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비비]꼼수앞에서 무용지물된 국회선진화법

최일권 2022. 5. 9.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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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싸움 방지를 위해 국회가 도입한 이른바 '국회선진화법'이 제 역할을 했다고 호평 받은 때는 2014년 12월이었다.

다음해인 2015년 375조원 규모의 예산안을 큰 잡음 없이 국회가 법정시한내 처리하자 "12년만에 처음"이라며 "국회선진화법이 제 몫을 했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쏟아졌다.

국회선진화법이 제 몫을 한 것은 부칙에 따라 그 해부터 예산안 자동부의 조항이 적용된 영향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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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싸움 방지를 위해 국회가 도입한 이른바 ‘국회선진화법’이 제 역할을 했다고 호평 받은 때는 2014년 12월이었다. 다음해인 2015년 375조원 규모의 예산안을 큰 잡음 없이 국회가 법정시한내 처리하자 "12년만에 처음"이라며 "국회선진화법이 제 몫을 했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쏟아졌다.

국회선진화법이 제 몫을 한 것은 부칙에 따라 그 해부터 예산안 자동부의 조항이 적용된 영향이 컸다. 국회법 85조에 따르면 11월30일까지 여야가 예산안 심사를 마치지 못하면 다음날인 12월1일 정부 예산안과 예산부수법안이 국회 본회의에 자동부의된다. 우리 헌법에는 ‘국회는 회계연도 개시 30일 전까지 이를 의결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역산하면 매년 12월2일까지 본회의를 열어 예산안을 처리해야 하는 셈인데, 법정기한을 준수한 적이 없으니 국회법에 처리를 강제할 수 있는 규정을 아예 못박은 것이다.

국회선진화법은 국회내 몸싸움을 막기 위한 여야의 필요에 의해 탄생했다. 2010년 4대강 관련 법안과 새해 예산안이 날치기 처리된 직후 여야 의원 간 주먹다짐으로 유혈사태가 빚어진 게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이후 논의를 거쳐 2012년 5월 19대 국회 임기 시작과 함께 시행됐다.

선진화법의 핵심은 소수당의 입법권을 보호하기 위해 여러 장치를 마련한 점이다. 안건 상정부터 다수당의 법안 날치기 통과를 막기 위해 법안 처리 요건을 까다롭게 만들었다. 재적위원 3분의1이 찬성하면 여야 동수로 상임위에 안건조정위원회를 둘 수 있고 쟁점 법안은 재적위원 5분의 3 이상이 동의해야 신속처리법안으로 상정할 수 있도록 했다. 국회의장의 직권상정 권한을 천재지변, 전시 등으로 제한했으며 본회의에서 무제한 토론도 도입했다.

그 결과 법안 처리기간은 다소 늘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2015년 발표한 ‘2012년 국회법 개정효과 연구’ 보고서에서 19대 국회의 법안처리 가능성이 18대 국회와 비교해 약 11% 감소했다고 평가했다. 특히 안건조정위 도입으로 법안 날치기 처리 가능성이 줄었다는 견해를 내놨다. KDI는 보고서에서 "야당위원들이 사실상 여당소속 상임위원장의 게이트키핑권력을 행사해 여야 간 상임위원장 배분 의미가 없어진다"면서 "모든 상임위원장을 야당이 맡는 것과 동일한 효과가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최근 더불어민주당의 검수완박(검찰수사권 완전박탈) 관련 법안 처리 과정을 지켜보면서 이런 평가는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됐다.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소위에서 법안이 강행 통과된 직후 소집된 안건조정위는 여당 상임위원장 주도 하에 여당 성향의 무소속 위원이 포함되면서 요식행위로 전락했다. 이 과정에서 선진화법 도입의 결정적인 계기가 됐던 몸싸움도 벌어졌다. 본회의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 역시 회기쪼개기 수법에 별다른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국회선진화법 발효는 이달로 꼬박 10년이 됐다. "동물국회 대신 식물국회가 등장하는 것"이라고 당시 강한 우려를 나타냈던 국회의원들은 지금 상황을 어떻게 평가할까. 의석수가 재적의 과반을 넘어 5분의3에 육박하는 거대정당 출현을 선진화법을 만들 당시엔 상상이나 했을까.

동물국회는 재현됐고 안건에 대한 충분한 논의 역시 사라졌다. 거대정당이 원하는 입법목적을 관철하는데 있어 게이트키핑 역할을 못한다. 정치에 꼼수가 판친다면 아무리 법을 선진화해도 무용지물일 것이다.

최일권 기자 igcho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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