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통수" 대사 한줄 때문에…'라라랜드' 금지어 만든 황당 中

신경진 2022. 5. 8.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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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결하라' 인터내셔널가도 검열
상하이 방역 비판에 쓰일까 차단
미국 할리우드 뮤지컬 영화 ‘라라랜드’에서 초반 남자 주인공이 “뒤통수 맞은 건 내 탓이 아니야(It's not my fault. I got shanghaied)”라고 말하고 있다. 중국 SNS에선 중국을 모욕한다는 이유로 라라랜드가 금지 검색어에 포함됐다. [넷플릭스 캡처]

중국 당국이 자국 정책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는 인터넷 게시물에 대한 삭제와 검열을 강화하고 있다. 중국의 경제 중심지 상하이가 코로나19 확산으로 두 달 째 봉쇄된 상황과 맞물려 검열 역시 더욱 강화되는 분위기다. 지난 5일에는 중국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회가 회의를 열고 “방역 방침을 왜곡·회의·부정하는 언행과 투쟁하라”며 검열에 힘을 실어줬다.

이런 와중에 미국 할리우드 영화 ‘라라랜드’가 소셜미디어(SNS)에서 금지어에 지정됐다. 영화 초반 남자 주인공이 “뒤통수 맞은 건 내 탓이 아니야(It's not my fault I got shanghaied)”라는 대사가 이유다. 동사로 쓰이는 영어 단어 ‘상하이’의 어원은 19세기 미국과 중국의 교역에서 유래했다. 태평양에서 표류나 조난 빈도가 높아 선원을 모집하기 힘들어진 선주들이 속임수로 선원을 배에 태우는 경우가 잦아지자 “뒤통수 맞다”, “속임수 당하다”를 뜻하는 “상하이 왔다”라는 관용 표현이 생겼다. 중국인들은 상하이를 부정적인 ‘속임수’에 빗댔다며 모욕으로 여겼다. 여기에 최근 상하이 봉쇄로 불만 여론이 높아지자 웨이보(微博·중국판 트위터) 관리자는 검색어 해시태그 ‘#LaLaLand’를 금지어로 지정했다.

중국 웨이보에 영화 ‘라라랜드’와 ‘몰래 즐기다(偸着樂·투착요)’”가 중국 관련 법규 위반을 이유로 검색이 금지됐다. [웨이보 캡처]

중국의 국가인 ‘의용군 행진곡’도 금지됐다. “일어나라! 노예가 되기 원하지 않는 사람들이여”로 시작되는 가사가 봉쇄당한 상하이 시민의 분노를 드러내기 때문이라고 싱가포르 연합조보가 8일 보도했다.

“미국은 최대의 인권 적자(赤字)국”이라는 관방의 논평도 금지됐다. 지난 4월 13일 중국중앙방송(CC-TV)이 미국의 인권 실상을 비판한 논평 영상이 중국 당국의 방역을 풍자하는 의미로 SNS에서 밈(meme·인터넷에서 유행하는 사진)으로 유행하면서다.

세계적으로 널리 퍼진 민중가요 ‘인터내셔널가’까지 금지 목록에 올랐다. 상하이 시민들이 냄비와 솥을 두드리며 ‘냄비 시위’를 벌이는 과정에서 ‘인터내셔널가’를 베란다에서 크게 틀었다는 혐의로 경찰에 연행되는 영상이 검열을 피해 최근 해외 트위터에 퍼졌던 것과 연관이 있어 보인다.

자오리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 사진=신경진 특파원

외교부 대변인의 과거 발언도 금지어에 올랐다. 자오리젠(趙立堅) 대변인은 지난해 12월 30일 “여기 (해외) 기자들은 방역 기간 중국에서 생활하며 ‘몰래 즐겼다(偸着樂·투착요)’”며 “중국에 대한 이른바 코로나19 고소와 비난은 단지 트집일 뿐”이라고 중국 방역을 과시했다. 당시 프랑스의 AFP 특파원이 “멕시코 등 라틴 국가에서 코로나19 확산 과정에서 중국과 세계보건기구(WTO)에 과실 배상을 요구했다”는 질문에 대답하면서다. 최근 상하이에서는 자오 대변인의 사진에 ‘몰래 즐기다’는 투착요 발언을 편집한 사진이 밈으로 인기다.

당국의 검열에도 네티즌의 숨바꼭질은 계속된다. 지난달 상하이 봉쇄 과정을 흑백 영상으로 편집한 6분 길이의 영상 ‘4월의 소리’를 당국이 검열하자, 네티즌들은 제목과 영상 길이를 바꾸는 방식으로 인공지능(AI)을 이용한 검열 알고리즘을 우회하고 있다.

당국과 네티즌의 충돌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기자 출신의 뤼추루웨이(閭丘露薇) 홍콩침례대 교수는 “상하이 시민이 봉쇄 기간 감내했던 어려움과 불만, 분노가 민감한 내용을 발표했을 때 치러야 할 처벌에 대한 두려움을 능가하게 됐다”고 7일 ‘독일의 소리(도이체 벨레·DW)’에 말했다. 당국의 처벌에도 시민의 불만이 사그라지지 않는다는 의미다.
한편, 지난 6일에는 지난해 한국전쟁 당시의 중국군을 미화한 영화 ‘장진호(長津湖)’를 비판했던 뤄창핑(羅昌平) 신경보 탐사보도 팀장에게 열사 명예 훼손 등의 혐의로 징역 7개월이 선고됐다.

베이징=신경진 특파원 shin.kyung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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