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 5월, 해남에서도 군인들의 총격 있었다
[이돈삼 기자]
▲ 5.18민주화운동을 상징하는 조형물 '무장항쟁군상'. 국립5.18민주묘지에 세워져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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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민주화운동은 대한민국을 지금의 민주주의 국가로 만든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부당한 국가 권력과 신군부의 집권 음모에 맞선 광주와 전남 지역주민들의 빛나는 투쟁이었다.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도 5․18을 비롯한 수많은 민주화운동이 어우러진 결과다. 우리가 5․18민주화운동을 잊지 않고 기억해야 하는 이유다. 그래야만, 국민이 주인 되는 민주주의도 계속될 수 있다.
5․18민주화운동은 80년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10일 동안 죽음을 무릅쓰고 항거한 반독재 민주화 투쟁을 가리킨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꿈꾸고 외쳤던 많은 광주시민들이 신군부의 총칼에 희생됐다. 광주와 함께 전남 서남부 지역에서도 항쟁이 펼쳐졌다. 항쟁은 5월 21일 오후 전남도청 앞 집단 발포를 기점으로 본격화됐다.
▲ 해남 우슬재 정상에 세워져 있는 5.18전남사적지 표지석. 우슬재는 80년 5월 향토사단의 총격에 의해 민간인이 희생된 곳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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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마실을 겸해 해남의 5.18사적지를 찾아간다. 해남에서는 우슬재, 해남군청 광장, 해남중학교, 상등리 국도변, 대흥사 옛 여관터 등 5곳이 5․18전남 사적지로 지정돼 있다. 해남군이 관리하는 사적지까지 합하면 모두 9곳에 이른다.
우슬재는 해남의 관문이다. 산길이 험해 소도 넘어가다가 절로 무릎을 꿇는다는 고개다. 향토사단인 31사단 93연대 2대대가 우슬재 정상에 방어막을 치고 병력을 배치했다. 5월 23일 아침 군인들이, 우슬재를 넘어 읍내로 가려던 트럭에 총을 쏴 여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 해남 상등리 국도변에 세워져 있는 5.18전남사적지 표지석. 80년 5월, 향토사단 소속 군인들의 총격에 의해 민간인이 희생된 곳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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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군부대로 끌려간 시위대에 따르면, 우슬재에서의 총격으로 두세 명의 사망자가 더 있었고, 상등리에서도 다수의 사상자가 나왔다고 증언하고 있다. 해남군청 복지과 직원도, 이 기간 군부대의 연락을 받고 시신 3구를 염했다고 한다.
▲ 해남군청 광장. 80년 5월엔 해남교육청 앞 광장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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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남군청 광장에 세워진 5.18전남사적지 표지석. 80년 5월 수천 명의 군민이 모여 광주학살을 규탄했던 곳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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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1일 광주의 시위대가 해남읍에 도착했다. 해남군청, 당시엔 해남교육청 앞 광장이었다. 한 여학생이 광주의 급박한 상황을 알리며 군민 궐기를 호소했다. 해남군민들이 적극 호응하며 순식간에 수천 명이 광장에 모였다.
군민과 결합한 시위대는 계엄군의 광주학살을 규탄하는 집회를 하고 시가행진을 벌였다. 해남고등학생 수십 명도 시위에 동참했다. 4월 초파일을 맞아 대흥사에서 바자를 하고 있던 해남JC 회원들도 참여했다.
해남에서도 시위대의 무기 탈취가 있었다. 버스에 탄 시위대가 해남경찰서와 완도경찰서에서 M1과 칼빈 소총을 획득했다. 해남읍 백야리에 있는 향토사단에도 시위대가 찾아가 총기를 내어 줄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부대장한테 거절당했다. 관내 지서에서도 시위대의 총기 획득 시도가 이어졌다.
▲ 해남중학교에 세워진 5.18사적지 표지석과 세종대왕 동상. 해남중학교는 80년 5월 주민들이 시위대에 김밥과 음료 등을 제공하고, 시위대가 무기를 반납한 곳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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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남읍교회와 5.18사적지 표지석. 80년 5월 교회 여신도들이 시위대에 김밥과 음료를 제공했던 곳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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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에서처럼 해남의 시위대도 주민들의 환대를 받았다. 가는 곳마다 주민들이 환영하고 격려했다. 시위 차량과 시위대가 모인 해남중학교에서는 주민들이 시위대에 식사와 음료를 제공했다. 해남읍교회에서도 여신도들이 주먹밥과 김밥을 만들어 내놓았다.
▲ 대흥사 입구, 옛 집단시설지구에 세워져 있는 5.18전남사적지 표지석. 80년 5월 시위대가 숙식을 해결했던 곳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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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광주여 무등산이여/ 죽음과 죽음 사이에/ 피눈물을 흘리는/ 우리들의 영원한 청춘의 도시여// 우리들의 아버지는 어디로 갔나/ 우리들의 어머니는 어디서 쓰러졌나/ 우리들의 아들은/ 어디에서 죽어 어디에 파묻혔나/ 우리들의 귀여운 딸은/ 또 어디에서 입을 벌린 채 누워있나/ 우리들의 혼백은 또 어디에서/ 찢어져 산산이 조각나 버렸나….'
광주를 '십자가를 짊어지고 골고다 언덕을 다시 넘어오는' 예수에 비유하면서 '죽음으로써 죽음을 물리치고 죽음으로써 삶을 찾으려 했던 불사조'라고 노래했던 김준태 시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의 앞부분이다.
▲ '혁명시인'으로 불리는 김남주 시인의 생가. 해남군 삼산면 봉학리에 자리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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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태 시인의 고향이 해남이다. 해남은 또 혁명시인으로 불꽃처럼 살다 간 김남주, 여성운동가이면서 시인으로 살다 요절한 고정희의 태자리이기도 하다. 시인들의 생가를 찾아보는 것도 해남여행의 의미를 더해 준다.
초록이 짙어가는 대흥사의 십리숲길도 아름답다. 매표소에서 절집까지 4㎞가 숲터널을 이뤄 환상경을 연출한다. 수령 500년 된 느티나무 두 그루의 뿌리가 만나 하나가 된 연리근도 절집에서 만난다. 산정에 누워있는 비로자나불도 풍경을 압도한다.
▲ 대흥사로 가는 숲길. 초록이 점점 짙어지면서 숲길이 환상경을 연출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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