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껏 없던 새로운 곰의 출현.. 지구가 위험하다 [ESG 세상]
새로운 시대정신이자 미래의 침로인 'ESG'가 거대한 전환을 만들고 있다. ESG는 환경(E), 사회(S), 거버넌스(G)의 앞자를 딴 말로, 더 나은 세상을 향한 세계 시민의 분투를 대표하는 가치 담론이다. 삶에서, 현장에서 변화를 만들어내고 실천하는 사람과 조직을 만나 그들이 여는 미래를 탐방한다. <기자말>
[안치용 이주현 이윤진 기자]
알래스카에서 곰이 민가에 출몰한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1년 전쯤 알래스카 남동부에 위치한 헤인즈 지역에서 새넌 스티븐슨이란 여성이 곰의 습격을 받은 사건이 보고되었다. 스티븐스는 이 지역 칠캣 호수의 캠핑장에서 화장실을 이용하던 중 정체 모를 생명체에 물려 다쳤는데, 나중에 괴생명체가 곰으로 밝혀졌다.[1]
▲ 2019년 2월 노바야제믈랴섬에서 북극곰 수십 마리가 돌아다니고 있다. |
ⓒ instagram @muah_irin |
북극곰이 자신들의 서식지를 떠나 인간이 거주하는 공간에 침입하게 된 원인이 지구온난화라는 데에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대체로 일치한다. 세계자연기금(WWF)은 기후변화로 빙하 면적이 감소하면서 먹이 활동이 힘들어진 북극곰이 먹이를 찾아 육지로 내려오게 된 것이라고 설명한다.[3] 인간이 초래한 기후위기가 북극곰의 생활 터전을 바꾸었으며 인간 자신의 주거환경에 연쇄적으로 영향을 끼치고 있다.
새로운 혼혈종
내셔널지오그래픽의 탐사팀(제이슨, 패트릭, 케이시)이 2014년에 기록한 알래스카 카크토비크(Kaktovik) 영상에서도 기후변화로 민가로 내려온 북극곰의 모습을 볼 수 있다.[4] 카크토비크는 미국 알래스카 주 북쪽 해안에 있으며 겨울에는 영하 45.6도까지 떨어져 알래스카에서도 추운 지역 중 한 곳이다.
북극권국립야생보호구역 경계 내에 위치한 카크토비크 마을에는 250여 명의 이누이트족이 거주한다. 이들은 고래를 사냥해서 그들에게 필요한 가죽과 지방을 분리한 후 뼈 등 남은 것을 해변에 버린다. 버려진 고래 잔해를 먹기 위해 북극곰이 마을에 내려온다고 주민들은 말한다.
이 시점에서 8년을 거슬러 올라가 2006년 캐나다에서 인간에게 사냥 당해 죽은 곰이 보통의 북극곰과 생김새가 달라 연구 대상이 된 사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5] 내셔널지오그래픽은 이 곰이 2006년에 처음 발견된 종이며,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에 위치한 생명과학 회사 WGI에서 DNA 검사를 한 결과 암컷 북극곰과 수컷 회색곰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 곰이었다고 전했다.
▲ 2006년 캐나다 야생에서 최초로 발견된 그롤라베어 |
ⓒ Didji Ishalook/Facebook |
그롤라 베어가 발견됐을 때 미국 어류 및 야생동물 관리국(U.S. Fish and Wildlife Service)의 알래스카 해양 포유류 관리 책임자는 새로운 혼혈 곰의 발견이 흥미로운 사건일 뿐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롤라 베어와 같은 새로운 혼혈종의 출현이 지구온난화의 결정적인 증거가 된다고 결론짓기는 이르다는 태도였다. DNA를 검사한 WGI 또한 어떤 것도 결론지을 수 없으며 이러한 이종교배가 일회성인지 아니면 장기적으로 일어날 일인지는 향후 추적해야 할 과제라고 덧붙였다.[6]
2014년 내셔널지오그래픽팀이 카크토비크의 고래 뼈더미에 접근한 목적은 그롤라 베어의 등장이 단순히 우연이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서였다. 그롤라 베어 발견 이후 기후변화로 인한 동물의 서식지 이동과 이종교배 사례가 종종 관측되었다.
2010년에는 수컷 북극곰과 암컷 회색곰의 교배종인 피즐리 베어(pizzly bear)가 발견되었다. 같은 해 미국 국립해양포유류연구소(National Marine Mammal Laboratory) 소속의 브렌든 켈리 연구팀은 과학잡지 <네이처>에 "기후변화로 생태계가 파괴됨에 따라 북극 해양 포유류 34개 종이 이종교배가 가능한 환경에 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7] 34개 종의 목록에는 일각고래-벨루가, 점박이물범-띠무늬물범 쌍을 비롯하여 북극곰-회색곰 쌍이 포함됐다.
