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는 여가부 장관의 작심 비판 "폐지 이유·문제점·대안 제시해야"

이임사에서 여가부 폐지 공약에 일침
인수위 출범·국정과제 여가부 패싱 지적
젠더갈등 조장했다는 주장에도 반박

정영애 여성가족부 장관이 11일 정부서울청사 여성가족부 장관 집무실에서 아시아경제와 인터뷰하고 있다. /문호남 기자 munonam@

정영애 여성가족부 장관은 "지난 20년간 유지된 정부 부처의 폐지를 주장하려면 그 이유나 문제점, 한계, 대안이라도 제시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 장관은 9일 발표한 이임사에서 여가부 폐지를 공약으로 내세운 윤석열 정부에 작심하고 쓴소리를 남겼다 정 장관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활동 기간 내내 여가부 업무에 대한 보고나 의견을 제시할 기회는 극도로 제한적이었다"며 "국정과제에서도 여가부 단독 주관부처인 과제는 하나도 없고 성평등 정책 총괄부서로서의 업무는 실종되고, 여성권익업무는 법무부가 주관부처, 여성고용 관련 업무는 노동부, 청소년업무는 요보호청소년 업무만 부분적으로 남아 있다"고 지적했다.

정 장관은 "여가부가 부족하거나 잘못 대응한 일도 있지만 바로잡기 위해 최선을 다해왔다"면서 "그러한 부족함이 여가부를 폐지하거나 역사적 소명을 다했다고 주장하기에는 적절하지도, 충분하지도 않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정 장관은 여가부가 남아 풀어야할 숙제로 ▲일·가족 양립의 어려움▲M자형 여성경제활동 참가율 ▲성별임금격차 ▲낮은 고위직 여성 비율 ▲성폭력 위험 ▲세계 최저 출산율 등을 꼽았다.

정 장관은 여가부가 젠더갈등을 유발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젠더 갈등’이라는 이슈는 원인 진단이 잘못된, 정치적으로 확산된 것이며 구조적 차이를 무시한 불편한 용어"라고 했다. 청년들이 제기하는 주거·일자리·징병제·군대 내 처우 문제의 경우 "젠더 이슈로 수렴될 수도, 해결될 수도 없다"는 것이다. 그는 "잘못된 현실 인식과 엉뚱한 가상의 적에 대응하느라 실재하는 위기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올바른 방향으로 길을 제시해 주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 장관은 여성학 박사 1호 출신으로 40년 간 여성학 연구·여성운동을 해왔으며 2010년 12월 29일 취임해 496일간의 임기를 마쳤다.

여가부 폐지와 정부 조직개편을 둘러싼 논란은 지속되고 있다. 김현숙 여가부 장관 후보자는 국회 여성가족위원회에 서면질의 답변으로 "여가부 폐지 공약에 동의한다"며 "장관에 임명되면 부처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여가부를 폐지하고 청소년·가족 업무를 보건복지부로 이관하는 내용의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지난 8일 ‘여가부 폐지 반대’ 국회 국민동의청원이 5만명의 동의를 얻어 소관 상임위원회의 심사를 받게 됐다.

한진주 기자 truepearl@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