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포럼]스탬프 투어

세종=이준형 2022. 5. 9.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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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공주박물관에서 가방을 선물 받았다.

충청권 37개 박물관과 미술관의 방문 스탬프 열 개를 찍으면 주어지는 기념품이었다.

지금은 명품 몇 개를 장롱 속에 모셔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소중해지는 보물들은 정성 들여 완성한 추억의 스탬프 북들이다.

이번 스탬프 북은 30개가 넘는 곳을 급하게 다니느라 수리박물관을 숫자와 연관 지어 상상했거나 '필경사' 나 '고불 맹사성기념관'도 선입견을 가진 탓에 불교 관련된 장소인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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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연 미래에셋증권 갤러리아WM 상무. [사진 = 아시아경제DB]

얼마 전 공주박물관에서 가방을 선물 받았다. 충청권 37개 박물관과 미술관의 방문 스탬프 열 개를 찍으면 주어지는 기념품이었다. 몇 개만 더 찍으면 완성되는 이 작은 스탬프 북은 이제 나의 소중한 보물이다.

어린 시절 스탬프 북의 빈 공간이 하나씩 채워질 때마다 성취하는 기쁨을 느꼈다. 여유롭지 못한 집안 사정 때문에 화려한 학용품과 장난감을 가질 수는 없어도 부지런하기만 하면 성취할 수 있는 것이 스탬프였다. 주어진 일을 꼭 달성하려는 나의 성취욕은 이때 형성된 듯하다.

직장 생활 초기 해외에 가면 선배들이 명품을 사고 다니는 사이 나는 그 기쁨을 스탬프 투어 도장을 차곡차곡 찍는 기쁨으로 대체해야 했었다. 지금은 명품 몇 개를 장롱 속에 모셔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소중해지는 보물들은 정성 들여 완성한 추억의 스탬프 북들이다.

국내 스탬프 여행의 시작은 아마 제주 올레길이나 4대강 자전거 길이었다. 힘든 여정 속에서 스탬프 도장을 찍을 때마다 성취감이 몰려왔다. 어렸을 때 느낀 그 감정 그대로였다.

어떤 곳은 스탬프 잉크가 말라 아무리 입김을 불어서 찍어도 나오지 않아 잉크까지 준비하며 다녔다. 스탬프 도장을 훔쳐 간 곳도 있어 허탈한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지금은 고정식 스탬프에 마르지 않는 잉크로 보완이 됐다. QR코드가 있어 지정 장소에 도착하면 스마트폰에 자동으로 스탬프가 찍히는 시스템도 있었다. 서산 마애삼존불 스탬프는 흑백사진처럼 스탬프가 잘 나와서 깜짝 놀랐다.

이번 스탬프 북은 30개가 넘는 곳을 급하게 다니느라 수리박물관을 숫자와 연관 지어 상상했거나 ‘필경사’ 나 ‘고불 맹사성기념관’도 선입견을 가진 탓에 불교 관련된 장소인 줄 알았다. ‘석오이, 동녕기념관’으로 띄어 읽어 오이 관련 박물관으로 생각하고 방문했다가 머리에 철퇴를 맞은 기분이 들었다. 근처 어딘가에서 마을 특산품인 오이 모형을 보고 지레짐작했던 탓이다. 독립운동가이신 이동녕 선생 생가지에서 시간을 두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너무 급하게 살아온 나날들을 반성하고 이곳 뒷산과 앞 개울에서 뛰어놀던 선생의 큰 생각을 뒤쫓아 보았다.

박물관 내부에 아이들 교육을 위해 만들어 놓은 것들이 어떻게 보면 유치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는데, 그때는 오래된 나무에 기대 근처 산세를 보면 영험한 기운들이 서려있다는 것을 느낀다. 맹사성고택이 그랬고 합덕수리박물관 옆 성당도 그랬다.

목적지를 향해 고속도로에서 질주하며 분풀이하듯 휴일 일정을 보내는 대신 쉬엄쉬엄 지방도로를 통해 여기저기 흩어진 선조들의 지혜의 흔적을 찾아 모아보는 것은 어떨까. "어리석은 자는 방황하고, 지혜로운 자는 여행한다"고 하는 이유는 좋은 여행이 지혜를 선물하기 때문이다.

닳을까 아껴 놓았던 명품 가방을 꺼내어 마구 들고 다닌다. 나에게 명품은 나를 만들어준 스탬프 북이고 내가 바라는 삶은 "참 잘했어요" 스탬프를 마지막에 스스로 찍는 것이다.

서재연 미래에셋증권 갤러리아WM 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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