켈리 또한 그롤라 베어가 처음 발견된 2006년에는 그롤라 베어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하지만 북극에서 탄생한 이종교배종을 연구하면서 기후변화와 이종교배의 연관성이 크다고 확신하게 됐다. 켈리는 "북극의 빙하가 녹으면서 서식지의 벽이 허물어져 이례적인 종 간 교배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생태계 혼란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기후변화와 이종교배 사이의 상관관계에 관한 연구들이 등장하고 기후변화로 북극곰과 회색곰의 서식지의 변화가 빨라지자 내셔널지오그래픽 탐사팀은 알래스카 지역에서 그롤라 베어를 관찰할 수 있을 것이라 예상하고 원정을 기획했다.
▲ 내셔널지오그래픽팀이 카크토빅 마을의 뼈더미 근처에서 관찰 카메라를 통해 포착한 그롤라 베어. |
ⓒ National Geographic |
오래전부터 북극곰은 북극 지역의 북쪽에, 회색곰은 북극 남쪽에 서식했다. 하지만 기후위기로 북극곰의 서식지가 줄어들면서 전통적인 서식지 구분에 변화가 생겼다. 미국국립해양대기청(National Oceanic and Atmospheric Administration)이 발표한 북극 성적표(Arctic Report Card) 2021에 따르면 북극은 지구의 다른 지역보다 두 배 이상 빠르게 온난화가 진행되고 있다.[8]
▲ 1985년과 2021년에 관측된 북극의 얼음 면적과 나이 비교 자료. 형성된 지 4년 이상된 두꺼운 얼음이 1985년 30.6%에서 2021년 3.5%로 크게 줄어 현재 북극의 얼음은 1년 미만인 얇은 얼음으로 되어있다. |
ⓒ 미국국립해양대기청, 미국국립빙설자료 |
빙하 면적의 감소와 얇아진 얼음은 북극의 해양 생태계에 큰 위협을 가한다. 세계자연보전연맹(International Union for Conservation of Nature)은 위기 종 목록(Red List)에서 북극곰을 취약(Vulnerable) 등급으로 분류하며 북극곰을 위협하는 가장 큰 원인으로 해빙 손실을 언급했다.[10] 해빙의 감소로 먹이를 사냥하기 어려워지자 북극곰은 먹이를 찾아 인간이 거주하는 육지로 내려오게 된 것이다.
반면 북극 지역의 남쪽에 거주하던 회색곰은 온도가 상승하자 상대적으로 온도가 낮은 북쪽으로 올라갔다. 결국 북극곰과 회색곰은 같은 영토를 공유하게 되었으며 두 종이 만나 짝짓기를 해 그롤라 베어가 탄생하게 되었다.
인간에게 주는 경고
그롤라 베어의 등장이 생태계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과정이라고 여길 수도 있다. 분명 북극곰과 회색곰이 생존을 위해 새로운 서식지를 찾아 나서면서 그롤라 베어가 태어난 것은 맞다.
동시에 그롤라 베어와 같은 혼혈종은 생태계 교란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켈리는 생태계에서 일어나는 이종교배가 반드시 환경에 나쁜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하지만 급속하게 진행하는 지구온난화로 인해 수많은 종이 교배하고 잡종이 탄생하는 것은 생태계에 위협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11]
1980년 독특한 생김새를 가진 고래 종이 그린란드의 한 사냥꾼에 의해 발견됐다. 이후 덴마크 자연사 박물관으로 옮겨져 연구한 결과 일각고래와 벨루가의 이종교배에서 탄생한 고래(나루가)라는 사실이 밝혀졌다.[12]
캐나다의 비영리단체 '해양포유류 연구 및 교육 그룹(GREMM)'이 2018년에 수집한 영상은 혼혈종 나루가가 추후에도 발견될 가능성을 보여준다.[13] 영상은 일각고래가 벨루가 무리에서 생활하는 모습을 담았다. 해양포유류 연구 및 교육 그룹은 북극의 기후변화로 앞으로 또 다른 나루가가 등장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나루가가 부모에게서 번식에 유리한 이빨 구조를 물려받지 못한 외교배 약세(outbreeding depression)를 보여주었다는 사실이다.[14] 외교배 약세는 생태학적으로 각자의 서식 환경에 맞게 진화한 두 개체군이 교배한 결과 생태적 적합성이 감퇴한 후손을 낳는 현상을 말한다.[15]
그롤라 베어도 북극곰의 뛰어난 수영 능력을 온전하게 물려받지는 못했다.[16] 북극곰의 신체 조건은 혹독한 환경에서 생존하는 데 맞춰졌는데, 그롤라 베어는 북극곰에 비해 목이 짧아 물 속에서 수영하기에 최적화하지 않았다. 아직 그롤라 베어의 생존 능력에 대해서는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켈리는 "가속화 하는 환경 변화로 발생하는 종 간의 번식은 혼혈종이 생존 특성을 진전시킬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는 점에서 위험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17]
새로운 혼혈종의 등장은 비교적 최근에 목격된 현상이기에 아직까지 그들이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명확하게 결론지을 수는 없다. 확실한 것은 기후변화가 먼 미래의 일이 아니라 현재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북극에서 계속해서 발견되는 혼혈종의 흔적은 지구온난화를 경고하는 지표다. 진화 생물학자 베스 샤피로 교수(캘리포니아 대학교 산타 크루즈 캠퍼스)는 카크토비크에서 발견된 그롤라 베어를 보고 "극심한 기후변화가 생기면 꼭 이종교배가 일어나며 현재 북극에서 발견되는 혼혈종은 극심한 기후변화의 증거"라고 말했다.[18]
극심한 환경 변화에 따른 어려움은 북극에 서식하는 동물만이 겪지는 않는다. 내셔널지오그래픽 화면 속이 아닌, 실제 주거 지역에서 그롤라 베어와 직접 마주치게 된 인간도 겪는다.
