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누군가를 부르는 것에 대하여

2022. 5. 9. 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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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연관계에만 오빠 언니 호칭을 붙인 지 오래됐다.

누군가 나보다 하루라도 더 일찍 태어났다면 내가 겪지 않은 그 하루간의 역사를 살아낸 것이 하나의 경이로 여겨진다.

다만 오빠나 언니 혹은 누나라는 호칭에 달라붙는 여러 겹의 이미지들이 나를 쭈뼛거리게 한다.

누군가를 이름 대신 부를 때 제대로 발음하지 못하거나 듣기 곤란해하는 것은 역할에 곧잘 몰입하지 못할 때 벌어지는 일인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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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울 작가


혈연관계에만 오빠 언니 호칭을 붙인 지 오래됐다. 성인이 되면 많이들 이름으로 부르고 불리지만 나는 어려서부터 유난스러웠고 운이 좋았다. MZ세대인 만큼 나이로 큰 위계를 형성하지 않는 유행 덕도 있다 말하고 싶어진다. 일찍 태어난 조상에 대해 존경이 없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 나보다 하루라도 더 일찍 태어났다면 내가 겪지 않은 그 하루간의 역사를 살아낸 것이 하나의 경이로 여겨진다. 다만 오빠나 언니 혹은 누나라는 호칭에 달라붙는 여러 겹의 이미지들이 나를 쭈뼛거리게 한다. 특히 그것이 내게 붙임성과 애교의 형태로 보여서다. 내가 아는 어떤 선생님들은 지금까지 남자 선배를 형이라 부른다.

여자친구나 남자친구라는 지칭 역시 쉽게 발음하기 어려워했다. 그렇다고 해서 애인이라는 말을 사용하면 엄마가 의아하게 생각했다. 엄마 시절엔 목욕탕에 갔을 때 누군가 허리춤에 문신이 있고, 애인이라는 말을 쓰면 불륜 중인 것으로 생각했다. 1970년대에는 아내가 남편을 아빠로, 1980년대에는 형이나 오빠, 아저씨로 부른다는 한국의 오래된 신문 자료를 봤다. 북한에서는 남편을 오빠라고 부르면 징역형에 처한다는데, 정말일까? 그나저나 어떤 사람들은 가정에서 사용하는 남편이나 아내, 엄마와 아빠 같은 호칭에 변화가 찾아오면 가족 제도가 붕괴될 것이라 믿어 몹시 두려워한다. 그들 말은 어느 정도의 신빙성이 있을까?

누군가를 이름 대신 부를 때 제대로 발음하지 못하거나 듣기 곤란해하는 것은 역할에 곧잘 몰입하지 못할 때 벌어지는 일인 듯싶다. 그런 점에서 K팝 아티스트들이 바로크 시대의 음악가, 예를 들어 비발디를 선배님이라고 부르는 모습은 유머러스하면서도 그들이 자신의 직업에 매우 몰입해 있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나는 무엇에 몰입해 있는 걸까? 세상 모든 만물을 선배님이라 부르는 SNS계의 코미디언(그를 코미디언이라 칭해도 될까?)이 무척 현명해 보인다. 이다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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