패턴을 약속했어요. 이번 강원전 전에도 그런 상황이 나올 거니까 이렇게 하자고 태환이 형이 얘기를 했는데 정확히 그게 나온 거죠.


- 레오나르도의 동점 골을 도울 때는 본인의 기존 강점인 속도나 적극성이 나왔습니다.
그런 강점 역시 잃으면 안 되니까요. 울산이라는 팀이 저를 선택한 부분에는 전 소속팀인 광주에서 보여준 빠르고 과감한 모습도 봤을 겁니다. 저도 기본적으로 그 부분을 최대한 유지하면서 울산의 스타일에 녹아들려고 해요. 모든 면에서 최우선 목표는 감독님이 설정한 그림 안에서 제가 역할을 하는 거니까요. 측면에서도 잘해야 하지만, 지금은 팀이 전술적으로 계속 노리고 있는 하프스페이스가 제가 사랑하는 영역이 되고 있습니다. 


- 프로 4년차에 큰 이적료를 기록하고 울산으로 이적하면서 부담감도 있었겠죠. 무엇보다 지난 시즌 MVP급 활약을 펼친 이동준을 대체해야 했습니다.
그 부분이 가장 큰 부담이었죠. 좋은 팀에 가는 건 좋지만, 제 자리에 기존에 대활약을 한 선수가 있었으니까요. '과연 내가 동준이 형이 했던 것처럼 할 수 있을까?'가 울산행을 최종적으로 결정하기 직전까지의 마지막 고민이었어요. 하지만 선수라면 더 높은 레벨의 팀으로 가서 부딪히고 도전해야 하죠. 결과가 어찌 되든 후회 없이 해 보자는 결심을 하고 울산으로 가기로 했어요. 동준이 형만큼은 아니더라도, 비슷하게는 해야 많은 팬들이 저를 응원해주시지 않을까 싶습니다. 



- 본인의 우상인 이청용 선수가 동계훈련 중 진행한 연습경기 때 울산으로 오라고 유혹했다고 들었습니다. 결정적인 요인이 됐나요?
사실이죠. 확실히 울산 이적엔 청용이 형 지분이 있는 것 같아요. 제가 어려서부터 너무 좋아하던 선수인데 직접 와서 함께 하자는 얘기를 들으니 마음이 흔들렸죠. (Q. FC서울도 기성용 선수를 앞세웠다고 들었는데요.) 성용이 형은 에이전트가 같은 회사여서 연락을 주셨어요. 제가 고민이 많은 스타일이라 선택을 못하던 시점인데, 성용이 형이 서울로 오는 걸 고민해 보라고 했거든요. 결과적으로는 청용이 형에게 좀 더 마음이 끌렸네요. 성용이 형에겐 죄송합니다. 


- 팀에 늦게 합류했습니다. 혈이 뚫린다고 해야 할지, 첫 골에 시간이 꽤 걸렸습니다. 더 일찍 득점할 찬스도 있었죠.
심적으로는 안 그러자고 했는데 역시 부담감이 컸어요. 울산이 많은 이적료를 지불하고 저를 데려온 만큼 동준이 형 공백을 메워야 한다는 생각이었고, 그러면 예전보다 모든 면에서 더 잘해야 했죠. 공격적인 움직임 뿐만 아니라 공이 없을 때의 수비적인 부분도 신경써야 했어요. 그러다 보니 찬스에서는 집중력이 조금 떨어졌습니다. 그 시점에 홍명보 감독님이 따로 부르셨어요. 조금 내려놔도 된다. 동료들을 믿고 편하게 하라는 좋은 말씀을 해주셨어요. 그래서 심적으로 여유가 생겼고, 그 뒤부터 공격포인트가 나오기 시작하더라고요. 


- 서울전 첫 골을 시작으로 7경기에서 5골 3도움. 프로에 와서 이렇게 단기간에 폭발적인 공격포인트 올린 적이 있었나요?
제가 하긴 했는데 아직 의아한 부분이긴 합니다.(웃음) 이렇게 빨리 공격포인트를 올릴 줄 몰랐거든요. 주변에 그만큼 좋은 능력을 지닌 동료가 많으니까 그 덕을 보는 게 아닌가 싶어요. 팀과 함께 만들어 가는 성과겠죠. 


- 전술적인 부분에서는 팀 적응이 순조로운데 생활은 어떤가요? 완전히 새로운 도시에서 살아가야 하잖아요.
광주나 울산이나 도시 자체의 느낌은 비슷한 거 같아요. 둘 다 광역시고, 필요한 것들은 다 있으니까요. 다만 성격적으로 소심해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게 어려워요. 친해지는데 시간이 필요하거든요. 지금은 좋아지고 있습니다. 태환이 형이 큰 도움을 주시죠. 아무래도 고등학교 후배니까 정말 신경 많이 써주세요. 울산 처음 왔을 때도 태환이 형이 가장 살갑게 대해줬습니다. 선수들이나 구단 직원 분들에게 "금호고 후배고, 나보다 잘한다. 잘 챙겨달라"고 해주셨거든요. 그 뒤로 울산에서 편하게 지낼 수 있었어요. 청용이 형도 정말 많이 도와주셨어요. 제가 와서 아무 말을 안하니까 계속 저한테 질문을 하시거든요. 많은 형들이 궁금해해요. 왜 원상이는 말이 없냐고. 그러면 청용이 형이 뭐라도 저한테 물어보세요. (※ 이청용은 엄원상이 입단하기로 한 전날에도 프런트에 전화를 걸어와 입단식 사진 촬영 때 무리한 포즈를 부담스럽게 요구하기보다는 자연스럽고 편하게 진행하도록 배려하라는 부탁을 할 정도였다고 한다.)