2019년 러시아의 노바야제믈랴 섬 중심지에 북극곰 52마리가 나타났을 때 러시아 정부는 비상사태를 선포했으며 주민들은 두려움 때문에 집을 나서지 못했다.[19] 북극곰은 코카콜라 광고 속에 나오는 친근하고 귀여운 존재가 아니라 조우했을 때 인간의 생존을 위협할 수 있는 무서운 존재다.
지구온난화가 진행되면서 인간이 점점 더 많은 북극곰과 서식지를 공유하게 된다면 인간에게 '비상사태'는 계속될 것이다. 무엇보다 멸종까지 포함해 북극곰이 겪어낼 비상사태는 더 치명적이고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그것이 인간에서 비롯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글: 안치용 ESG코리아 공동대표, 이주현 바람저널리스트, 이윤진 ESG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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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1] BBC(2021), ‘Alaska woman attacked by bear while using toilet’ https://www.bbc.com/news/world-us-canada-56136249 [2] BBC(2019), ‘Russia islands emergency over polar bear 'invasion'’ https://www.bbc.com/news/world-europe-47185112 [3]World Wide Fund for Nature의 News 자료(2019), ‘WWF: EXPERTS WILL CLARIFY THE SITUATION WITH POLAR BEARS ON NOVAYA ZEMLYA ARCHIPELAGO’ https://wwf.ru/en/resources/news/arctic/wwf-ekspertam-predstoit-proyasnit-situatsiyu-s-belymi-medvedyami-na-novoy-zemle/ [4]내셔널지오그래픽-National Geographic Korea Youtube 채널 영상(2021), ‘기후 변화가 만든 북극곰과 회색곰의 혼혈종 ‘슈퍼곰’’, ‘북극곰과 회색곰의 특징을 모두 가진 혼혈종의 흔적’, ‘북극곰의 털색에 회색곰의 얼굴을 한 혼혈종의 발견!’ [5]JOHN ROACH(2006), ‘Grizzly-Polar Bear Hybrid Found—But What Does It Mean?’ , National Geographic News, https://www.nationalgeographic.com/animals/article/grizzly-polar-bear-hybrid-animals [6]JOHN ROACH(2006), ‘Grizzly-Polar Bear Hybrid Found—But What Does It Mean?’ , National Geographic News, https://www.nationalgeographic.com/animals/article/grizzly-polar-bear-hybrid-animals [7]Brendan P. Kelly, Andrew Whiteley & David Tallmon(2010), ‘The Arctic melting pot’, <Nature>, https://www.nature.com/articles/468891a [8]National Oceanic and Atmospheric Administration(2021), ‘Arctic Report Card 2021’, https://arctic.noaa.gov/Report-Card/Report-Card-2021 [9]National Snow and Ice Data Center(2021), ‘A step in our spring’, Artic Sea Ice News & Analysis, http://nsidc.org/arcticseaicenews/2021/05/ [10]International Union for Conservation of Nature, IUCN Red List of Threatened Species 홈페이지, https://www.iucnredlist.org/ [11]Brendan P. Kelly, Andrew Whiteley & David Tallmon(2010), ‘The Arctic melting pot’, <Nature>, https://www.nature.com/articles/468891a [12]Natural History Museum of Denmark of UNIVERSITY OF COPENHAGEN(2019), ‘Danish researchers confirm that narwhals and belugas can interbreed’, News, https://snm.ku.dk/english/news/all_news/2019/danish-researchers-confirm-that-narwhals-and-belugas-can-interbreed/ [13]GREMM의 Whales Online(2018), ‘ WITH THE BELUGAS… AND A NARWHAL!’, https://baleinesendirect.org/en/with-the-belugas-and-a-narwhal/ [14]Brendan P. Kelly, Andrew Whiteley & David Tallmon(2010), ‘The Arctic melting pot’, <Nature>, https://www.nature.com/articles/468891a [15]Encyclopedia of Biodiversity(2007) [16]Brendan P. Kelly, Andrew Whiteley & David Tallmon(2010), ‘The Arctic melting pot’, <Nature>, https://www.nature.com/articles/468891a [17]Eva Holland(2018), ‘MEET THE GROLAR BEAR’, Pacific Standard, https://psmag.com/environment/the-grolar-bear-is-just-the-first-of-many-inter-species-hybrids-coming-to-the-arctic [18]내셔널지오그래픽-National Geographic Korea Youtube 채널 영상(2021), ‘북극곰의 털색에 회색곰의 얼굴을 한 혼혈종의 발견!’ [19]BBC(2019), ‘Russia islands emergency over polar bear 'invasion’, https://www.bbc.com/news/world-europe-47185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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