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사니] 서로 눈치 보는 사이

이용상 2022. 5. 9. 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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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상 산업부 기자


결혼생활 9개월 차에 접어든 남자 이야기다. 결혼 후 남자는 작은 혼란에 빠졌다. 본인이 꽤 깔끔한 편에 속한다고 생각했다. 그게 착각이었단 사실을 깨닫는 데는 한 달이 채 안 걸렸다. 다들 수건을 욕실 수건걸이에 걸어놓고 마르면 또 쓰고, 마르면 또 쓰고 하는 줄 알았다. 지금은 한두 번 쓰면 빨래통에 넣는다. 빨래가 끝난 옷가지를 건조대에 그냥 너느냐, 옷걸이에 걸어서 너느냐? 볼일을 본 뒤 변기 뚜껑을 열어두느냐, 닫아두느냐? 자고 일어나면 이불을 개어 놓느냐, 펼쳐 놓느냐? 등등.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일상엔 다양한 방식이 존재했다. 사소한 차이에도 신경이 쓰였다. 결혼 전 남자는 10년, 아내는 12년 자취생활을 했는데 그동안 쌓인 각자 삶의 방식이 쉽게 바뀔 리 없다는 건 어찌 보면 당연했다.

대책이 필요했다.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 이미 같은 고충을 겪었을 것 같은 ‘결혼 선배’들에게 문의했다. “결혼생활이 원래 이런 거예요?” “응, 원래 그렇지. 대부분 결혼이 처음이잖아. 누군가와 함께 사는 게 서툴러서 그래.”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나요? 지금은 괜찮으세요?”

결혼은 기본적으로 크고 작은 갈등을 수반한다. 마냥 행복하기만 한 건 드문 경우다. 서로 다른 삶의 방식을 극복한다는 게 가능한 건지 의문이지만 그래도 남자가 만난 결혼 선배들은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이 뭔지 알고 있었다. 그들은 한목소리로 말했다. “결국 모든 문제는 커뮤니케이션에서 시작하더라고.”

남자는 문득 결혼식을 준비하던 때를 떠올렸다. 한창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던 시기였다. 양가 친척을 합쳐 49명까지만 초청할 수 있었기 때문에 둘의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해 줄 것 같은 하객을 신중하게 골랐다. 혼인서약서를 쓰는 데만 일주일이 걸렸다고 한다. 49명의 엄선된 하객과 아내에게 지키지 못할 약속은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혼인서약서에는 뭐라고 썼는데?” “오래돼서 기억이 안 나.” 남자는 당시 혼인서약서를 찾아봤다. 4가지 약속 중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서로의 말에 귀 기울이는 다정한 사람이 되겠습니다.’ 결혼식 전날엔 밤잠을 설쳤다고 한다. 설렘과 부담감, 둘 중 더 컸던 건 부담감이다. 결혼식이 끝나면 그 뒤로는 미혼 때처럼 내 멋대로 살 수는 없었다.

내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취임식이 열린다. 이미 초청자 명단을 확정해 초청장을 보내고 그들을 맞이할 준비도 끝냈거나 막바지 작업 중일 것이다. 대통령이 취임하면 임기 초반을 결혼에 빗대어 ‘허니문 기간’이라고 한다. 취임을 앞둔 윤 당선인 역시 설렘보다 부담이 클 거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그는 정말 멋대로 해선 안 된다. 윤 당선인은 대통령이 처음이다. 시행착오를 줄여야 한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퇴임 당시 인터뷰를 했는데 그때 기자가 이런 질문을 했다. “취임할 때로 돌아가 당시 오바마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무엇인가?” 오바마는 답했다. “국민들과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생각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보내라.” 많은 경우 문제는 커뮤니케이션에서 시작한다고 본 것이다.

윤 당선인은 취임사를 읽는다. 혼인서약서가 그래야 하듯, 취임사에 지키지 못할 약속을 담아선 안 된다. 문재인 대통령의 5년 전 취임사를 살펴봤다. 이런 내용이 있었다. ‘광화문 대통령 시대’ ‘주요 사안은 대통령이 직접 언론에 브리핑’ ‘퇴근길 시장에 들러 마주치는 시민과 격의 없는 대화’ ‘분열과 갈등의 정치를 바꾸겠다’ ‘고르게 인사 등용’ ‘무엇보다 일자리’…. 이래서 기록하고 공표하는 건 매우 두렵고 떨리는 일이다.

아까 그 남자에게 물었다. 결혼 후 가장 달라진 게 뭐냐고. 남자는 “서로의 눈치를 보게 됐다”고 대답했다. ‘눈치’라고 표현했지만 이걸 배려로 고쳐도 좋겠다. 어떻게 행복하게 해줄 수 있을까, 이 행동이 불편하진 않을까, 서로의 말에 귀 기울이며 마음을 쓰고 있다는 거다. 신임 대통령에게도 이 부부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이용상 산업부 기자 sotong203@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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