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르보이스] 거리에서 더 많은 휠체어를 볼 수 있다면

이마루 2022. 5. 9.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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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속 할아버지는 버스를 탄 적도, 지하철을 이용한 적도 없다.
ⓒUnsplash

할아버지의 지팡이

할아버지와 함께 우리 집에 도착한 것은 할아버지의 지팡이였다. 내가 일곱 살 때였다. 젊은 시절 서울 유학도 하고, 고향에 돌아가 사업에 성공하고 커다란 정원과 동산이 딸린 집을 갖기도 했던 할아버지였지만, 그즈음 모든 재산을 잃고 병으로 한쪽 팔과 다리를 제대로 쓸 수 없었다. 짙은 갈색의 울퉁불퉁한 명아주나무 지팡이는 그 후 10년 가까이 우리 집 현관 한쪽에 있었다. 나는 아직도 거리에서 지팡이를 짚은 노인을 보면 할아버지를 떠올린다.

지팡이 없이는 집 밖으로 나갈 수 없었던 할아버지는 아주 느리게 걸었다. 마비되지 않은 한쪽 팔로 지팡이를 쥐고 한 걸음 앞의 지점을 쿵 찍어 누르면서 발을 옮긴 다음, 불편한 다른 쪽 다리를 힘겹게 끌어 두 다리를 나란히 놓았다. 그리고 다시 처음부터 그 과정을 반복해 또 한 걸음 나아갔다. 할아버지가 걸어서 외출할 수 있는 최장 거리는 아파트 단지 입구였다. 그보다 더 멀리 가려면 아버지 차를 타야 했다.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을 때 나는 온갖 문제에 휩싸여 있던 열일곱 살이었다. 언젠가 부러져 사라진 지팡이처럼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도 금세 희미해졌다.

할아버지를 다시 떠올리게 된 것은 오랜 시간이 지난 뒤다. 몇 년 전부터 나는 서울의 한 영구 임대아파트 근처에 살고 있다. 오래된 아파트 단지는 어디나 비슷비슷해 보이지만, 어디에나 휠체어 탄 장애인이 있다는 게 우리 동네의 조금 다른 풍경이다. 요즘처럼 볕이 좋을 때는 놀이터나 상가 앞 공터에서 휠체어에 탄 아저씨들의 친목 모임이 거의 매일 열린다. 과일과 채소로 불룩한 장바구니를 전동 휠체어에 싣고 달려가는 아주머니도 있고, 휠체어에 앉은 채 길에 놓인 바둑판 앞에서 승부수를 띄우는 노인도 있다.

할아버지는 장애인이었을까? 내가 장애인 인권에 관해 고민하기 시작한 것은 내 일상에서 많은 장애인과 마주하게 되면서부터다. 할아버지와 함께 사는 동안 우리 가족은 할아버지의 불편한 손과 발을 대신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했지만, 그것을 당연히 가족 안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로 여겼을 뿐 사회와 공유할 수 있는 문제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우리가 집 밖에서 장애인을 위한 시설물을 이용한 것은 단 한 번이었는데, 에버랜드가 ‘자연농원’이라 불리던 시절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온 가족이 놀러 가 휠체어를 대여했을 때였다.

내 기억 속 할아버지는 버스를 탄 적도, 지하철을 이용한 적도 없다. 한 걸음을 떼는 데 몇 초가 걸리는 몸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할아버지가 대중교통을 이용한 것은 반년에 한 번, 기차를 타고 고향의 대학병원에 검진받으러 다녀올 때뿐이었다. 한 손에 무거운 짐가방을 든 할머니가 다른 한 손으로는 체격이 큰 할아버지를 부축하고 기차역 계단을 오르내리느라 진땀 뺐다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가족들은 속상해 했지만, 친절한 행인이 내미는 도움의 손길 외에는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었다. 느리고 약한 사람에게 맞도록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가능성을 상상하기 어렵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몇 년 뒤, 어떤 사람들은 세상을 움직이는 싸움을 시작했다. 올해로 21년째 이어지고 있는 장애인 이동권 투쟁에 관해 알게 되면서부터 나는 할아버지를 떠올릴 때마다 집 밖, 동네 밖으로 나설 방법이 없어 교육받고 일할 기회를 차단당한 장애인들의 삶을 생각한다. 휠체어 리프트를 이용하다 추락하고, 안전문이 없어 지하철 선로에 떨어졌던 장애인들의 죽음을 생각한다. 지하철역 엘리베이터 설치와 저상버스 도입 등 모든 교통 약자를 위한 변화가 장애인들의 피와 땀으로 이뤄졌음을 잊지 않으려 한다. 여전히 장애인의 지하철 타기가 ‘투쟁’일 수밖에 없는 세상에서 “그렇다고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되지”라며 손가락질하는 비장애인이 아니라, 그 당연한 권리를 찾도록 연대하는 동료 시민이 되고 싶다. 그래서 버스와 지하철, 학교, 영화관, 놀이공원, 거리에서 더 많은 휠체어를 보고 싶다.

최지은 10년 넘게 대중문화 웹 매거진에서 일했다. 〈괜찮지 않습니다〉 〈엄마는 되지 않기로 했습니다〉 〈이런 얘기 하지 말까〉를 펴냈다. 늘 행복하지는 않지만 대체로 재미있게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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