- 최근 3년 간 성장 속도가 빠른 선수였지만 올 시즌은 울산에서 결이 다른 성장을 하고 있습니다. '엄원상이 이런 것도 할 수 있구나'라는 인식이 생겼달까요. 좁은 공간에서 지공으로 하는 섬세한 플레이도 곧잘 합니다.
저도 그런 부분에서 조금씩 성장한다고 느끼죠. 광주나 각급 대표팀에서도 여러 지도자 분들에게 지적을 받아왔어요. 그런 플레이도 신경 쓰고 완성도를 높여야 한 단계 올라간다고. 올림픽 대표팀 시절에 김학범 감독님도 움직임 부분을 보완해야 한다고 강조하셨어요. 그런 가르침에 늘 감사함을 갖고 있죠. 그런 것들을 생각하면서 훈련하고 플레이를 하니까 경기장에서 나오는 것 같아요. 결국은 울산이라는 팀에 와서 적응하고, 경기에 나서려면 그 부분이 크게 필요했거든요. 제가 그걸 보여주지 못하면 대체할 선수들이 많으니까요. 이번 이적이 제가 성장하는 데 가장 중요한 터닝포인트가 된 것 같습니다.


- 이런 성장세는 당연히 울산에도 좋지만, 벤투 감독의 A대표팀도 주목하고 있을 겁니다. 
당연히 A대표팀에 가는 것도 큰 목표입니다. 제가 소화하는 포지션에는 워낙 많은 경쟁자들이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요. 다시 벤투 감독님이 뽑아주시면 가서 열심히 해야죠. 


- 홍명보 감독 얘기로는 하루 종일 옆에서 봐도 원상이 목소리 한번 듣기가 힘들다고 하더라고요. 지금 울산에서 제일 소중한 게 엄원상이 긴 시간 말하는 거라고 하더라고요.
제가 숫기가 적어요. 감독님도 저를 보시면 가까이 불러서 잘 지내고 있냐, 힘든 건 없냐고 물어보시는데 그냥 잘 지낸다고 말씀드리고 끝이거든요. 그런데 실제로 저는 울산에서 큰 어려움 없이 잘 지내고 있어요.(웃음) 그냥 성격이에요. 원래 조용한 편이고, 경기 외적으로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보다는 혼자 있으면서 여러 생각을 하는 걸 좋아해요.


- 그런데 또 축구 생각밖에 없는 순수한 청년 같다는 칭찬도 하더라고요. 
울산에 오면서 더 축구에 집중하고 있어요. 팀의 목표가 확고하잖아요. 리그 우승을 위해 저도 이 팀에 합류했고요. 우승을 하고 싶어서 더 그런 것 같아요. (Q. 그런 순수한 부분 때문에 과거에 이강인 선수가 '매형도르'로 뽑은 것 아닐까요?) 아 그때는 저 말고 모든 선수들이 다 인성적으로 착하고 모자람이 없었는데, 왜 갑자기 강인이가 저랑 세진이(현 전진우)를 언급했는지는 모르겠어요. 그때 둘이 옆자리에 나란히 앉아서 그랬던 거 같아요. 안 그래도 최근에 강인이가 연락이 와서 친누나가 골때녀에 출연하니까 꼭 본방 사수 하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봤는데 정말 잘하시더라고요. 강인이한테 공을 나보다 더 잘 차는 거 같다고 하니까 강인이가 자기가 가르쳐서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 양팔을 벌리는 엄원상만의 시그니쳐 셀레브레이션을 이적 후에도 계속 하고 있네요. 
사실 아무 의미는 없어요. 제가 어렸을 때부터 셀레브레이션을 잘 안했거든요. 주변에서 뭐라도 하라고 해서, 그런 동작이 나왔고 계속 밀고 나가고 있죠. 아직 골 넣고 팬들 앞에 가서 뭘 못했던 것 같아요. 부끄러움이 많은 편이다 보니. 다음에 홈에서 골을 넣으면 팬들 앞에서 제 셀레브레이션을 해 보겠습니다. 


- AFC 챔피언스리그라는 도전을 너무 일찍 마감했기에, 이젠 리그에 올인해야 합니다. 아쉬움을 정리할 새도 없었을 것 같아요.
챔피언스리그를 처음 겪었는데, 체력적인 부분이나 환경 적응 면에서 예상 이상으로 어려움이 컸어요. 경기 일정도 너무 빡빡했고요. 저희에겐 이미 끝난 대회고, 곧바로 리그를 시작했으니까 감독님이 말레이시아에서의 일은 거기서 다 잊고 한국에서 새로 출발하자고 하셨어요. 팬 분들의 아쉬움은 잘 알지만 아직 중요한 목표가 남아 있으니까 그것만은 꼭 이루고 싶습니다. 


사진=울산현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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