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후남의 영화몽상] '보이지 않는 것'과 영화
“문학이라는 것은 문자로 되어 있지만, 문자로 끝난 게 아니라 그걸 읽는 독자의 상상력과 함께 완성되는 것이죠. 반대로 영화는 눈에 보여주니까, 보여주는 것 이외의 것이 있다는 것을 잊어버리기 쉽게 되어 있습니다.”
이창동 감독이 이번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심장소리’를 선보인 직후 관객들 앞에서 한 말이다. 그의 첫 단편이기도 한 이 신작은 주인공인 초등학생 철이(김건우)가 우울증을 앓는 엄마(전도연) 걱정에 수업 도중 교실을 빠져나와 집으로 달려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 영화 전체가 마치 한 테이크로 찍은 것처럼 커트 없이 이어진다. 덩달아 관객도 함께 달리는 듯 철이의 긴장과 불안을 맛보며 그 여정을 응원하게 된다.
감독은 이런 촬영 기법을 비롯해 제작 과정의 이모저모를 전혀 비밀이 아니라는 듯 스스럼없이 들려줬다. 감독과 문답을 진행한 평론가 이동진은 ‘이창동: 보이지 않는 것의 진실’에 대해서도 질문했다. 이번 영화제에서 감독의 기존 장편들과 그에 대한 프랑스 감독의 다큐를 선보인 특별전 제목이다. 글머리에 인용한 감독의 말은 이렇게 이어졌다. “우리 삶에서 보이지 않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경우가 많은데 영화는 보여주는 매체이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것을 망각하게 할 수도 있고, 보이지 않는 것을 더 많이 환기시키면서 그것에 대한 생각을 하도록 할 수도 있는 것이죠. 저는 영화가 후자를 하는 매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인상적인 이야기가 한 시간 넘게 이어지는 동안 객석은 젊은 관객들로 빼곡했다. 관객이 직접 질문하는 순서가 되자 곳곳에서 동시에 번쩍번쩍 손이 올라간다. 팬데믹 이전에는 당연하게 여겼던 영화제의 풍경, 하지만 팬데믹 이후 과연 다시 볼 수 있을까 싶었던 장면이다. 지난해 전주영화제는 객석의 3분의 1만 활용해서, 그 전해에는 아예 무관객으로 주요 행사를 열었다. 해외 게스트는커녕 국내 게스트 행사도 대개 온라인으로 진행됐다.
올해는 확연히 달랐다. ‘큐어’(1997) 상영 때는 일본에서 날아온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과 특별프로그래머로 이 영화를 상영작에 선정한 연상호 감독이 함께 관객들 앞에 나섰다. 열혈 팬을 자처하는 연 감독의 질문, 명성이 자자한 이 영화를 처음 본 관객들의 질문이 자연스레 뒤섞였다. 이창동 감독의 말을 즉물적으로 변주하면, 어쩌면 영화도 관객이 있기에 완성되는 게 아닐까 싶다. 영화 안에서는 그 존재가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지만 말이다.
그러고 보니 배우 강수연을 스크린 밖에서 처음 본 것도 몇 년 전 부산국제영화제에서였다. 돌아보면 그가 집행위원장을 맡은 것은 역사와 명성을 자랑하는 이 영화제가 유독 힘든 시기였다. 영화제를 보러 부산에 갈 때면 스크린에 남긴 눈부신 자취와 함께 그의 스크린 밖 분투 역시 새록새록 떠오를 것 같다.
이후남 문화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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