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통화질서 뒤흔드는 우크라 사태..'브레턴 우즈 3.0' 온다

김현정 2022. 4. 1.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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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현정 기자, 박병희 기자] 러시아에 대한 서방의 경제 제재로 종전 뒤 새로운 통화질서가 출현할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달러화의 지배력이 약화하면서 신용 기반의 기존 통화질서가 무너지고, 세계 금융 체계는 파편화 될 것이라는 것이다. 상품가격 인플레이션의 충격을 흡수할 중국의 위안화와 비트코인과 같은 디지털통화의 급부상도 예고됐다.

지난달 31일(현지시간) 기타 고피나트 국제통화기금(IMF) 수석 부총재는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파편화된 금융 체계에서도 달러는 여전히 가장 중요한 통화로 남겠지만 분명히 더 적은 비중을 차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미 일부 국가들이 교역 과정에서 달러 결제를 재고하고 있다"며 "소규모 통화블록의 출현이 촉발될 수도 있다"고 예상했다.

◆러 촉발한 달러화 중심의 금융질서 균열= 러시아는 서방의 제재 조치에 대응해 가스 판매 대금을 달러나 유로가 아닌 루블로만 받겠다고 선언하면서 기존 금융 질서에 균열을 일으키려 하고 있다. 서방의 제재 조치로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에서 퇴출된 뒤에는 자체 개발한 NSPK 결제 시스템을 이용하고 있다. 러시아는 2014년 크림반도 병합 뒤 서방의 제재에 대비해 NSPK를 개발했으며 러시아인들은 자국 내에서는 비자와 마스터카드를 지장 없이 사용하고 있다. 러시아는 베네수엘라, 이란, 인도 등과 새로운 결제 시스템 확대를 논의하기도 했다. 이미 오랫동안 달러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온 것이다. 우크라이나 침공 직전 러시아 외환보유고에서 달러 비중은 20% 정도로 다른 국가들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준이었다.

고피나트 부총재는 세계 교역에서 다른 통화를 더 많이 사용하면서 각국 중앙은행이 보유한 자산 종류가 더 다양화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국가는 자신들이 많이 거래하는 통화를 중앙은행 외환보유고로 비축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고피나트 부총재는 이미 세계 외환보유고에서 달러 비중은 지난 20년간 70%에서 60%로 떨어졌다고 설명했다. 그는 중국도 중앙은행 디지털 통화(CBDC) 부문에서 다른 나라들보다 앞서가며 위안화의 국제적 영향력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그는 위안화가 달러화를 대체할 가능성은 낮다고 예상했다. 그는 "위안화가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완전한 태환성, 개방된 금융시장 등의 조건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고피나트 부총재는 또 우크라이나 전쟁이 가상화폐, 스테이블 코인, CBDC 등 디지털 통화의 채택을 촉진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졸탄 포자르 "종전 후 새 통화질서 출현"= 월스트리트에서도 전쟁이 끝난 뒤 새로운 통화 질서의 출현을 예측하고 있다. 서방국가들이 러시아의 외환 보유고를 동결하면서 "과연 화폐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의문이 등장했다는 것이다. 졸탄 포자르 크레디스위스 투자전략가는 최근 리포트를 통해 "주요 7개국(G7) 국가들이 러시아의 외환보유고를 동결했을 때 브레턴우즈 2.0이 무너졌다"면서 "우리는 브레턴우즈 3.0, 즉 새로운 통화 질서의 탄생을 목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브레턴우즈’ 체제는 2차 세계대전 종전 직전인 1944년 미국 뉴햄프셔주 브레턴우즈에서 44개국이 참가한 연합국 통화금융 회의에서 탄생된 국제 통화 체제다. 이를 거쳐 미국의 달러를 기축통화로 하는 금환본위제, 브레턴우즈 1.0이 시행됐다. 그러나 1971년 닉슨 대통령이 금태환을 중단하며 기존 체제가 붕괴되고, 미국은 막강한 군사·경제력을 기반으로 화폐의 무게중심을 ‘국가신용’, 더 정확히는 ‘미국에 대한 신용’으로 옮겼다. 이 신용화폐 기반 시스템이 ‘브레턴우즈 2.0’이다.

그는 이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그에 따른 서방의 경제 제재가 3.0 체제로 이동하는 도화선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중국의 대응과 역할, 특히 통화시장에서 ‘위안화’의 지위 변화에 주목했다. 최근 나타난 러시아 원자재 가격 급락과 비(非)러시아산 원자재 가격 급등 현상 가운데, 예외적으로 러시아산 원자재의 구매가 가능해 보이는 중국이 원자재 인플레이션의 ‘안전망(Backstop)’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중국은 러시아 상품을 구매하기 위해 미국 국채를 매각하거나 위안화를 찍어내는 등 자체적인 양적완화 방안을 채택할 것으로 관측했다. 중국이 러시아산을 매점해 선박 컨테이너에 실어 띄우면 국제 운송료율이 폭등하고, 이는 서방 내의 금리상승과 인플레이션 심화를 불러올 것이라는 것이다. 이를 거쳐 종전 뒤엔 위안화의 가치가 상승할 것이라는 전망도 내놨다.

보고서에서 그는 "원자재 위기의 상황에서 중국인민은행(PBOC)은 안전망역할을 제공할 단 하나의 실체"라면서 "전쟁이 끝나면 달러는 더욱 약세를 보일 것이고, 위안화는 더 강해지게 될 것"이라고 봤다. 아울러 "전쟁 후 ‘통화’는 예전과 같지 않을 것이고, 비트코인(아직 살아있다면) 등은 수혜자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현정 기자 alphag@asiae.co.kr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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