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르보이스] 어쩔 수 없다고 하는 것을 멈추기

이마루 2022. 5. 9. 15:43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식물을 돌보는 마음으로, 조금 더 관심을 갖고 공부하기.
ⓒGetty Images/iStockphoto

‘어쩔 수 없다’고 하지 않기

코로나19와 동거한 지 어느덧 3년 차,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 화분 가게를 그냥 못 지나친다. 이 화분은 얼마인지, 저 꽃은 통상 개화 기간이 얼마나 되는지 물어보다가 “카랑코에는 꽃대를 잘라주라던데, 대체 어떻게 자르는 건가요?” 따위의 개인적인 궁금증을 쏟아내고, 그냥 나오기 죄송해서 때로는 프리지아 한 다발, 때로는 작은 화분 하나를 계산하고 나온다. 야금야금 모은 크고 작은 식물 화분이 어느덧 16개, 이른바 식집사(반려식물을 키우는 사람을 일컫는 말)가 됐다.

사실 인테리어 용도로 식물 화분 두어 개를 거실에 둔 지는 오래됐다. 그냥 주말마다 물 주면 알아서 살겠거니, 방관자의 마음이었다. 그러다 여럿 죽었다. 벤저민, 율마, 알로카시아…. 어느 순간 잎이 우수수 떨어지거나 갈색으로 변하면 그 다음부턴 속수무책이었다. “비싸지도 않은데 또 사면 되지 뭐!” 이렇게 심드렁하게 말하자 엄마는 등짝을 때렸다. “식물도 생명이야. 자꾸 죽이면 벌받아.” 그러곤 이파리를 거의 다 떨군 채 몇 주 동안 앙상하게 서 있던 벵골고무나무를 데려갔다.

얼마 지났을까, 엄마 집에 갔더니 엄마가 뿌듯한 얼굴로 내 손을 잡고 베란다로 이끌었다. “여봐라, 네가 버린다던 이거 새 잎 나왔잖아.” 화분 흙부터 갈아주고 뭘 어떻게 했다던가. 일단 분갈이라는 작업 자체부터 나에겐 너무 멀게 느껴지는 이야기라서 뒤엣말은 흘려들으면서 대충 감탄의 박수만 쳤다. 하지만 마법같이 식물을 살려내는 모습을 지켜본 경험은 이후 ‘식집사’의 길로 들어서는 큰 계기가 됐다. 일단 공부를 하게 됐다. 식물마다 각기 다른 물 주기 간격이나 일조량을 맞추는 것은 기본이다. 수국같이 물과 햇빛을 좋아하는 아이들은 반드시 볕 잘 드는 창가에서 거의 매일 물을 줘야 한다. 그 다음으로 중요한 건 통풍과 공중습도. 하루에 한 번씩이라도 창문을 열어주고 실링 팬을 돌려 인공바람이라도 쐬게 해준다. 고무나무나 야자나무 같은 아이들은 흙은 건조하게, 공중습도는 높게 관리하는 게 좋다고 해서 수시로 분무기도 뿌린다.

이런 게 다 귀찮은 사람에게 추천하는 식물은 세 종류를 꼽을 수 있겠다. 우선 스파티필룸. 물이 부족하면 눈에 띄게 생기를 잃고 풀이 죽는다. 마치 ‘나 목말라’라고 말하는 것처럼 모습이 달라져 있는데, 물을 주면 한두 시간 만에 언제 그랬냐는 듯 쌩쌩해진다. 다음은 몬스테라. 괴물처럼 잘 자라서 붙은 이름이라더니 정말 금방금방 새순을 내고 무럭무럭 자란다. 큼직한 잎이 매력적인 여인초도 초보 집사에게는 효자다. 때로 특정 이파리만 너무 크고 높게 자라곤 해서 전체 균형을 해친다. 그러면 과감하게 잎을 잘라줘야 한다.

그렇다. 아무리 순둥한 식물이라도 가지치기는 중요하다. 이미 누렇게 갈라졌거나, 찢어졌거나, 병충해 공격을 받은 잎과 줄기는 미련 없이 제거해야 한다. 오렌지재스민 화분 근처 바닥이 자꾸 끈적해져서 음료를 엎질렀나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깍지벌레’의 습격을 받은 거였다. 이렇게까지 잘라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쳐내고 살충제를 뿌려줬더니 이내 보송한 연둣빛 새순을 냈다. 내 기준에는 극악의 난이도지만 제일 중요한 것이 분갈이다. 몬스테라가 어느 순간 성장이 눈에 띄게 늦어지고 시들해져서 좀 더 큰 화분에 옮겨주었더니 금세 쌩쌩해졌다. 통상 초보 식집사들이 자주 하는 실수가 바로 뿌리 문제라고 한다. 물을 너무 많이 또는 조금 줘서 이미 뿌리가 상해버리면 제대로 물을 흡수하지 못하는데, 이때 시들시들해 보인다고 물을 왕창 주었다간 그나마 살아 있던 뿌리까지 과습으로 죽는다는 거다. 식물이 크는 만큼 더 넓은 화분으로 옮겨줄 필요성에 더해 뿌리가 괜찮은지 살펴보기 위해서라도 정기적인 분갈이는 필요하다.

지난해 이맘때에 비해 이파리가 두 배쯤 풍성해진 떡갈고무나무 옆에서 이 글을 쓴다. 아득한 미지의 세계였던 식물 키우기와 마찬가지로 앞으로는 ‘내 힘으로 뭘 어쩌겠어’라는 편리한 말 뒤에 숨지 않기로 한다. 조금 더 관심 갖고, 공부하고, 귀찮음을 무릅쓰기로 한다. 부지런을 떠는 만큼 미약하나마 세계는 달라진다. 그러니까 부당하다거나 바꾸고 싶은 생각이 든다면 체념하거나 참지 말고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자. 지난 대선 레이스를 거치며 정치 혐오 또는 냉소에 빠졌다는 사람을 많이 본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것이 어느 쪽이 됐든 호불호를 보여줄 기회는 다가온다. 당장 6월 1일 지방선거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으니까.

심수미제48회 한국기자상 대상과 제14회 올해의 여기자상을 수상한 JTBC 기자. 30여 년간 인권의 사각지대를 취재한 수 로이드 로버츠의 〈여자 전쟁〉을 번역했다.

Copyright © 엘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